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요즈음 ‘보릿고개’를 아는 젊은이들은 많지 않을 게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머리로 이해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 터이고 몸으로 겪어 본 젊은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이 60을 코앞에 둔 나 자신도, 어렸을 적 숱하게 보릿고개란 말을 보고 듣고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 덕분으로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보릿고개’를 체험했든 그렇지 않든 한가지 꼭 기억해야 할 일은, ‘보릿고개’란 아주 먼 옛날얘기가 아니라 불과 30여년 전까지 우리 세대가 겪었던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잘 모르는 젊은이들을 위해 짧게 설명하자면, 가을추수로 걷어들인 곡식이 떨어지는 봄부터 보리를 타작하는 여름까지 먹을 게 없어 굶주림에 시달렸던 기간, 즉 춘궁기(春窮期)를 ‘보릿고개’라 불렀다.
부모 세대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들려주려고 보릿고개 얘기를 꺼냈더니 “쌀이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지 왜 굶었어요?”라는 아이들 반응에 할 말이 없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있다. 이 얘기는 누군가가 지어낸 우스개 소리로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식교육에 혹 도움이 될까 생각하여 우리 젊어서 겪은 고생을 내비칠라치면 그 반응은 대개 ‘그래서 어쩌라는 얘깁니까?’ 또는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하는 떨떠름한 표정이기 일쑤다. 그런 세대에게 보릿고개 얘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비록 이런 얘기가 기성세대의 잔소리에 지나지 않을망정 우리세대가 겪었던 일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줘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거기서 교훈을 찾느냐 못 찾느냐는 듣는 사람들의 몫이지만…
우리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1 인당 국민소득이 미화 100불이 안 되는 비참한 시기를 거쳐 박정희 전대통령 집권시절 추진했던 네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계획 기간을 통하여 고도성장을 체험하였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루어 낸 이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칭송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표현만 ‘기적’이었을 뿐, 실제로는 그 시기를 거친 국민 모두의 희생과 땀으로 가꾸어 얻은 결실이었다. 그 결과 우리가 빈곤에서 헤어날 수 있었고 오늘날 누리는 국가경제의 틀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인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유보되기도 했고 정치가 퇴행하는 역작용도 있어 당시의 권력자들이 비판 받고 있지만, 우리 세대가 일으킨 경제발전과 그 혜택으로 보릿고개를 대물림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라가 보유한 외화가 1억불에도 못 미처 투자는커녕 국가가 부도날 위기에 처한 때도 있었다. 대학까지 졸업한 젊은이들을 서독에 광부로, 간호사로 파견하여 이들을 볼모로 차관을 얻어 온 때도 있었다. 돈을 빌리러 나간 대통령이 이들이 나라밖에 나가 고생하는 현장을 둘러보며 목이 메어 써 놓은 연설문도 끝까지 읽지 못하고 같이 붙들고 울다가 돌아 온 일도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30여 년 전에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경제 발전이 이루어 진 것이지 어쩌다 보니 우연히 얻은 결과가 아니었다. 정말 물 불 가리지 않고 일했고 정신없이 앞만 보며 내 달렸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는 일이 자식들과 오붓하니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이런 저런 얘기 나누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오직 일만을 앞세우며 한 세월을 보냈다.
이제 현재 상태에서 경제를 더 발전시켜 우리나라가 그야말로 선진국 대열로 진입하느냐 아니냐는 지금 우리나라를 이끄는 우리 다음 세대들의 몫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만들겠다는 게 지금 우리나라의 목표다. 여러 가지 이론을 얘기할 수 있지만 경제 성장은 일자리가 얼마나 많아지는지에 매어 있다. 나는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집에서 살림하는 주부들이 모두 일터로 나가 일하게 되면 1인당 소득 2만불은 달성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고 말해왔다. 주부들이 집에서 살림만하면서 국민 1인당 2만불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나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내 엉터리 이론의 배경이다. 결국 국민소득 2만불 시대란 그렇게 낭만적이고 좋은 일만 예상되는 꿈같은 시대가 아니라 이에 상응하는 노력과 희생과 대가를 국민들이 나누어 지불하여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놀고 먹는 사람이 없어져야 달성되는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몇 년 전부터 그 반대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 실업 문제까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첫 일자리를 구하는 젊은이들 사이에 ‘222의 법칙’이란 얘기가 돌고있다 한다. 200 군데 지원서를 내고 20개 회사에서 서류전형에 통과하고 2 곳에 면접을 볼 수 있으면 행운이란 얘기라 한다. 그만큼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얘기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구인란으로 허덕이고 있다. 아무리 사람을 뽑으려 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 뽑을 수 없고 일할 사람이 없으니 일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비록 규모는 작아도 근무환경까지 나쁘다고 할 수 없는 회사도 그 모양이라니 하물며 환경이 조금 열악한 회사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마땅한 자리가 없고 기업은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힘드는 기현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상태다.
