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시엔 레짐(구제도)를 타파하기 위하여 1789년 5월 베르사이유의 회의실에서 모이기로 한 평민대표들이 회의장에 와보니 문 앞에 [수리 중]이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문이 걸어잠겨 있었다. 그러자 평민대표들은 근처 테니스장에 모여 새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해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였다, 그 유명한 [테니스코트의 서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2004년 2월 22일 검단산은 서슬 퍼런 점령군처럼 운무가 온 산을 에워싸고 입산을 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금니를 꽉 문 수십 명의 인파들이 물살을 헤치듯 눈과 비와 안개와 바람 그리고 추위의 5중 벽을 뚫으며 헬리포트장으로 오르고 있었다. 동과 서 두 개의 길로 오른 일단의 무리들이 두 시간 후 목적지에 모여 단을 쌓고 산제를 올렸다. 그 유명한 [40년의 서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40년 만에 처음 본 사람과 동창이라고 서로 멋쩍게 인사를 하고 한 잔 돌리다보면 반시간도 안 되어 거의 매일같이 보아왔던 사람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게 고등학교 동창 사이다.
말이 쉽지 짧게는 43년 길게는 46년의 緣을 맺어 세상을 함께 살아온 우리다. 애 때 만나 노인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우리는 같이 할 일이 그리고 할 말이 무궁무진함을 어제 느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검단산을 오르며 그 누구도 날씨에 대해 불평 한 마디 하는 걸 못 들어봤다. 흙투성이 옷을 입은 채 불편하게 쪼그려 앉아 밥을 먹으며 그걸 불편해 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못 보았다. 서로 사람 숫자가 많은 게 자기 일처럼 참 좋다는 표정들이었다. 올해 치루어질 각종 기념행사의 성공이 불을 보듯 훤해 보였다.
크건 작건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들한테는 그건 무조건 대사다. 졸업40주년이라는 상징적 대사를 치루는 이번 회장단과 준비위원들의 열성을 보노라면 마치 전투에 임하는 전사들을 보는 것 같다. 말석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냥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돈으로도 시간으로도 아이디어로도 도울 길 없는 무능을 탓하며 재주라야 글 몇 줄 쓸 줄 안다는 것밖에 없기에 어제 검단산 산행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큰 접시에 담아 놓는다.
무려 80명 가까운 동문들이 산행에 참가를 하였다. 엄청난 숫자다. 오는 5월에는 그 두 배에 해당하는 160명을 모아 메인이벤트를 한다고 한다. 내가 할 일이야 외국에 나가 있다가라도 그 날에 맞추어 돌아와 한 석 차지해 주는 거겠지만 그동안 동창모임에 여러 사정으로 나오지 않았던 친구 한 명이라도 데려나올 참이다.
등산을 잘 못해 항상 B조의 말석을 차지하는 나지만 어제는 정말로 멋진 산행이었다. 비바람을 뚫고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오르고 내린 나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함께 했던 80명의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