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주 수학여행을 동건이는 "망가지려 떠난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 말을 "무너지려고 떠난다"고 잘 못 기억했다. 어쨌든 망가지거나 무너지거나 그게 그것 아닌가? 요컨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모든 수식과 치장을 떼어버리고 편안하게 헝클어져서 우리들 청춘의 시공을 찾아가 보자는 의미로 들려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사회에 나온 후부터 우리들은 어느새 무엇인가가 돼서 그것에 구속받고 있었다. 무슨 사장 회장 과장 이사 교수 의사 변호사 소장 원장..... 등등의 수많은 호칭 속에 점잖은 척 묶여 있다가 타임머신을 타고 40년전의 수학여행지로 떠난다는 것은 그 모든 구속을 벗어 던지고 그냥, 재현이 태영이 정애 풍자 현근이..... 등등의 아무런 에피세트도 붙지 않는 이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아폴로의 빛 속에서 디오니소스의 어둠 속으로, 로고스의 언어를 내려놓고 미토스의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꼿꼿한 수직의 부성적 긴장에서 부드러운 수평의 모성적 사랑 위로 무너져 솜처럼 풀어지는 것, 그 해방의 공간에서 우리들은 비본질적인 것들에 가려져 있던 우리들의 얼굴을 순수시대의 햇살 속에 말갛게 드러낸다는 뜻이었고, 그것은 과연 우리들이 꿈꾸고 설레며 물고기처럼 퍼덕이던 추억의 호수를 향한 돌진의 언어였다.
경주에서의 2박 3일은 한마디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졸업과 함께 민들레 솜털처럼 흩어져서 이리 저리 떠돌며 각자의 꽃을 피워낸 소년과 소녀들이 40년 후에 은발이 되어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새떼처럼 몰려들어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떠들면서 하나가 되어 본 것이다. 누가 제안하지도 않았는데 부지불식간에 슬그머니 서로 손에 손잡고 둥글게 서서 목청껏 교가를 부르며 감격으로 눈물을 글썽일 때는 정말 우리들의 존재가 문자 그대로 무너져서 원형질로 녹아버리는 것이었다. 너와 나와 그와 그녀가 아니라 모두가 우리들 속에 하나로 통합되는...... 정말로 놀라운 경험이었고 차라리 장엄하고 종교적인 체험이었다.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예순 살이나 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순식간에 열 일곱 여덟의 푸른 시절로 돌아가게 한 것은 하나의 마법이었다. 그 마법은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청춘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며, 그것은 아무리 시간이 가고 공간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을 추억의 보물창고를 함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보물창고 속에서 우리들은 빛나는 보석을 하나씩 꺼내들고 서로 부딪쳐서 2004년 가을 경주의 밤하늘로 꽃불을 피워 올린 것이다.
아하, 그것이 가능할까? 앞으로 십 년 후, 우리 다시 한 번 50주년 감격이.....,
그 눈물겨운 인카운터(encounter)의 불꽃을 피워 올리기 위해서 기도하자. 그 50주년의 감동을 위해서 모두 건강하기를......!!
Everybody won at Kyung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