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월 류근섭(湖月 柳根燮)교수의 차에 편승하여 강화로 민물낚시를 떠난 시각은 오전 7시, 낚시터까지는 두 시간 남짓 걸린다는 류 교수의 말씀, 아침 조황(釣況)에의 기대는 접어야 햇다. 하지만 이순을 넘긴 일행 넷 모두 성격 느긋하기가 류 교수나 한가지여서 가는 길을 서두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70년대초 청주에 근무하면서, 도내에 산재한 낚시터를 편력하던 젊은 날엔 지금과는 또다른 그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었다. 고기가 미끼를 무는 순간의 짜릿함과 바늘끝에서부터 대를 타고오는 몸부림치는 예리한 손맛,묵직한 놈을 끌어올릴 때의 아슬아슬 휘어지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대낚에서만 느낄 수 있는 멋이라, 플라스틱 낚시대를 쓰지 못하고 한사코 대낚을 고집하던 낭만이 그 하나요, 인공구조물이라곤 기껏 좌대(座臺)뿐인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던 낚시터의 낭만이 그 둘이요, 밤낚시의 카바이트 칸데라 불빛이 그 셋이다.
토요일 근무가 반나절로 끝나면 점심도 거른채 전날 손질해 놓은 장비를 챙겨 상사인 이규석 소령과 함께 달려가던 곳은 주로 청주에서 40여리 떨어진 초평(草平) 저수지, 밥집 김씨네 타작마당 앞 새물드는 물가에 나앉거나 아니면 좌대를 탓다. 내지에 외지게 있어 버스를 두세차례 갈아타야 했다. 처음에는 욕심을 부려 대를 몇 개씩 펴기도 했지만 점차 모두를 접고 하나만 남겨 쓰기가 예사였다. 두개만 펴도 벌써 물위에 흔들리는 찌를 따라 이리저리 초점을 맞춰가며 눈을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게 피곤하기도 하려니와 게으르게(?) 음풍영월하는 풍류에도 걸맞지가 않는 때문에서다. 어쨋거나 낚시대는 하나만 펴는게 편하다. 외대를 쓰면 그만큼 여유도 생겨 입질이 뜸해지거나 눈이 피곤해지는 때면 건너편 산도 하늘도 한번쯤 쳐다볼 수 있어 좋았다.
해가 기울면서는 한낮의 극성스럽던 피라미의 깐죽거림도 점차 줄어들고 민물고기 중에서도 군자격인 붕어의 입질이 조심스럽게 시작된다. 저녁 호수의 잔잔한 아름다움, 물빛도 하늘빛도 뽐냄을 그만하고 여리어지는 정겨움, 그 속에서 젊은 낚시꾼은 다른 곳엔 눈돌릴 틈도 없다는 듯 부지런히 떡밥 달고 던져 넣고 기다리고 끌어 잡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저녁 어스름이 깔릴 쯤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손을 놓고 일어나 카바이트 칸데라 불을 켜고 찌에 야광 테이프를 감아 불빛 초점을 맞추고, 그러고 나서야 한참 전에 내온 다 식은 저녁밥 광주리에 머줍게 다가앉는다. 둥근 불빛 속에 흐릿하게 비치는 찌 하나를 잎에 놓고 고독해보는 낭만은, 두렵도록 깜깜한 호수의 검은 밤을 지키는 꾼에게나 주어지는 값비싼 사치다. 멀리 호수 건너편에 깜박거리는 또 하나의 불빛이 주는 정다운 외로움, 젊은날의 밤낚시는 "원초적 그리움"이라 표현해도 과하지가 않다. 별이라도 흐드러진 밤에는 그리운 첫사랑도 가슴가득 아릿하게 흐드러지곤 했으니-
절대의 고요 속에 빠져보는 자유로움과 외로움, 자정을 넘겨 새벽 두 세 시가 되면 잠시 몸도 쉬게 해줘야 한다. 낚시는 물에 담근채 그대로 두고 소 거름냄새 역한 김씨네 토방에 들어 두어 시간을 웅크려 누워 눈을 부쳐야 했다. 별이 빛을 잃고 하나 둘 사라지면서 희읍스름 밝아오는 새벽 참의 신선함, 다시금 낚시를 던지는 뻐근한 몸의 깨어남, 낚시는 역시 밤낚시라야 제격일까 싶다. 끊이지 않는 입질에 밤을 하얗게 새고 나서도 그래도 미련이 또 남아 차려내온 아침밥도 건성으로 먹는 흉내뿐, 찌에만 온통 눈과 마음이 들러붙어 입에는 밥이 들어가는지 꿈틀거리는 지렁이가 들어가는지조차 모르는 때도 있었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쳐나는 노름이기도 하다. 어떤 날에 너무도 지치고 힘이 들어 낚시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져 그냥 그 자리에 누워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낚시대고 붕어고 모두 다 버리고 그냥 돌아만 갔으면 하는 생각뿐, 욕심도 과하면 욕(辱)이거니와 득(得)도 지나치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가 보다. 낚시를 하면서 보낸 청주의 1년4개월은 은퇴 전까지의 일생에서 단 한 차례 가질 수 있었던 낭만적이고 느긋한 인생 몽유기(夢遊期)였다.
