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외로움(고독)이 아닐까? 그런데 화자(작자)는 그 외로움을 바로 벗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그냥 수많은 벗 중의 하나가 아니라 <편안하고 따뜻한 친구>이고 <익숙한 동반자>이며 <세상 떠날 때에는 가까운 동행>이 될 것이고 <세상 마친 후에는 영원한 벗>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니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라고 동의하면서도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들은 그 외로움(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한다. 어쩌면 잠시의 외로움조차도 견디지 못한다.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 술을 찾고 친구를 찾고 오락을 찾고 거의 필사적으로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한다. 그런데 화자(작자=경욱이)는 그런 외로움을 가장 가깝고 편안하고 따뜻한 벗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니 정말 놀랍고 존경스럽다.
이 시를 읽으니 아주 옛날 조지훈 시인이 쓴 <병에게>라는 시가 떠오른다. 대체로 누구나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병을 <정다운 벗>이며 <공경하는 친구>라고 썼던 잊혀지지 않는 작품인데, 가만히 음미해보면 생에 대한 겸손한 태도와 깊은 성찰이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외로움>을 <나의 벗>이라고 쓴 작자는 어떻게 생각할는지....?
----------------
병에게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 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虛無)
나는 지긋이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 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여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 그려.
자네의 물음에 답하자면---. 인간은 어차피 외로운 존재로 태어났으나 ,항상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가 있지. 그러나 그것을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더욱 더 따라붙지. 그러니 두려운 존재가 되는 셈이지. 그 두려운 존재를 이기는 길은 그놈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궤변이고 억지일까? 아니면 현실도피를 하고있다고 볼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