그 결과 중소기업들은 젊은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자리를 해외 근로자로 메워 겨우 연명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런 조류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불법 체류 외국 근로자의 숫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 하고 정부는 시한을 정해 자진 출국을 명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리라 한다. 사람을 구할 수 없는 중소기업들은 일거리를 쌓아놓고 놀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은 틀림없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부터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 모른다는 게 더욱 큰 문제다.
국민경제 성장율이 적어도 7%를 넘어야 매년 새로 배출되는 인력을 흡수할 수 있다는 통계자료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율은 2% 대에 머무르리라는 전망이다. 그러니 청년실업자가 증가하는 현상은 당연하다. 일자리 찾는 사람을 방황하게 만드는 정부도 문제이려니와 마땅한 일자리가 나설 때까지 놀고 먹으려는 젊은이들의 생각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혹시 이런 현상이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나 책임감의 결여, 또는 사치스러운 생각의 결과 때문이라면 정말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걱정이 보릿고개를 넘어 온 세대들의 쓸데 없는 노파심 때문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려는 기색이 없다. 나아지는 것은 고사하고 점점 더 나빠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건 생산시설을 싣고 해외로 옮겨가 그나마 부족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소식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회사를 차리도록 유도하기는커녕 기왕 진출해 있던 외국자본마저 철수를 검토한다는 기막힌 얘기뿐이다. 법을 초월한 노동조합의 극열한 투쟁이 이런 움직임을 부축이고 있고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성장이 우선인지 분배정의가 우선인지 논란이 무성하다. 그러나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나눌 게 있어야 분배정의가 의미를 갖게 되지 나눌 게 없거나 점점 줄어 들어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장은 아랑 곳 없이 분배에 매달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다투다가 서로 피만 흘리고 끝장 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생긴다. 배 고플 때는 이런 상황은 생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이제 웬만한 노동자도 먹고 사는 문제는 큰 걱정이 없고 승용차 몰고 다니며 부끄럽지않게 살다 보니 나라야 어찌 되든 오직 눈 앞에 놓인 자신들의 몫에만 정신이 팔린 게 아닌지 그게 걱정이란 얘기다. 그러나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조금도 희생하지 않고 발전을 바란다면 그것은 마른 하늘에 소나기를 기다리기보다 더 헛된 바람이다.
설마 우리나라가 그렇게 되기야 하겠느냐 하며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을 달성해 놓고 거기서 주저 앉아 후진국으로 되돌아 간 나라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런 나라인들 국가 경제를 더 발전시켜 당당히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바라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이미 이룬 성과에 들떠 조금 한눈 파는 사이에 다시 퇴보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만 이 역사적 사실에서 예외이기를 바란다면 곧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가 진정 1인당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희망한다면 머리띠 두르고 거리로 뛰쳐나가 구호 외치며 바쁜 사람들 교통만 방해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다만 한시간이라도 더 일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젊은이들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고 그런 자리 찾으려고 세월 보낼 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시작해야 한다. 원하기만 한다면 받아들일 일터가 줄 서 있다. 그런 다음 그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자리를 일하기 좋은 자리로 바꾸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일자리가 하나씩 둘씩 늘어나고 마침내 집에서 살림하던 주부들을 일터로 불러내야 할 것이다. 경제를 되살리고 2만불 시대를 여는 길은 이렇게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개개인의 희생과 인내로 되 살려내는 일뿐이다.
‘보릿고개’를 겪은 사람들의 눈엔 이 길이 보인다. 그러나 ‘보릿고개’를 모르는 젊은이들은 왜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상황 판단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그냥 ‘보릿고개’ 타령이나 읊는 어느 늙은이의 쓸데없는 소리라고 무시하고 지나치지 않기 바란다. 한발 물러나긴 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을 70불에서 1만불까지 성장시킨, 한 때 이 나라의 주역들이 경험에 근거하여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다시 한번 성장을 이룬 다음 분배는 그때 가서 따져도 늦지않다. 우선 병든 소를 살려야 우유를 얻어 마실 것이 아닌가. 오늘의 젊은이들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 ‘보릿고개’를 까맣게 잊고 ‘그래서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도대체 우리보고 어쩌라는 얘기냐?’며 딴전 보며 허황된 꿈에 취해 산다면 우리나라의 장래가 밝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2003.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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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다 후련하다. 아무도 말 하려고 하지 않는 이때, 자네라도 계속 좀 외쳐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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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메아리없는 아우성인걸 뭐. 그저 답답하니 소나기 맞은 중처럼 혼자 궁시렁거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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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근이 여전하구나. 조그만 칼럼 Web site 하나 준비중인데 필자로 초빙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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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근이처럼 예지력과 설득력이 있는 분이 있어서 현실의 정확한 좌표를 젊은이들에게 알려주어 젊은이들이 정신적 공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신나게 그들의 노래를 부르면서 사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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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자네의 글을 보면 어찌 생각이 그렇게 같을꼬-----참으로 시원하게 잘도 써주는 자네에게 고마울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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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시리즈를 계속 읽어보네만 우리끼리 읽기에는 아까워서 일간지에 자네칼럼난을 만들어 계속 연재 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