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울 아버지와 마주앉아 밥 먹다가 눈이 맞으며 뜬금없이 떠오른 생각에 실없이 히히 웃으며 물었다.
“아버지, 아버진 고등학교 졸업 몇 주년에요?”
“응응?” “내가 춘천고 졸업할 때 19살이었으니... ”
“맞아요.” “아버지와 난 24년 차이잖아요.. 그러니 아버진 올해 졸업 64회쯤 되겠네요.” “제가 올해 40주년이거든요”
내가 24년 차이의 장남이라 그런지 어려서부터 울 아버지 동창 분들을 여러분 기억한다. 그 중에서 어렸을 때지만 기억이 아주 선명한 분이 있다. 울 아버지가 “시업아! 시업아!” 하고 부르시던 이 아저씨는 우리 골목 끝에 사셨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그 당시 보기드믄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였고 귀티나는 하얀 얼굴이었다. 내기억엔 흰 모시 한복을 입거다 양복을 입은 모습이 지금도 남아있다. 또 모두들 그 분이 달필이라고 하셨다. 내 보기에도 그 분이 힘 안 드리고 휘갈겨 쓴 한문 글씨가 참 멋있었다.
보통 때는 조용한 분이셨고 그 당시 듣기로 그분의 선친이 대단한 부자였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30대 후반 정도였으나 직업은 없었던 것 같다. 가세가 기울어진 부잣집의 후예였던지 언젠가는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오셔서 쌀봉지를 들고 가시던 생각도 난다.
어떤 날엔 해질 무렵이나 초저녁에 골목길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집 앞에서 “정인옥! 정인옥!” 하며 울 아버지 아명을 고함쳐 부르는 소리가 나면 이 아저씨는 대낮부터 어디서 한잔 하신 거다. 그리고 그날 그 분이 안방에 들어와 앉아 아버질 실실 놀려대고 “제수씨, 술상 가져 오슈” 라고 하는 날이면 그 날은 온 식구가 늦게까지 잠 못 자는 밤이었다. 아버진 늘 그 놈은 술만 들면 청산유수처럼 말이 많다고 했다.
내 기억엔 그 분이 제일 먼저 세상 떠나신 아버지 친구 분이시다. 그리고 간혹 옛 친구분 세상 떠나신 말씀을 듣곤 했다. 그런데 지난 달에 그 분들이 사당역 근처에서 점심식사 모임을 가지신다하기에 찾아 뵈웠더니 이제는 방안엔 다섯분만 앉아계셨다.
“아버지, 아버진 고등학교 졸업 몇 주년에요?”
“응응?” “내가 춘천고 졸업할 때 19살이었으니... ”
“맞아요.” “아버지와 난 24년 차이잖아요.. 그러니 아버진 올해 졸업 64회쯤 되겠네요.” “제가 올해 40주년이거든요”
내가 24년 차이의 장남이라 그런지 어려서부터 울 아버지 동창 분들을 여러분 기억한다. 그 중에서 어렸을 때지만 기억이 아주 선명한 분이 있다. 울 아버지가 “시업아! 시업아!” 하고 부르시던 이 아저씨는 우리 골목 끝에 사셨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그 당시 보기드믄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였고 귀티나는 하얀 얼굴이었다. 내기억엔 흰 모시 한복을 입거다 양복을 입은 모습이 지금도 남아있다. 또 모두들 그 분이 달필이라고 하셨다. 내 보기에도 그 분이 힘 안 드리고 휘갈겨 쓴 한문 글씨가 참 멋있었다.
보통 때는 조용한 분이셨고 그 당시 듣기로 그분의 선친이 대단한 부자였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30대 후반 정도였으나 직업은 없었던 것 같다. 가세가 기울어진 부잣집의 후예였던지 언젠가는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오셔서 쌀봉지를 들고 가시던 생각도 난다.
어떤 날엔 해질 무렵이나 초저녁에 골목길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집 앞에서 “정인옥! 정인옥!” 하며 울 아버지 아명을 고함쳐 부르는 소리가 나면 이 아저씨는 대낮부터 어디서 한잔 하신 거다. 그리고 그날 그 분이 안방에 들어와 앉아 아버질 실실 놀려대고 “제수씨, 술상 가져 오슈” 라고 하는 날이면 그 날은 온 식구가 늦게까지 잠 못 자는 밤이었다. 아버진 늘 그 놈은 술만 들면 청산유수처럼 말이 많다고 했다.
내 기억엔 그 분이 제일 먼저 세상 떠나신 아버지 친구 분이시다. 그리고 간혹 옛 친구분 세상 떠나신 말씀을 듣곤 했다. 그런데 지난 달에 그 분들이 사당역 근처에서 점심식사 모임을 가지신다하기에 찾아 뵈웠더니 이제는 방안엔 다섯분만 앉아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