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여름에 봄에 관한 시를 올리게 되니 너무 생뚱맞아 보입니다만,
이 글은 신문독자를 염두에 두고 작품선택을 했던 것이고,
시에 별로 관심없는 신문독자들에게 긴 시는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짧은 시를 고르다가 보니 계절에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그런데 어쨌든 아름다운 계절인
봄을 파르티잔(빨치산)에 연결한 시적 상상력이 신선해 보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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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서정춘(1941- ) [봄, 파르티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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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고 또 깎아서 더 이상 깎아 낼 것이 없는 뼈만 남은 언어이지만, 앙상하지 않고 오히려 단단하고 아름답습니다. 삶의 비밀을 포착하는 시인의 엄청난 시력(視力) 앞에서 우리는 압도됩니다. 존재와 생성, 혹은 본질과 변화로 갈라서 논쟁해온 서양 철학사를 단번에 뛰어넘는 놀라운 해석이지요. 봄의 생명력을 파르티잔의 폭력으로 읽어내는 시인의 독해력에 뭐라 토를 달 공간이 없습니다. <꽃>과 <새>, <그리기>와 <울리기>의 대비도 절묘합니다. <지리산 골짜기>라는 근원공간으로 <떠나서> 그곳에 녹아드는 봄소식, 그것이 곧 겨울의 냉기를 물리치고 만상을 깨워서 생명의 밝은 빛 속에 일으켜 세우는 [봄, 파르티잔]의 모습이 아닌지요?
이 진 흥 - 매일신문, 2005/7/20.
내가 거기 가던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날이었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펴는 순간, 갑자기 먹구름이 꾸역꾸역 능선을 넘어 몰려왔다. 그러더니 졸지에 해를 가리고 그 넓은 하늘을 검게 가려버렸다.
먹구름이 몰려오던 그 광경이 마치 1.4후퇴 때 중공군이 국경선을 넘어 쳐들어오던 장면을 연상케 했다.(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로되 들은 이야기를 유추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오늘의 시 [봄, 파르티잔]과 진흥이의 해설을 읽자마자 순간적으로 한참 동떨어진 그 먹구름이 눈 앞에 선하게 떠 오른다. 이렇게 엉뚱한 장면이 마치 금방 본 영화처럼 떠 오르는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