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우리 동창회 홈페이지를 열어볼 적마다 매우 즐겁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꽃봉오리였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순결하고, 가장 죄 없던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청춘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요?
아무 때나 들어와서 눈도장(?)만 찍고 나가니 미안해서, 나도 가끔 뭔가를 쓸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마침 이번 7월부터 9월까지 대구 매일신문이란 곳에 일주일에 3회 연재하는 [시와 함께]라는 글을 이곳에 퍼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맘대로 시를 골라서 소개하고 간단한 의견을 덧붙이는 아주 짧은 글입니다.
요즘 시를 읽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가끔, 옛날 어린 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를 떠올리면서 짧은 시 한 편씩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독일의 시인 횔덜린은 시를 쓰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라고 했다니, 그 순결한 일의 성과물인 시편들을 스쳐 읽는 일이야말로 순수한 기쁨이 아닐는지요?
오늘 첫 번째 소개하는 작품은 김춘수 시인의 물또래라는 짧은 시입니다. 김춘수 시인은 지난해에 작고한 분인데 나는 그에게서 시론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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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또래야 물또래야
하늘로 가라,
하늘에는
주라기의 네 별똥이 흐르고 있다.
물또래야 물또래야
금송아지 등에 업혀
하늘로 가라.
김춘수(1922~2004) '물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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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대가를 바라지만, 유희는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뜻에서 시는 보상이 따르는 노동이 아니라 무상행위로서의 유희와 같습니다. 이 시에서 '물또래'는 적우과에 속하는 곤충의 일종입니다. 그러므로 '물또래야 하늘로 가라'라는 말은 '철수야 공부해라'라는 말과 다릅니다. 철수에게 공부는 취직이나 출세 같은 보상이 따르지만, 물또래에게 '별똥'은 보상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우리가 이 시를 읽으면 의미를 초월해서 무한, 자유, 해방 따위의 매우 아름답고 신선한 울림을 느낍니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바로 시가 주는 보상이 아닐는지요?
이진흥(시인),
- 매일신문, 2005년 07월 0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