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임무 수행 요원.
나의 노란색 병적기록부에 빨간색 고무인으로 찍혔던 도장이다. 병과번호는 702.
내 나이 23살 때의 상황이었다.
나에게 무슨 특별한 의지나 각오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주 조그만 상황으로 시작되어 나 모르는 사이에 사주팔자 같은 운명이 그렇게 엮여졌고 흘러 돌아갔을 뿐이다. 그 당시 단절된 그 체제 속에서 나는 함몰되었고 탈출구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Keeper란 직책으로 2년 이상 산을 뛰어다니며 군대 생활을 했다.
공작원의 12주 교육을 13기쯤 수행하면서 매일 10km씩 산을 오르내렸다. 사격과 수류탄 투척, 폭약과 뇌관설치, 지뢰밭 통과, 육중봉쇄 통과, 야간 산행을 그들과 함께 했다. 방 두개짜리 12평 산속 안가에서 그들과 지내던 젊은 날의 기억이 이제는 아른아른 하다. 산과 나. 생각해보니 유별나다. 요즈음 아무도 없는 심심 산길을 혼자 거닐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 안에 새겨져버린 그 때의 자국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요즈음 나는 동기 등산모임을 통해 동창회에 봉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친구를 만나는 것이 즐겁다. 우리 등산이 서로 따듯한 배려가 더 많아지고 보다 더 즐거운 모임이 됐으면 좋겠다. 이제 나의 임기는 1년이 지나가고 있고 앞으로 2년 남았다.
어제 산행엔 옥건이까지 28명. 더 많은 인원수를 바래보기도 하지만 산에 안가 본 사람이 산에 온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고 엄두가 나지 않을 듯하다. 또 4째 일요일에도 이일저일 바쁜 일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며칠 전에 우리의 모범적인 친구 이원구군은 모든 동기들은 등산회모임에 가끔은 아니더라도 한두 번 쯤은 참가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달엔 남한산성. 그 날엔 눈 덮힌 남한산길을 삼삼오오 짝지어 걷고 서로 마주 앉아 모락모락 김나는 순두부 따듯한 국물 마시며 우리의 삶을 또 한번 함께 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