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일 신정이 지나고 며칠 지났으니 새해이건만 구정이 지나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마음속에 진정 새해가 온것 같지 않은 어정쩡한 상태로 신년 초를 보내고 있다. 절기로 따져도 冬至가 가고 小寒이 지났으니, 우주의 새해가 시작된지 한참이나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생활 습성이 계절의 변화를 쉽게 인지하지 못함은 감각적, 직관적 ,생체적 감응이 무뎌서인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옛날에 비하면 요즈음의 날씨는 겨울이라고 여기기에는 선뜻 긍정할 수 없을 만큼 추위가 심하지 않기도 하다. 차갑게 얼어붙은 골짜기를 내달리는 동장군의 기세와 한기의 업습에 하얗게 질려 딱딱하게 굳어버린 동토 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얼마나 와들와들 떨었던가!
산그늘 심한 응달에는 먼저 내린 눈이 녹지도 못하고 남아있는데 산자락 양지쪽에 봉긋봉긋 솟아있는 봉분들 사이로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말없이 서있는 비석들을 바라보며 인생은 무엇이고, 삶은 무슨 의미였는지 헤아리는 마음 저 밑에 앙금처럼 가라앉았던 한 가닥 감정이 일어남을 마주 대한다.
어차피 인간은 1회용 배터리가 장착된 유기체인데 왜 남아있는 자는 먼저간 자의 빈자리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일까? 거꾸로 매달아도 시계는 간다고 , 우리 인생의 시계는 멈추어짐이 없거늘 누가 누구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가?
우리는 죽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자 한 것이 아닐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자는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있고, 그로 인해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그의 죽음을 막기 위해, 죽기전에 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그 사람에게 충분히 감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심리적인 현상일거라고 생각한다. 상실 직후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않다. 남편이(아내, 자식, 부모, 형제) 갔을 리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런데 어디 있을 까? 전에 늘 그랬듯이 현관으로 걸어 들어올거야 하며,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복귀하기를 , 죽음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악몽이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장례의 의식을 거치며 상실을 체념하거나, 수용하게 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통은 점점 줄어들게되고, 죽은 사람이 기억날때
슬픔을 느끼나 , 그 슬픔이 꼭 강렬한 비통이나 공허와 절망 만은 아니게 되는것 같다. 그 기억은 오히려 따뜻하고 그리움에 찬 빛일 수도 있으니까...
훼밍웨이의"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에서의 종은 기쁨이나 즐거움을 표시하는 것이 아닌 조종이다. 나를 위한 종소리,즉 내 죽음의 조종이다. 사람은 완전할 수 없고 , 아무리 홀로 떨어져 있으려해도 서로 연관되어 있다. 장마,폭우에 돌덩이 흙덩이 떠내려 가면 대지가 가벼워지고 작아지듯 우리의 생명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 티벳 死者의書 "에 보면 인간의 혼은 죽은 후 백회혈을 통해 빠져나와 최소 3일에서 최장 49일까지 유체 주변에 머문다고 한다, 그 기간동안 그 혼이 좋은 곳으로 환생하도록 돕기 위한 노력을 남아있는 자가 해야한다고 한다. 佛家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죽은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49제를 지내는가 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은 자가 생전에 잘해주었던, 못해주었던 간에 그를 떠나 보내는데 서투를 수밖에 없다.
몸부림치며 애통해 하는 이 애도는 누구를 위함인가? 생전에 그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사랑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 후폭풍도 크기 마련이고, 그 폭풍에 휘말려 극단적인 비통 속으로 자신을 몰고가 세상이 끝난듯, 우주가 멈춰버린듯 생각도 감정도 멈춘 멍한 상태로 머물러있거나, 원망과 자책의 깊은 수렁속에서 자탄과 자학을 일삼고 있다면 아무래도 離乳가 덜된 미성숙의 미련이고 아쉬움이지 죽은자의 존재에 대한 존중과 고마음을 표시하기 위한 (명복을 위한) 행위는 아닌것 같다.
이쯤 살고보니 우리의 나이가 앞으로 좀더 견디기 힘든 상실감 앞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고 ,
그 때마다 우리는 되풀이 해서 힘든 삶의 고비를 넘기며 마음 속에 조종을 울릴 것이다.
어느 禪師의 시 한 귀절 생각난다.
生從何處來 (태어난다는 것은 어느곳에서 오는 것인가)
死向何處去 (죽는다는 것은 어느곳으로 가는 것인가)
生也一片浮雲起 (태어난다는 것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과 같고)
死也一片浮雲滅 (죽는다는 것은 한 조각 뜬구름이 흐트러짐과 같고)
生死去萊亦如然 (태어나고 ,죽고, 가고,오고하는 것들도 이와 같다)
생은 다 그런 것이라고 우리보다 먼저 경험한 선배들의 말을 따라
그러려니하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용문산 기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