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버스를 타고 가는 산행길이다. 수서역에서 8시에, 사당역에서는 8시30분에 출발을 한다고 친절하게도 개개인에게 태영이가 편지까지 보냈다. 강기종과 함께 약간 이르게 수서역 버스앞에 가니 권영직, 김윤종은 벌써 나와 있고 곧 이어 김상건, 유정숙, 황정환이가 나타나고 8시에 대어 오느라고 정신없이 뛰어온 흔적이 역력한 남영애가 도착을 하여 정확히 8시10분에 수서역을 떠난다.
8시30분 사당역에 가니 대 부대가 몰려 있다가 버스를 탄다. 정태영회장을 위시하여 이재상과 이승희가 오래간만에 쌍을 이루어 타더니 얼굴 잊어버릴번 했던 문광채가 탄다. 그 뒤를 이어 박정애, 이향숙, 이성희, 주환중, 김용호, 신해순, 서성수, 김경석, 민일홍, 이명원,송인식, 정기봉, 김영길, 이상훈, 장용웅이 타니 여학생 5명에 남학생 22명, 모두 27명이다.
8시40분에 버스가 떠난다. 그야말로 그동안 아범노릇을 톡톡히 해 오던 박효범이가 웬일로 나오지 못하니 정태영회장이 직접 회비를 걷는다. 조용히 일하던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을땐 모르다가 막상 그 자리가 비어지게 되면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웬일로 못 왔을까? 그러고 보니 꼭 올 줄로 생각되던 친구들 얼굴이 하나씩 생각난다. 그러면서 스치는 창 밖을 보느라니 화성 휴게소이고 잠간 쉬고 졸다보니 서해대교를 지나서 홍성, 그리고 얼마 있으니 5층 석탑이 오른쪽으로 보이기에 보니 성주사지라는 간판이 보인다. 10시40분이다.
길 옆의 검은 흙무더기들이며 검은 색을 띤 산기슭이 이곳이 전에 탄광촌이었음을 말해준다. 1970년대에는 천여명의 광부들이 이곳에서 석탄을 캐느라고 북적대었단다. 20여년간 캐다가 보니까 생산량도 줄어들고 대체 에너지의 가격변화 및 수입석탄 때문에 1990년에 폐광을 하였다니 몇 년전의 일이었음에도 새까맣게 몰랐었네.
성주산 휴양림 입구에 버스가 닿으니 창원에서 일찌감치 달려온 옥건이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차 트렁크엔 귤이며 소주며 생수박스를 잔뜩 싣고서. 언제 보아도 힘이 철철 넘치는 환한 얼굴의 모습이다. 예쁜 며느리까지 얻어서 그런지 더욱 그러하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아들 결혼을 축하하고 들고 왔던 귤이며 술에 감사한다.
11시부터 산행시작이다. 날씨는 예상했던 것보다 따듯하여 아이젠을 들고 올까 말까 망서렸던 생각을 아예 잊게 하고 그제 내린 비로 먼지하나 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외에는 등산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산 전체를 온통 우리가 전세 낸 기분이다.
시작부터 약 30여분간은 계속 올라가게 되어 입었던 쪼끼까지 벗게 되니 그 다음부턴 평평한 산행길이어서 주변의 경치도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것는다. 저 멀리 산들이 많이 보인다. 이 산이 차령산맥의 끝 줄기라니 모두가 그 산맥군이겠지?
정기봉이가 하나도 쉬지 않으면서 꾸준히 잘도 것는다. 마음잡고 술이며 담배를 끊고 일로 건강에만 매진을 하더니 이젠 많이 회복되었다. 보기가 좋다.
부여군의 조루봉이라고 쓴 팻말이 보이더니 곧이어 정상 (590 미터)에 새로 지은듯한 정자가 보인다. 우선 온 사람들 몇부터라도 기념사진을 찍어두자.
석규야! 얼굴 알겠냐?
왼쪽부터 김옥건, 권영직, 심항섭, 주환중, 강기종, 김윤종이다.
