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유권자의 넋두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실패한 유권자다. 스무 살 넘기면서 참여해 온 열 차례에 가까운 대통령 투표에서 내가 찍은 후보자가 당선된 게 단 한번 뿐이었다는 참혹한 결과를 생각하면 이 사실을 자인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나마 내 지지를 받고 당선된 유일한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국민에게 안겨준 실망은 나를 더욱 허탈하게 만들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내가 던진 한 표가 죽은 표로 판명되기는 매일반이었다. 그래서 나이 들어 갈수록 선거얘기만 나오면 나는 점점 더 주눅들어 갈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내가 불성실한 유권자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록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피거나 적극적으로 누구를 지지했던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을 빌미 삼아 기권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기에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 왔다. 어느 한 사람의 당선이 확실하게 전망될 때, 당신이 당선되는 데 찬성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뜻으로 다른 후보자에게 투표한 일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으나, 고백컨대 누가 꼭 낙선될 것 같아 동정표를 찍은 일은 없다. 다시 말하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일은 아니었더라도 결과적으로 나는 선거 때마다 소수의 편이 된 셈이다. 그러나 어쨌든 빠짐없이 참여한 선거에서 당선자를 만드는 데 역할하지 못하였다는 결과만을 따질 때, 나는 실패한 유권자임이 분명하다.
선거철이 되어 학연이든 지연이든 혈연이든 아무튼 어떤 관계로든 내게 아무개를 지지해 달라고 부탁해 오면, 나는 “내가 찍으면 떨어지는데?” 하며 우스개 소리로 넘기곤 했는데, 이건 단순히 웃자고 한 얘기만은 아니었다. 과거 내 투표 결과에 대한 통계에 기초하면 전혀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말은 아니었다.
누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되겠다고 나서서 반대하거나 의견을 내세운 일도 없었다. 이와 반대로 어느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편든 일도 없었다. 따라서 정치에 관한 한 나는, 그저 무색 무취한 평범한 시민이요 조용한 유권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특별한 선호나 편향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정치라는 게 우리 사는 살림살이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만 않았다면 아마 선거나 투표에 대하여 별다른 생각을 하지않고 살았을 듯 싶다. 그런데 정치라는 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고로 마냥 무관심하게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소극적인 행동인 줄 알면서도 투표에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에 나름대로 국민된 도리를 했다고 위안 삼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내 성향이 결정적으로 바뀐 때가 지난 대선이었다. 그 때라고 해서 평소 내게 없던 무슨 특별한 정견이 생겼다기보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예견되는 문제가 적지않을 것 같다는 네거티브 효과를 걱정한 때문이었다. 선거 기간 중 보여준 이른바 ‘노사모’를 비롯한 노후보 캠프의 운동권적 발상이 이런 반감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노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조건 ‘수구 꼴통’, ‘반개혁 세력’, 또는 ‘냉전 세력’ 이라고 일방적으로 몰아 붙이는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기성세대의 반론을 펴 보이기도 하였다. 난생 처음으로 선거에 관하여 우리집 아이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나는 역시 실패한 유권자로 다시 한번 판명되었다. 다른 선거에서보다 적극적인 견해를 표시했던 만큼 실패감도 컸다. 그렇지만 그들이 주창하던 변화와 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자리잡아 가기를 기도하며 바랐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일년남짓 우리나라에 나타난 현상은 이런 염원을 무참히 짓 밟았고 마침내 헌정사상 처음 있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온 나라는 탄핵을 두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고 ‘반노’와 ‘친노’로 갈리어 극한적인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내가 지난 대선 때 어렴풋이 걱정했던 가장 나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고 만 꼴이다. 열린우리당에선 이런 충돌을 변화와 개혁에 수반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난국이 변화와 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내가 학교문을 나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게 1969년이니 벌써 35년 전 일이다. 그 동안 참 많은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를 경험하였다. 철들며 4.19, 5.16을 겪었고, 군사정권 밑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도 직접 보고 겪었다. 1인당 국민소득 50~60불 시절부터 12,000불에 이르는 초고속 변화의 시대 속에 살아왔다. 한시도 안정과 평화를 구가하며 편안히 살지 못하고 치열한 경쟁과 변화에 휩싸여 살아왔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 때에도 변화와 개혁의 주체가 있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으며 서로 논쟁과 투쟁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온 국민이 갈리지는 않았다.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든 국민들의 생각도 따라 변했고, 사회도 여기에 발 맞춰 변해왔다.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변화와 개혁이 한시도 멈추지 않고 이어져 왔다.
