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동문 사이트에 知者不言 言者不知 라는 말이 올라왔다. 꼭 내게 하는 충고 같아서 잘 생각해 보려 한다. 혹 내가 더 떠들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 이 말을 생각하는 중이라고 알아주기 바란다. 아무 결실도 없이 헷갈리는 마음으로 한해 보낸다는 게 아쉬웠는데...
잊혀져 가는 것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렇게 시작하는 ‘낭만에 대하여’란 노래는 가수 최백호의 털털한 음색에 가사와 리듬이 잘 어우러져 우리들을 한순간 3-40년 전으로 되돌리게 하는 기이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이 마지막 노랫말에도 뭔가 짙은 매력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인기가 높은 모양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모닝커피 생각이 난다.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어 잊혀져 가는 그 모닝커피 말이다. ‘옛날식 다방’이 풍기는 이미지와 ‘도라지위스키’란 가물가물한 이름이 합성해 만드는 연상작용일까? 그 시절, 아침나절 다방에 가면 어디서나 커피에 달걀 노른자를 넣은 모닝커피라는 걸 팔았다. 계란이 귀하고 비싸서 그랬는지 아침식사를 못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배려였는지 모르지만, 회사 출근해서 할 일 훑어본 뒤 가끔 이 모닝커피를 마시곤 했다. 저녁 때 다방에 가면 위티라는 차도 있었지. 위스키 몇 방울을 떨어뜨린 홍차가 위티였다. 아마 여기에 썼던 게 도라지위스키였을 것이다.
내겐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10년도 넘었나, 아무튼 오래 전 일이다. 서소문에 있는 유명한 식당에 가서 식사와 함께 포도주를 한 병 주문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음식도 포도주도 나오질 않았다. 종업원을 불러 까닭을 물었더니 포도주를 사러 갔다는 거였다. 이렇게 큰 음식점에 어떻게 포도주도 없나?,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포도주가 나왔다. 그 포도주를 보고 나는 거의 기절하는 줄 알았다. ‘천양포도주’를 내오다니! 종업원에게, 아니, ‘마주앙’이나 다른 포도주는 없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럼, 와인을 달라고 해야지요”라고 답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그 대답에 요절복통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와인과 포도주를 다른 것으로 알고 있던 종업원이 무안해 할까 봐 참으려고 애썼지만, ‘천양포도주’ 구한다고 온 동네 가게를 다 휩쓸고 다녔으리라는 상상에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옛날 생각하며 그냥 마시자,는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그 ‘귀한’ 포도주를 마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그 일화다.
모닝커피도 도라지위스키도 천양포도주도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누구 하나 아쉬워하는 사람도 없이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간다. 그 사이 우리는 나이만 먹어 가고 있다.
이렇게 실체는 사라지고 흐릿한 추억만 남겨놓은 풍경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페달 밟을 때마다 삐거덕 대던 초등학교 교실의 풍금, 눈 내리는 겨울밤 고구마 구워 먹던 놋화로, 백옥 같이 정갈한 저고리 동정 다리던 인두, 콩깍지 털어내던 도리깨,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 벽걸이 등잔…. 문명의 이기에 몰려 한 발짝씩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져 버렸고, 그래서 잊혀져 가는 것들을 하나하나 읊기엔 우리 숨이 너무 짧을 게다. 그러나 비록 그 물건들은 사라져 잊혀져 간다 해도 이것들이 우리 마음에 남겨 놓은 추억까지 깡그리 지워버리지는 못하나 보다.
화로가 없어진 건 오래됐는데, 다 사윈 듯하여 가만히 들추면 다시 밝은 빛 일구며 은근한 따사로움을 안겨주던 화로불, 옹기종기 화로가에 둘러앉아 오금 저리며 들었던 할머니의 몽달귀신 얘기, 묻어둔 고구마 익어가는 구수한 내음, 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 국물의 시원한 맛, 한밤중 뒷간에 가게 되면 어쩌나 안달하던 조바심, 이런 화로와 연관된 기억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으니 말이다. 마치 빛 바랜 흑백 사진처럼 눈에 선한 걸 보면 추억은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듯 싶다.
이런 풍경 가운데 하나가 음악감상실이다. 젊은 시절 시간이 날 때마다 드나들던 음악감상실들이 어느 땐지 모르게 모두 사라졌다. 나는 이게 못내 서운하였다. 가지는 못할 망정 어딘가에 있기만 했어도 그렇게까지 섭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예 없어진 바에야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일, 그런 사실 때문에 마음이 더 허전했다. 우리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고전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감상실이 여러 군데 있었다. 르네상스, 아폴로, 크로이첼, 그밖에도 시내 한복판에 성업중인 음악감상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음악실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걸까? 거기 드나 들며 긴 머리 소녀 하나 만나 예쁜 추억이라도 만들었다면, 아니 짝사랑이라도 해 보았다면, 그 생각으로 텅 빈 마음을 달래보련만, 그런 추억마저 없는 게 더욱 허망했다. 미래의 지휘자 꿈 꾸며 미친 듯 손 내졌던 더벅머리, 킬킬거리며 소곤소곤 얘기 나누던 밉상의 여학생들, 그 밖엔 생각나는 게 없다.
그런데 어제 반가운 소식을 라디오에서 들었다. 일산에 “그야말로 옛날식” 음악감상실이 생겼다는 얘기였다. 나 말고도 음악감상실을 그리워 한 사람들이 또 있었나 보다. 언젠가 한번 꼭 찾아가 보려고 한다. 예전에 만들지 못한 추억 하나쯤 만들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아니면 어떠랴. 거기 발을 들여놓는 순간 틀림없이 잊고있던 추억거리 몇 가지는 떠오를 것 같다. 그 때까진 ‘낭만에 대하여’나 들으며 모닝커피 생각이나 해야겠다.
그러나 음악감상실이든 그 무엇이든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게 뭐 그리 대수랴. 함께 웃고 울고 뛰놀고 다투고 공부하고 경쟁하다 저 세상으로 가버린 친구들도 한 둘이 아니거늘. 그들과 함께했던 관계도 사연도 추억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이런 하찮은 일에 연연해 하는 건 허튼 생각에 지나지 않으리라. 옛날을 돌이켜 보려거든 이런 미망(迷忘)에서 깨어나 차분한 마음으로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을 먼저 회상해야 할 일이다. 가만히 앉아 저 세상 친구들 회고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면, 아직까지 내 곁에 숨쉬고 있는 친구들에게 한걸음 다가가 회한 남길 일 하나라도 줄여야 하는 게 아닐까?. 언제, 누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게 될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인생 아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2003.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