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1월 29일 저녁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쪼개어 틈을 낸 정 재훈 동문 부부와 우리 동문 20여명이 저녁을 함께 했다. 여전히 童顔에 젊은이의 의욕과 감사함에 충만한 넉넉한 모습을 보는 우리 모두 즐거웠다. 얘기 중에 재훈이가 고등학교 재학 중에 썼던 자신의 일기 몇 장을 소개했는데 우리만 듣기 아까워 이 곳에 소개한다. 이제까지 이룩한 성공과 재능과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는 재훈이지만 얼마나 준비된 그릇이었는지 이 일기가 보여준다. 아, 나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지?
1963.1.13 월요일
젠센기념관에 갔다. 진억, 영종, 건기가 왔기 때문에 공부를 통 하게 되지가 않았다. 방학도 이제는 꼭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공부해야 되겠다. 일찍 집에 오다. 방안 온도가 0도 내외가 되니 또 공부를 못하겠다. 한심하다. 학교 도서관에나 나가 봐야겠다.
1963. 1. 16 수요일
어제 club 모임을 갖고 오늘은 건철이와 같이 명동극장에서 “콰이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Qwai”를 구경했다. 美國 포로들의 생활과 日軍의 대조적 정신 본받을 만한 軍人精神을 엿 볼 수 있었다.
1963. 1.21 월요일
영하 18도의 추위다. 가장 추운 날씨인데 開學, 시험이다. 오늘부터 나흘 동안 시험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겠다. 우리 집을 일으킬 것은 내가 차지할 임무 같기도 했다. “Hope for the best but prepare for the worst”
어떤 大學을 갈까? 아무래도 原子工學科? 내가 원자공학과에 가서 수석을 계속한다면 大學 2年 쯤에는 아마 미국에서 초청으로 도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안되면 見學 형식으로도 다녀와 軍務를 마치면 大學卒業 또 미국 원자력원에 가서 머리를 싸매고 연구룰 한다면 人類의 환희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꼭 그렇게 하고야 말겠다. 청춘의 피는 끓는다고 한다. 끓는 피를 조리 할 수 있는 기술능력 또한 必須條件이다. 아무튼 온 내 정신을 글로 옮길 수 없음이 답답할 따름이다.
1963. 6.16 일요일
벌써 6월도 반이 지나갔다. 지금까지는 허둥지둥 시간만 보낸 것 같은 기분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3달!!
9월말 까지는 적어도 전 과목을 Master하여야 한다. 科學的 공부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더욱 마음에 꺼리는 것이 집이 멀다는 問題다. 왕복 3시간이 버스간 속에서 없어지는 것이다. 암!! 환경을 극복하여야 하겠다. 어떤 곤란도 물리치고 승리하여야 한다. 이럴 시간이 없다. 어서 공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