초년병 꾼 시절의 서툰 낭만에 한참을 빠져있던 사이 차는 어느새 김포 읍내를 들어선다.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김포가도는 러쉬아워가 아님에도 짜증스럽게 정체가 되었지만, 대곶을 지나 새로 놓여진 다리를 건너 초지진을 지나면서는 강화 특유의 평화로운 전원이 느긎하게 펼쳐진다. 규정속도를 한 차례도 어겨본 적이 없다는 류교수의 말 다룸에 차안은 전혀 지루함이 없다. 고참인 꾼들 역시 군자답게 말투도 어눌하여 바쁨이 없다.
당신의 고향 강화에는 친형님 삼아 지내는 퇴직교수가 한 분 계시단다. 정년퇴임 후 고향에 내려와 사는 이 교수(栗村 李東昊)는 초 중 고는 물론 대학도 한 학년 터울로 선배가 되신단다. 오늘은 마침 그 형님이 짬이 나서 고기가 잘 물린다는 수로(水路)로 우리를 안내하기로 헀단다.
야틈한 언덕조차도 드믄 온수리의 들판, 수로 뚝방 위 잡풀더미 수북히 자란 곁에 체구 왜소한 사내 하나가 들바람에 서서 우리를 맞는다. 여명에 깨었다 덧잠 다시든 들녘에는 아침을 재우쳐 깨우는 바람이 제법 검세게 불어대, 천상 농투성이 차림인 사내의 옷깃을 녹두 깃발 펄럭이듯 휘날리고 있었다. 사내의 곁에는 작은 읍내 시골 장터목 자전거 수리점에나 상징적으로 매달려, 몇 년째 온갖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을 법한 낡은 자전거 하나가 참하게 세워져 있었고, 짐받이에는 류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신라시대에나 썼음직한, 낚시꾼들이 웃돈을 얹고서도 내다버리지 못하고 야밤을 틈타 몰래 어느 야산 밑 외딴곳에나 버렸을 것이 분명한 고물 낚시대 두 벌이 검정색 고무줄로 단단하게 묶여져 있었다. 하지만 옹(翁)의 얼굴에는 류교수를 만났다는, 남들 보기에도 턱없이 반가워 하는 잡티 하나 없는 시골 소년의 순박한 웃음 외엔 그 어떤 권위도 궁벽함도, 애매한 어른스러움도 없었다. 뜻이 있어 농과를 지망하고, 애쓴 연구논문이 이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영국의 과학 학술지에 발표되는 영광을 얻었을 뿐 아니라 종래에는 큰 이름의 석학이 되어 H대의 대학원장을 역임하고, 퇴임한 뒤에는 고향에 내려와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옹(翁)은 다만 내나라 무욕 산천의 한 자락 초록이요 한점 바람일 뿐이었다. 노년을 마무르는 조선 옛 선비의 모습이 이렇듯 담정(淡淨)하지 않았을까!
이 교수의 낯을 보아 수로에 잠깐 낚시대를 드리우기는 했지만 고약한 농수로 똥냄새에 길게 견디지를 못하고, 가물치 하나 건진 것만으로 서둘러 길정지(吉亭池: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로 자리를 옮겼다. 시원하게 넓은 저수지에 닿아서야 마음도 한결 트여 가져온 점심을 먹는다. 푸른 하늘에 구름마져 푸르게 담긴 물빛이 아득하니 까짓 고기야 물리고 아니 물리고가 크게 대수로울 것도 없겠다.
기우는 햇살이 한칸 낚시대에 비스듬히 빗겨 떨어지는 그 앞에 연실 싱글거리며 앉아있는 허허로운 한점, 나이 들었어도 늙음이 없는, 티 하나 없이 낙낙(樂樂)하기만한 조옹(釣翁), 물러나 저렇듯 한점 바람이 될 수 있다면 세상은 강화 하늘만큼이나 곱고도 평화로워질 것이니 이승의 못에도 한번쯤은 삶의 낚시대를 드리울 만 하지 않겠는가! 내 나머지도 저렇듯 한 평화로움이 되고 싶다. 제 홀로 놓인 낚시대에 석양빛이 어슷하다.(2004. 6. 28)
훔쳐온글(필자소개: 吳世鈗 /11회동문(59년졸)/ 서울의대 졸업후 소아과전문의 개업/최근 은퇴후 수필가로 등단, 활동중/전화 0502-500-0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