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60주년 및 회갑 기념 여행 I
여행치고는 제목이 거창하다. 1945년 일본제국의 압박에서 해방된 조국 광복을 축하하기위해 특별히(?) 태어나 해방동이란 상징적 정체성을 가지게 된 친구들에겐 환갑의 의미도 남들과 다를 것이다. 이들이 385년간(너~~무 길다) 스페인제국의 통치, 48년간(이것도 너무 길~~다) 미국의 통치를 받고 아직도 피 식민지국의 우울함이 남아 있는 필립핀으로 여행을 갔다.
난 46년생이라 한살 젊고(?), 동창회여행도 이번이 처음이니 여행기라도 쓰라니 별 수 있겠나 써야지.
친절한 초록여행사 박 부장과 함께 10월1일 9시 인천공항을 떠나 우리만의 맞춤여행을 떠났다. 안 성주부부, 이 갑순 부부, 신 영혜. 심 규상 부부, 최 진석, 이 계용, 박 방생, 한 명희, 오양자, 이 길주 해외파를 합쳐 남자 13명, 여자 26명이다. 서울사대부고는 우리가 가슴에 달고 다니던 뺏지처럼, 우리에게 젊음의 상징인양 평생을 심리적 반란을 일으키게 한다. 나이 들면 젊음의 기력과 매력의 상실이란 현상으로 우울해진다던데 우리에겐 해당사항이 아니다.우리가 다닌 사대부고는 남녀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또 남녀공학이라 “있으면서도 주지 않는, 달래고 싶어도 조르지 못하는” “관계 있음”(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에 의한 건전한 성장기 탓인가. 말 끝마다 ‘남학생’, ‘여학생’, ‘애들’이다. “웃기네, 지들이 무신 남학생, 여학생들인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인디.”
11시 50분 서태평양 상에 있는 크고 작은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공화국 필립핀의 수도 마닐라에 도착하였다. 마닐라는 최상의 관광 중심지이며 문화, 예술, 교육, 상업, 산업의 중심지다. 날씨가 더울 것을 걱정하였던 것과는 달리 우기라 가끔 비가 쏟아지고는 개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늘의 날씨 부조가 최상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대형버스에 올르는데 버스속에서 김치냄새가 진동하였다. 마닐라에서 2시간 반 거리에 있는 팍상한 폭포로 가는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현지 가이드 박 희라 양이 준비해둔 한식 도시락을 먹으며 깔깔대고 수다를 떠느라 잠을 자는 사람이 별로없었다.
팍상한 폭포의 경험은 여기에 글로 쓰기엔 너무 벅차서 모두 한번씩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계 제 7대 절경 중 하나인 팍상한 폭포로 가는 길은 돌산을 칼로 잘라 양 옆으로 밀어낸 것 같은 빼어난 절벽과 거기에 붙어 있는 열대 나무, 꽃들과 풀, 이끼들이 어우러진 사이로 파아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보여 정말 아름답고 신비하였다.
그러나 팍상한의 경험은 경치를 보는 재미 보다는 작은 보트에 두사람 씩 타고 앞뒤에 보트맨들이 물이 많고 덜 급한곳은 노를 젓고 좁고 물쌀이 급한 곳은 양옆 물속에 살짝 보이는 바위를 발로 차는 힘으로 보트가 앞으로 나가는 묘기를 부리며 올라가는 급류타기로 스릴만점이었다. 가이드가 많은 사람들이 팍상한에서 보트맨들의 발만 보고 왔다던 말을 해 주지 않았다면 정말 옆이나 위를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인간의 힘으로 좁은 협곡 급류를 거스러 올라가는 일은 참으로 비참한 노동이지만 보트맨들에게는 소중한 생업수단이어서 한가구에 한명, 하루에 한번으로 정해있다고 한다. 정상에 도착하여 폭포의 떨어지는 물속으로 들어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워낙 물이 세고 소리가 커 정신이 없었다. 두 보트맨들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담배를 피워댄다. 내려오는 길엔 절벽 사이로 비치는 노을도 즐길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마닐라로 돌아와 버스에서 식당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부자(?) 한국인들을 환영하는 상인들과 애기를 안은 젊은 걸인 엄마 등으로 식당 경비와 우리여행사 사진사 등의 경호를 받아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사 후 숙소인 마닐라 호텔로 들어 갈 때는 비행장에 들어 갈 때와 같이 삼엄한 경비와 금속탐지기로 짐과 몸 수색을 하는데 놀랐다. 다수종족인 말레이시아계와 중국, 스페인계, 인구 85%의 카톨릭과 4.3%의 이슬람과의 갈등으로 인한 테러 때문인 것 같다.
