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휘파람 불며]를 세상에 보내며
첫 아이를 출산한 여인의 마음은 어떨까? 입덧의 고통도, 동산 같은 배를 감싸 안는 어려움도, 살을 찢는 숨가쁜 산고도, 어느 것 하나 겪어 본 일이 없는 나로선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힘찬 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열 달 동안 겪었던 그 어떤 고통도 씻은 듯 사라지고 마치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벅찬 희열에 감싸이게 되는 건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산고를 무릅쓰고 둘째 아이를 갖지는 못하리라. 그 마음은 엄마 된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맛볼 수 없는 행복이자 기쁨일 것이다.
2001년부터 4년 동안 틈틈이 써 놓은 글 가운데 40편을 골라 책으로 엮어 마침내 세상에 내보냈다. 책 한 권 펴낸 걸 한 생명의 출산에 비유한다면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겠지만, 멋모르고 시작한 일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는 점에서 첫 아이를 낳은 여인의 산고를 생각해 봤다. 부담이 컸던 만큼 세상에 얼굴을 내민 책을 보는 순간, 기쁨과 보람도 비례하여 컸다. 이런 흐뭇한 순간의 충동질이 다음 책을 재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 서문에 밝힌 대로 이 책은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들과 함께 쓴 책이다. 분량에 있어서도 동문들의 댓글, 답글이 50쪽에 이를 뿐 아니라, 내용면에서 내가 쓴 글을 보완하거나 다른 관점을 제시하여 내 글이 지닌 좁은 한계를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30명의 고등학교 동창, 12명의 대학 동창들이 무려 305개의 댓글을 붙였고 답글도 22편에 이른다. 심지어는 본문에 인용한 글까지 있으니 동문들의 문집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사려 깊은 댓글, 답글을 붙여준 동문들을 칭송하는 전화나 이 메일도 여러 차례 받았다. 전문을 그대로 싣지 못하고 줄이거나 중복된 내용일 경우 아예 생략한 글도 적지 않아 안타깝다. 친구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성당에서 만나 친밀하게 지내온 시인 정희성 선생님은 내 글쓰기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다른 사람이라면 하기 어려운 충고를 해주었고, 특히 정치 현안에 대하여 쓴 글에 대하여는 비판적인 지적도 했다. “정색하고 쓴 글”, “마음의 날을 세우고 쓴 글”은 독자에게 읽을 재미를 주지 못하리라는 지적 같은 게 그러하였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참을성이 부족하여 이런 주제로 쓴 글이 적지 않았고, 동기들의 호응이 컸다는 속단으로 그 가운데 몇 편은 책에 끼워 넣었다. 선명한 색깔도 없는 내가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게 무모한 일은 아니었을까, 하고 자성하고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 겹 동창인 시인 이진흥 교수는 정말 분에 넘치는 발문을 써주었다. 졸업한 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날 때면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해온 친구라서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고, 또한 강단에서 문학을 강의하면서 시인동호회를 지도하고 있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여서 발문을 써 달라고 어려운 부탁을 했다. 그런데 이런 발문을 보내오다니! 다행히 발문만 읽고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오해할 독자는 없을 터여서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아내는 조촐하게나마 출판기념회를 갖자고 얘기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도움을 주신 은인들을 한 자리에 모셔 식사 나누며 만나 뵐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경비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이런 자리를 준비하는 절차 또한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이다. 그냥 책 한 권 보내드리더라도 만난 듯 반가워해 주시리라는 믿음에서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편으로 책을 부쳤다.
책을 보내는 일도 간단치 않았으나, 책을 받고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의 연락을 받고 또한 기뻤다. 주소를 확인한다고 했지만, 애써 보낸 책 가운데 20 권이 넘는 책이 반송되었다. 챙긴다고 했지만, 꼭 보내야 할 분을 빠뜨린 건 아닐까 마음 쓰인다. “내겐 책 한 권 안 보내는 거야”하고 채근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저 섭섭하게 생각하고 그만두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책을 내고 생각한 다른 한가지는, 백주에 벌거벗고 대로에 나선 것처럼 어색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성당 신부님이 내 책을 읽어 본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요한(내 세례명)형제님에 대해서는 더 여쭤 볼 말씀이 없네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알려고 들면 숨길 수 없는 과거일 터, 스스로 고백했으니 한편 후련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뭔지 모르게 손해 본 듯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 가정을 이루고 집을 한 채 짓고 책을 한 권 쓰면 할 일 다 한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칭찬해준 친구의 메시지가 발가벗은 쑥스러움을 누그러트리기도 한다.
아이들과 아내 덕분에 해묵은 꿈을 실현하고, 흡족하지는 않더라도 미뤄두었던 큰 숙제 하나를 마무리 지은 듯 마음이 가뿐하다.
( 2005.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