나 자신도 내가 속했던 회사 안에서는 늘 변화와 개혁의 주체였다고 자부한다. 나라살림과 회사살림이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변화를 주도하는 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정권이 추구하는 변화와 개혁이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모습이라 데 동의한다 하더라도,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추진 방법이나 추진 주체의 생각은 문제가 많고 불안하기만 하다. 불필요한 갈등을 증폭시키고, 편을 가르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인민재판식으로 깔아 뭉개는 등,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설사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룬다 한들 이렇게 국민들 마음에 큰 상처를 내고 이리 저리 패 가르는 결과가 된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과 변화가 목적이 아니고 국민이 편안하고 잘 사는 게 목적이라면 이렇게 빈대를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바람직한 변화라도 그 과정에서 회사가 거덜 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조그만 회사에서도 변화와 개혁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나라를 개혁하는 일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변화란 윗사람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이 먼저 변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행동이 바뀌지 않은 채 말로만 떠들면 아무리 좋은 개혁도 설득력을 잃는다. 말로만 부르짖는 변화는 공염불이요 소음일 뿐이다. 이런 구호가 반복되면 그 개혁은 동력을 잃게 된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설득하거나 포용하려는 생각 없이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매장하려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반개혁 세력이다. 편짜기로 조직적인 반발을 촉발하는 일은 개혁에 방해가 될 따름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느슨한 잣대를 대고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대는 세력은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자신의 판단과 행동은 언제나 정당하고 상대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오만과 아집을 버리지 않으면 변화를 이끌 수 없다. 겉과 속에 다른 셈법을 가지고 남의 눈을 속이려 한다면 그 변화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결과가 나쁘면 남의 핑계 대고 좋으면 자신의 공적이라고 내세울 때 그 사람은 이미 개혁적 지도자가 아니다. 변화와 개혁은 지도자와 윗사람들이 희생하고 조용히 행동으로 보여줄 때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이 걱정이다. 이런 판에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나와 같이 실패한 유권자에게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난감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에서 발표하는 예상은 열린우리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야당에서 발목을 잡아 변화와 개혁을 못했다고 핑계를 대 왔으니, 열린우리당이 이번 선거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노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으면, 정국이 안정되고 변화와 개혁이 잘 추진될까?, 또 다른 다수의 횡포를 막으려면 못 마땅하더라도 야당에게 표를 던져야 할까?, 내가 표를 준 후보가 떨어진 과거를 생각하고 내 생각과는 반대로 투표를 해야 할까?, 생각이 많다. 선거를 앞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오직 한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이번 총선 결과가 앞으로 ‘우리나라 국운은 결국 여기까지 뿐이란 말인가’하는 자조 섞인 한숨으로 변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자면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명철하게 판단하여 투표에 임해야 할 터인데 누구를, 어느 정당을 택해야 할지 도무지 혼미할 따름이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반가운 얘기를 들었다. 이제 무대에서 퇴장할 60대 70대 사람들이 왜 미래를 결정하려 하느냐, 쓸데없는 걱정 그만하고 집에서 편히 쉬는 게 좋겠다, 라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기자단 앞에서 말했다 한다. 말 잘하는 아나운서 출신인 그 분이 말 실수 했을 리는 없고 정말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생각해봐야 겠다. 나도 올해로 정동영씨가 얘기하는 60줄에 들어 선 사람이니까. 후보자 등록 상황을 보고 내가 사는 천안이 갑, 을 두개의 선거구로 나뉘어져 있음을 알았다. 이런 사람이 투표권을 갖는다는 것도 따져보니 우스운 일이다. 다가오는 선거날엔 쓸데없는 온갖 걱정 모두 잊고 나들이나 떠날까? 이렇게 젊은이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마음 편히 살 날이 온다면 오죽이나 좋으랴!
( 200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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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결보다도 더 걱정스러운게 남남대결이라고 얘기들 해왔는데, 작금의 상황이 꼭 그렇다. 누구의 탓인가 생각을 하고 눈 부릅뜨고 투표하자. 아울러 애들 교육도 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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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투표를 한단말야? 자넨 아직 예순이 안됐어? 나이를 예순씩이나 쳐먹었으면 집에서 쉬래잖아? 더구나 얘들 교육이라니, 큰 일 날 소릴 골라가며 하고 있네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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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나 사고가 필자와 비슷한 사람들한테 표현까지 잘 해서 한 얘기니까 공감대가 넓은 내용 잘 읽었는데 그래도 꼬리글만은 항섭이 얘기가 맞는 것 같으네. 열내지 않고 교육하는 기술을 익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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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가 말을 잘 한다는 병근이 말이 맞는 건가? 대단히 치밀한 한병근이가 잘못 생각할리는 없을 텐데...이것도 헌재에서 명학한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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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가둬두었던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면 얘기가 되지만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 불쑥 튀어 나올 수가 있는건가? 노망나지 않았다면 말이야. 예순도 안된 정씨가 설마 노망이야 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