둘쨋날은 전용버스로 히든벨리로 이동하며 “쿠무스타 포까요(안녕하십니까)?” “마부띠 포 나마(좋습니다)”,“살라맛 포(고맙습니다)” 등의 따갈로그어를 배우기도 했다. 울창한 산림 속 자연 휴양지 히든밸리는 마킬링 산 위에서 흘러 내리는 수정같이 맑은 폭포수 밑에 열대정글 같이 우거진 숲 사이로 꼭 우리나라 계곡에서 멱 감는 것처럼 흘러내리는 물을 막아 온천을 삼층으로 만든 곳에서 온천을 즐겼다.
온천은 일찍 도착한 탓인지 우리 팀 뿐이어서 쾌적했다. 물 속에서 유치원 애들처럼 둥글게 손잡고 아쿠아로빅을 하거나 떨어지는 물로 안마해 시원하게 피로를 풀었다. 이 부분은 회갑여행 답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어르신들 회갑 맞으신 분들 같지 않고 40대 같다니까 손가락 3개씩을 흔들며 30대를 부르짖었음에도 온천욕은 좋은 것이여.
수영복을 입은채로 정글 숲 속에 있는 식당에서 삼림욕을 하며 점심을 먹는데 비가 무섭게 쏟아지더니만 우리가 나오려니 어느새 하늘이 파아랗고 해가 따가웠다.
마닐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진짜 이 여행의 재미가 시작되었다. 버스 속에서 3시간 정도 가려면 대개 노래자랑으로 시간을 보낼텐데 안 동진, 이 계용과 특별히 사계의 전문 강사 이 원구의 입담으로 배꼽을 잡고 얼마나 웃었던지. 이 원구 변호사는 법조인답게 제목을 잘 붙인 강의내용들을 청중을 사로잡는 강의기술로, 아무리 오래해도 절대로 지루하지 않게, 본인은 분명 비싼 수업료 내고 익혔을 것을 강사료 한푼 받지 않고 해주었다. 여기서는 특강제목만 나열하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직접 본인이나 다른 친구들이 써주기를 기대한다. 난 너무 웃은 탓인지 웃은건 기억이 나는데 그 내용은 생각이 안나서 답답하기 때문이다. ,골프장 두친구' '퍼팅을 드라이버로', '천당에서 목사, 변호사찾기','교통사고로 죽은 남자',교통사고로 죽은남자','원수이 삼행시', ‘잔금사건’,‘2인조밴드’,‘장님남편과 벙어리부인 이야기’,‘친구좋다는게 뭐냐’,‘18번노래 변천사’,‘입술’, ‘관계 있음’,‘충청도 아주머니 이야기’ 등. 혹시 빠진 것 없는지 모르겠다. 명강사께서는 일체의 필기도구나 녹음을 허용하지 않았고, 특별히 해외파 애제자인 심 규상에게만은 필기를 허용한바 있어 본인이 팩스로 보내주기를 요청했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자세히 쓰지 못함이 유감이로다.
저녁에는 모두 멋지게 차려 입고 나와 현지특식을 먹으며 전통춤을 관람했다. 필립핀 원주민 무사들의 용감함을 나타내는 춤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춤에 이어 전통 춤 뱀브댄스와 훌라 춤을 출 때는 우리의 스타 박 정애와 최 진석이 무대에 올라 춤 솜씨를 보여주었다.
이 밤무대의 하이라이트는 아름다운 무희들과 청중 가운데 특별히 뽑힌 두 남자가 하와이안 의상을 갖추고 아름다운 무희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다. 필립핀 여성들은 배가 좀 나오고, 안경을 쓴 남자를 좋아한다니 우리 팀에서는 만장일치로 안 성주를 뽑아 오늘의 남자 춤꾼으로 무대에 올렸다. 풀 잎 치마 밑의 바지를 벗지 않아 좀 아쉽긴 했지만, 안 성주 동문이 육중한 몸집에 적당히 나온 배둘레헴을 음악에 맞춰 앞뒤 좌우로 맵시 좋게 돌리고 흔들어 박수갈채를 받았다. 가이드가 어떤 한국인 남자가 약주기운으로 무대에서 신나게 춤을 춘 감동에 무희 입술에 키스를 하고 자리에 돌아 오자 부인이 따귀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 장면을 기대하였으나 안 성주는 무희 볼에 키스를 하여 우리를 실망시켰다. 또 부인은 한 대 올려 붙일 듯이 손바닥을 비비며 다가서더니 역시 우리 기대를 배신하고, 남편에게 키쓰를 해 주어, 또 한번 박수를 받았다. 악사들이 “사랑해”를 연주하는 걸 시작으로 아리랑까지 여러 곡을 함께 불러댔다. 식당안에는 별로 다른 사람이 없어 맘껏 노래해도 눈치 볼일 없어 맞춤여행이란 말이 실감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