'이 아픔을 어찌하나' 하고 방황합니다.
그런데 김기태의 도덕경 새로보기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김기태 선생님의 '비원단상'이라는 곳에 쓰인
'아픔 그 자체가 진리임을 알았습니다'는 글에
죽도록 몸이 아픈 사람에게
김기태 선생님이
'그대는 '진짜로 아파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 아픈 사람이 건강을 회복한 후 쓴의 회한의 글에
'자기는 지금까지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감동이 되어서 이곳에 김기태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아래
000씨는 15년이 넘도록 몸이 아파왔다고 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단 한 순간도 아파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파본 적이 없기에 000씨는 아픔이 뭔지도, 고통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프다는 쇼(show)는 이제 그만 하시지요!”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기조차 힘든 모습으로 묵묵히 강의를 듣던 그의 얼굴은 그 순간 설명할 길 없는 어떤 분노와 억울함으로 깊이 일그러졌고, 그러면서도 자신은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임을 잊지 않으려는 듯 인내하며, 저의 그 다음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저는 계속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000씨는 아프다 아프다 하시지만, 제가 보기에 000씨 마음은 오직 병이 낫고 싶고 하루라도 빨리 건강해지고만 싶어서 끊임없이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그 바깥에 있으려고만 했지,
단 한 순간도 그 아픔과 고통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 그 안으로 들어가 보거나 그 속에 온전히 있어본 적이 없어요.
그렇듯 단 한 순간도 ‘아픔’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본 적이 없고, 단 한 순간도 ‘고통’ 속에 온전히 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아픔’을 알며, 어떻게 ‘고통’을 알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제가 그런 말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병(病)은 그렇게 낫는 게 아니예요.
지금까지 000씨가 가졌던 그런 마음으로는 결코 병이 낫지를 않아요.
000씨가 진실로 진실로 병이 낫고 싶고 건강해지고 싶으면, 병이 낫고 싶고 건강해지고 싶은 바로 그 마음을 한 번 버려보세요.
그래서 단 한 순간만이라도 ‘건강’을 향한 그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아파 보세요.
단 한 순간만이라도 병약(病弱)한 자신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모든 저항과 거부를 내려놓고, 그냥 현재의 그 아픔과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인 채 그 속에 한 번 있어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000씨의 마음이
건강한 ‘미래’가 아닌 ‘현재’로 돌아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온전히 싸안게 되면,
그래서 000씨의 마음이 병(病)과 ‘하나’가 되고 아픔과 ‘하나’가 되고 고통과 ‘하나’가 되면,
그때 비로소 000씨 안에는 모든 저항과 정죄와 싸움이 끝난 ‘평화’가 깊게 흐르게 되고,
그때부터 000씨의 삶은 진정으로 치유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가 고통스럽고 불행한 건 ‘병(病)’이나 어떤 ‘문제’ 때문이 아니예요.
그 ‘병’이나 ‘문제’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싸우면서
그 바깥에서 평화롭고자 하는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우리는 끝없이 고통받고 불행한 거예요.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것에 대한 모든 저항을 그치고
온전히 그것과 하나가 되고 그 자체가 되어 보면,
그때 우리는 알게 돼요,
우리 자신은 사실 본래부터
그러한 모든 ‘문제’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가 끊임없이 저항해 왔던 바로 그것이
사실은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케 하고,
또한 우리의 존재를 질적으로 비약(飛躍)케 하여
비로소 우리 자신[참나, 眞我]을 만나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임을
알게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참으로 간곡하고도 애틋하게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얼굴은 어느새 부드럽게 이완되어 있었고, 눈동자는 설명할 길 없는 공감(共感)과 공명(共鳴)으로 가볍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강의가 끝났을 때, 그는 상기된 얼굴로 제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음 주에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조용히 돌아갔습니다.
아, 그런데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것은, 바로 그 날부터 그의 병(病)은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자신의 삶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온 이후에 제게 보내온 ;고통, 그것이 바로 진리였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그 날 이후 그는 자신의 육체의 고통에 대하여 오직 ‘Let it be’로 일관했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던 중 요즘처럼 가을로 접어들던 무렵의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내려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던 길 위에서 그는 문득 삶의 어떤 질적인 ‘비약(飛躍)’을 경험합니다.
마침내 ‘자기 자신’이 된 것이요,
비로소 그에게 ‘자유’가 찾아온 것이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그가 그토록 바라던 ‘건강’도 함께 찾아온 것이구요. 아, 그것은 고통으로 얼룩졌던 지난 삶이 끝나고 마침내 그가 새롭게 태어나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그는 언제 아팠냐는 듯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실로 ‘자기 자신’이 된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진정으로 배울 줄도 알게 되어, 그의 영혼 또한 참으로 건강하게 자기 자신 위에 우뚝 서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늘 힘겨워했던 바로 그 ‘문제’로부터
육체의 건강만이 아니라
다시 목마르지 않는 영혼의 자유마저 길어낸 것이지요.
가끔씩 그와 연락하고 또 아주 가끔씩 만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성큼성큼 배워가며 자라있는 그를 보면 그저 고맙고 감사하고 은혜로울 따름입니다.
그가 오래 아팠던 만큼 자신 안에서 그렇게 많이 자라고 나면, 또 그만큼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 스스로 쓰임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요.
어느 인생(人生)인들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 그렇기에 더욱 그의 아픈 이야기를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여기에 올립니다.
둘이 있습니다. 좋은 글을 읽으며 친구 들에게 위로의 말들을 찾아 정리 하는데 그리
쉽지가 않네요. 며칠을 감기로 찾아보지 못 했더니 한 친구에게 심각한 변화가 왔답니다.
늦기 전에 좋은글 전해 주어야 하겠죠. 좋은 글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