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산 다녀 온 얘기
새 회장 심항섭군이 당초 충주에 있는 천등산에 가기로 하고 월초 답사를 가 보니
그곳은 11월을 ‘심조불산’기간의 입산금지로 정해 놓아 통제를 하더란다.
이 때문에 열심히 알아보고 새로 정한 곳이 충남 홍성과 보령을 가르는 곳에 있는
오서산(烏捿山)인데 11월 산행을 위해 충청북도와 남도로 한 번씩 답사를 한 셈이다.
오서산은 이름이 까마귀 사는 산이란다.
(수고가 많습니다. 신임등산회장님!)
밤사이 비가 뿌렸고 새벽부터 안개가 짙은 날이다. 이런 날 수서역에 모이는 시간이
아침 8시이면 이건 상당하다. 아침 준비가 남자보다 많은 여학생들은 일요일 꼭두새벽부터 꽤나
부산 떨지 않고서야 쉽지 않은 시간이다. 헌데 여자들은 모두 정시에 모였다. 8시 7분에 꼬래비로
도착한 나만 아니었으면 정시 출발도 가능했을 터다. 이렇게 일찍 버스가 출발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배는 고프지만 이런 집합은 일찌기 없었다. 우리 등산회의 신기원을 이루고저 함인가.
조짐이 좋다.(용비어천가입니다)
모두 탑승한 버스에 올라 앞자리 여학생부터 면면을 보니 나로선 모두 오랜만인 얼굴들이다.
주일을 마다 않고 처음 나온 강인자, 오랜만에 나온 방유정, 이미화 진영애, 그리고
맨 앞자리에 앉은 유정순이 심상치 않다. 베테란 박정애, 이성희, 정숙자, 김양자, 남영애,
이향숙까지 여학생들을 다 사열?하고 나니 우린 남녀버스 부동석이라 이제 남자들 자리다.
변병관이 나왔네. 처음이지 아마도. 조병희가 오랜만에 나왔고.
멀리서 병원하는 민병훈이 오랜만이네. 권영직,민일홍,정만호,백경렬,김진국,김상건,우무일,
송인식,이상훈 다아 인사하고 나니 심항섭회장 타고 박효범 총무타고 오라잇!
분당팀 강기종,이석영,황정환을 태우고 경부고속도로를 탓는데 안성에서 서평택으로 질러
서해안고속도로로 가니 예상보다 이르게 10시 반 조금 넘어 오서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이 호설(순천향 대학 나노 화학 공학과 교수로 내려 와 있음)이 합세하니
우리 일행은 31명.( 많은 이들이 참석했으니 會運융성입니다 .용비어천가는게속되네)
기다란 지시봉까지 써가며 등산로 설명을 하는 신임회장이 가르키는 지도를 보니
이 오서산은 억새풀을 보아야 하는 산이다. 헌데 계절이 좀 늦은 거 아닐까 싶다.
산행 시작해서 20분쯤 올라가니 정암사(淨巖寺)라는 절이 있는데 다시 지었다는 극락보전
앞의 설명이 장황하다. 큰 절은 아니지만 겉으로 보아도 고찰임은 분명해 보이는데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씌여 있다. 절 주위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숲과 계곡의 물을 보니
여름철에 사람들 많이 꼬일 곳이다. 이 정도 올라 오도록 긴 구간을 콩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는 점이 아쉬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 모습이다.
한 시간을 나무계단이 많은 언덕으로 오른다. 경사도 급하고 좌우의 바람도 세다.
이 구간을 내가 바람언덕이라 이름 붙여 주었다. 이 상훈이 동의해 준다.
언제나 억새 풀밭이 나타날까 싶게 힘들게 올라가 왼쪽으로 꺽어 또 경사 있는 능선 길을
지나면서 조금씩 시야가 넓어지다가 드디어 확 트인다. 그동안 본 좌우의 그 많은 진달래는
봄철에 붉은 색 아름다움을 크게도 뽐내었으련만 우린 볼 수 없다. 그저 생각만으로
그친다. 봄에 한 번 다시 와 보아야지.
안개도 걷혔지만 좌우의 평야지대와 광천만의 서해도 윤곽은 뚜렷한데 시야가 맑지 않은 이 유감이다.
그리 멀지 않은 천수만도 흐릿해서 또한 유감이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의
1킬로 되는 길은 일대가 다 보이고 완만한 능선길이다. 중간에 팔각정이 있고 그 능선을
따라 저 멀리 정상이 보이는데 고도는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몇해 전 5월 달 지리산
바래봉을 올라갈 때 정상부에서 넓게 펼쳐진 철쭉 군락지와 함께 보이는 산 모습과
비슷한 점이 있다. 바래봉은 주변이 주로 옆으로 보고 올려다 보이는 높은 산 지대이지만 이 곳은 주변이 내려다 보이는 평야와 구릉지대인 점이 다를 뿐.
이 일대의 장관인 억새풀은 키는 크지 않고 누우런 색으로 정상 가는 길 좌우에 펼쳐져
있다. 이 억새가 힘이 제일 강한 때는 한 달 전 쯤이었을 것 같이 보인다.