장용웅이의 와인, 김영길의 복분자, 박정애의 시원한 배, 이성희의 부침적등으로 간단히 간식을 하고 하산길.
낙엽이 하도 많이 쌓여 낙엽을 발로 걷으며 내려온다.
태영이가 혼자서 이곳을 답사했다는걸 생각하니 인적 하나 없는데서 고생했겠다 싶은 생각이 나면서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절로 난다. 리더의 본보기인데, 나라 꼭대기의 그 리더는?
얼마를 내려오니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오던 후미와 만나서 길 옆에 쭉 즐어서 있는 시비(詩碑)의 시들을 읽으며 것는다.
1930년에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1969년 40세의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신 신동엽시인의 시가 눈길을 끈다.
“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기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기고.
(중략)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얼마를 읽다가 내려와서 보니 미당의 시가 보이는데, 제목이 어려운 글짜다.
한병근이가 해석해 주렴.
“추천사 (?韆詞 )
향단아 그네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 듯이
(이하 생략) “
생전 처음 보는 한자라서 그대로 옮겨 보았다.
시비가 늘어서 있는 바로 밑에 방가로가 몇채 보인다. 5평에 3만원, 10평에 5만원, 15평에 7만원 한다니 가족들과 함께 와서 애들 손을 잡고 혹은 애인과 팔짱을 끼고 거닐며 읽으라는 시비들인 것 같다. 좋은 생각이다.
버스를 타고 30여분 달려가 대천 해수욕장 바로 옆의 오대양 횟집 2층으로 올라간다.
서쪽으로 보이는 망망대해가 마침 햇볕을 받아 그야말로 반짝반짝 은가루가 뿌려진 듯 펼쳐진다.
한상에 9만원 한다는 상이 7개가 가즈런히 정돈되어 있다. 가이바시, 소라, 홍어무침등의 쯔끼다시에 이어 푸짐한 회로 소주를 든다. 그야말로 신선놀음이다. 등산하고 이렇게 잘 먹어도 되는건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식사는 생선찌개이다. 점심겸 저녁으로 포식을 하고 해변을 것는다. 아! 누가 지고 있는 해를 바로 보면서 가로 길게 모로 누워 있네. 누군가? 찰칵.
우리가 식사했던 오대양횟집을 배경으로 오늘 등산을 위하여 수고를 해준 정태영을 클로즈업 해본다. 그 뒤에는 자청들을 해서 백 댄서로 포즈들을 취해준다.
왼쪽부터 이향숙, 김영길, 김상건, 유정숙, 김윤종, 박정애, 남영애이다.
4시30분이다. 아쉽지만 이젠 옥건과 작별을 하고 서울로 떠날 버스를 탄다.
단풍 관광철도 지났는데 길이 밀린다. 이럴땐 차안에서 즐기는 방법이 있지.
노래방이 개설된다. 노래하면 이승희와 이재상, 이상훈, 박정애가 아닌가?. 가수 뺨치는 솜씨로 노래들을 부른다. 그런데, 신해순이가 교수직을 그만두고 최근 가수수업을 받나? 온몸으로 기차게 잘도 부른다. 또 이성희는 서예만 잘하는줄 알았는데, 언제 그토록 노래 실력을 닦었나? 민일홍이도, 그리고 이명원이도. 전 동기생의 가수화다.
뒷자리에 앉아서 노래 감상을 하는 김경석과 김영길의 모습이 재미낳다. 한커트 찍자.
유정숙이가 우리들의 건강함을 말한다.
“학교다닐때에는 공부 잘한 년이 최고.
졸업하면 시집 잘간 년이 최고.
그 뒤에는 자식 잘둔 년이 최고.
돈 많은 년이 최고.
그것들 보다도 더 최고가 건강한 년“라는 이야기에 이어
이향숙이가 오늘 갔다온 성주산으로 즉석 삼행시를 읊으면서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성공했느냐, 못했느냐를 따지지 말자.
주변머리 있느냐, 없느나를 걱정하지 말자.
산에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오면 즐거운데.“
이러면서 서울에 도착하니 10시30분. 6시간이나 걸렸지만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었던 귀경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