정상 600미터 전의 팔각정은 이름을 오서정이라 붙여 놓았다. 조망을 하기에 좋지만
바람이 너무 세 오래 있기 어렵다.
평년보다 5~6도 높아 푸근한 기온이라는 이 날씨에도 여기선 벗었던 겉옷 다시 입고
얼굴 덮는 모자 쓰고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바다 반대 방향 사면으로 살짝
내려가기만 해도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하고 따듯한데 능선에 올라서면 씽씽 바람이 세차다.
이 곳에서 양자와 영애는 내 배낭의 간식을 다 먹고는 씩씩하게 정상으로 향하고
쥬너리는 좌우의 경치를 살펴 보았다. 안개 걷힌 좌우의 경치가 대단하다. 바라 보이는
곳은 홍성의 남쪽인 광천 일대이고 보령시는 안 보인다. 큰 뜰은 없지만
농산물도 골고루 나고 어패류도 많은 동네인데 이 곳이 고향인 장석화네는 옛날 무엇을
했을까?
일행이 다 올라 오며 우리는 이 팔각정과 정상의 중간지점 바람을 막는 위치에 자리잡고
배낭을 풀었다. 정상까지 갔다 온 친구들, 가기 전에 스톱한 친구들 모두 모였다. 거북이와 토끼들이 한자리에 모여 박정애가 금강산에서 산 북한산 들쭉술을 내어 놓고 병권은
민일홍이 쥐고 정상주 한 잔씩 하고 아침이 부실했던 친구들 이것저것 주섬주섬 먹고
떠들다 보니 어라 시간이 두시 반이나 되었네.
우리는 올라왔던 그 길을 내려간다. 아까보단 좀 더 맑아지긴 했어도 날씨가 맑게
개이지 못했다. 여길 충남의 등대라 한단다. 이 산만 불뚝 솟아 올라 서해바다에서 보기엔
표적이 될 수 밖에 없겠다. 왼쪽으로 서해를 내려다 보며 그리고 좌우의 평야지대와 광천시가지를 보며 내려 오면서 금방 자칭 거북이 유정순을 만났다. 끝까지 다 올라 온 거북이다. 다른 거북이들까지 만나고 정암사까지 내려와 한 숨 돌리고 내려 와 우린 점심을 먹으러 간다.
광천 젓갈시장이다. 이 곳에서 막 삶은 목살을 생 배추에 쌓아 새우젓과 김칫속을 섞어 즉석
보쌈김치를 안주삼고 어리굴젓을 반찬으로 먹으니 이것들이 다아 밥도둑이로다.
배도 안 고픈 사람들이 두그릇을 비우다니.
장석화군의 고향 광천은 본디 김으로 이름을 일찍 알렸고 어리굴젓과 새우젓의 본향이다.
서산이 어리굴젓으로 유명하고 강경이 젓갈의 집산지이지만 오리지날은 광천인데
광천은 싸이즈가 작아 게임이 안 되는 것 뿐이다. 이곳서 여럿이 젓갈을 사고 우리는
네시에 출발했다. 헌데 수서에 도착한 시간이 언제였을가.
이날을 함께 하지 않은 독자들은 놀라지 마시라, 밤 10시 20분에 도착하기까지 우린
홍성과 예산 그리고 당진을 통과할 때까지 충남에서 네시간 반을 걸려 경기도에 들어 올
수 있었다.
주당파들이 빠진 탓인지 버스 안의 이 긴 시간 식당에서 남은 광천막걸리와 김상건의 매실주,
심항섭의 양주, 민병훈의 카자흐스탄 보트카만 소비하면서 우무일의 구라와 강의도
듣고 졸기도 하고 비교적 조용히 왔다. 버스 뒷 자석은 회의용 테이블을 놓고 의자를 앞뒤로 모아 놓아 열명이 한테이블에 둘러 앉도록 배치해 놓았다. 지금껏 이런 좋은 좌석을 난 못 보았는데..
허 참. 주당파들이 많이 못 모인 것이 아쉽다.
정상이라면 일곱시쯤 도착해 힘 센 사람들은 공겨루기도 하고 생맥주도 한 조끼 할 것이었는데
도무지 예상을 빗나간 건 이쪽 서해안이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던 터이다.
당진 공업벨트에 인구가 많은 만큼 도로가 안 따라 주어서이냐, 위헌결정 안 받고 앞으로 집행될
신행정수도 땜에 충남사람들이 신이나 교통량이 비정상으로 늘어서 그런 것이냐.
모를 일이로되 휴일에 버스로 움직이는 데에는 앞으로 상당기간 전용차선이 있는 경부고속도로가 가까워야 좋겠다는 생각들을 하였다.
이러구러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오서산을 올라가 보고 억새밭의 장관을 보긴 했는데 까마귀 사는 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산에서 오늘 하루 까마귀 한 마리 본 사람이 없었다. 백로들이 우루루 몰려 오니 이 놈들이 다 숨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