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일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간간이 내리던 11월 세째토요일인 15일 밤 9시 밀양역 플랱홈에 1,000여명의 승객을 실은 기관차3대가 끄는 16량짜리 새마을호가 조용히 멈추어섰다.
이윽고 사대부고 16회 상봉회 멤버중 시간과 마음이 있었던 6명이 모습을 들어내었다.
상봉회 발기멤버인 김윤종.이상훈,정만호,신해순, 정태영과 퇴행성관절염으로 눈감으면 자연히 낫는다는 의사의 선고로 등산을 포기하다시피했던 김영길이었다.
표충사로 가는 노선버스가 끊겨 택시정류장으로 가니 미터기에 나오는 금액만 받는다는 기사가 손짓을 한다.
밀양시내를 벗어난 택시는 좁은 국도를 나르듯이 달린다.
캄캄한 시골길 양 옆에는 환히 불을 밝힌 들깻잎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벌판이 가득히 이어진다.
밤새도록 10분간격으로 불을 밝게 켜주면 들깨가 성생활을 하지 못하여 꽃을 피우지 않기 때문에 겨우내내 깻잎을 따서 팔아 돈을 벌 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밀양의 특산물로는 얼음골사과가 유명하다고 한다.
9시40분경 기념품상점과 호텔,여관,나이트클럽,식당이 즐비한 시설지구 위쪽 언덕 개울옆에 자리한 약산장 호텔 앞에서 내려 세찬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며 호텔문을 열고 들어가 프론트 안쪽에서 마침 장든 젊고 예쁜 여주인을 이상훈총무가 깨워서 예약된 방으로 안내받아 들어가 보니 널찍하고 깨끗한 방이 두개나 된다.
잠들기엔 아직 이른시간이어서 김윤종 상봉회고문이 준비해온 40도짜리 코코넛와인을 개봉하여 맛만 보고 내일을 기약하며 근처 송림장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파전과 손두부를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내일의 등산코스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11시가 되었다.
신해순교수와 정만호사장 두명의 주선은 작은방에서 소주 한병으로 송림장에서 못다한 정담을 나눈다, 다른 네명의 친구들은 건너편 큰 방에 자리잡고 눕자마자 꿈나라로 달려간다.
제 2 일
새벽5시 누군가의 휴대폰 알람이 눈치없이 정적을 가르며 끊임없이 큰 소리로 울려 모두의 선잠을 깨운다.
다시 잠깐 눈을 붙이고나니 6시가 훌쩍 지났다.
부랴부랴 일어나 행장을 꾸리고 나선 시각이 송림장식당과 약속한 시간보다 20분 늦은 7시10분전이다.
송림장식당 주인은 작지않은 키에 깡마른 70대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인데 아직도 젊었을 때의 아름다운 자태의 잔영과 지성스러운 마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맛있는 된장국과 새로 밥을지어 내주어 아침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더 재미있었던 일은 그 할머니의 거침없는 경상도말투였다.
할머니 왈 "지난주에는 닷새동안 비가 연장 내려 여러무리의 등산객들이 아주 조졌어!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
7시40분 송림장식당을 나와 왼편으로 다리를 건너서 표충사 가는 길로 접어드니 아름들이 노송이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요술램프의 거인처럼 옆에 비끼어 서서 길을 안내하는 것 같다.
매표소에는 아름다운 보살과 비구니들이 1인당 2,000원씩 받고 입장권을 내준다.
요며칠간 비가 온 때문인지 계곡에 물이 많고 솔잎들이 깨끗하고도 통통하게 살이 올라 탐스러워 보인다. 아침해가 높이 떠오르면서 두텁게 껴입었던 옷들이 부담스러워진다.
표충사 경내를 두루 구경하고 신해순교수의 3층석탑촬영이 끝나면서 절을 나와 왼편 등산로로 접어들어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산무리들인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취서산, 고헌산, 간할산, 재약산수미봉, 재약산사자봉(천황산)의 8개 산무리들 가운데 대표격인 재악(약)산 수미봉과 사자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완만하게 올라가는 등산로는 마치 평지를 걷는듯 편안하다. 간간이 대나무가 있어 표충사의 옛이름이 죽림사였다는 소개말을 떠오르게 한다. 한주일 전에만 해도 단풍이 고왔을텐데 이제는 모두 발에 밟히는 낙엽이 되어 단풍잎으로 카페트를 만들어 깔아놓은것처럼 발밑이 푹신푹신하다.
서서히 경사가 급해지면서 머리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다. 시간반쯤 오른 후에 푹신한 낙엽이 깔린 산자락에 자리를 잡고 나주배과수원에서 따온 커다란 배를 깎아서 여럿이 갈증을 푼 다음 옷을 하나 더 벗어서 배낭에 접어넣고 너덜길을 한참 더 올라가니 날씬한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부끄러운듯 몸을 베베꼬면서 바위를 타고 한없이 내려오듯이 아름답고 시원하게 보이는 흑룡폭포가 눈앞을 막아선다, 수미터 위에 관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오른편으로 출렁다리를 건너 완만한 경사로와 가파른 오름길을 교차하면서 다시 오르기를 30분여. 등산로옆으로 봄에피울 꽃망울을 달고있을 진달래나무들이 서있고 그리고, 위를 보니 물보라가 보이면서 시원한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진다. 층층폭포앞에 다다른 것이다. 폭포 바로 밑으로 구름다리가 놓여있다. 출렁대는 구름다리를 건너자 폭포수 가운데로 무지개가 선명하개 드러난다, 한참을 완상하며 휴식을 취한 뒤 아쉬움을 남긴채 층층폭포를 뒤로하고 더 올라가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따라 가다가 화전민자녀들이 다녔다는 고사리분교자리와 엤 집터들을 지나 억새밭으로 발길을 옮긴다.
널다란 억새밭 사잇길로 언덕을 넘어 바위길을 가파르게 올라가자 수미봉이 가깝게 보인다. 별로 높아보이지도 않고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렇게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이상훈총무가 내 뒤에서 오르고 있다. 아무래도 내 무릎 아픈 것을 걱정하고 있는듯 싶다. 사실 오늘 영남알프스를 구경하고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모두 김윤종고문과 이상훈총무 그리고, 정태영선생의 격려와 뜻밖의 사정으로 동행하지는 못했지만 박찬용사장의 우정어린 배려가 있었기에 이번 산행을 강행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산행을 하는 내내 친구들이 교대로 끝까지 나를 뒤에 혼자 쳐지도록 놔두지 않고 배려해 주어 아주 즐거운 산행이 되었다.
수미봉정상에는 표지석이 세워져있고 1,108미터라고 씌여있다. 그런데 이 표지석이 있는 위치에서만 바로 그 밑에서 느낄 수 없었던 차고 세찬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어떤 경계감을 맛보게 되었다.
일행들이 급하게 움직인다. 수미봉정상에서 5분도 머울지 않은채 사자봉을 향하여 달려간다. 20분가량을 가파르게 내려달리듯이 내려가자 사자봉을 내려온 많은 등산객들이 음료를 마시고 휴식을 취한 뒤에 수미봉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마도 얼음골 쪽으로부터 온 분들 인가보다.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사자봉엘 거의 다 올라간 지점부터 오른쪽 무릎이 시고 아파오기 시작한다.
천천히 일행을 뒤따라 드디어 사자봉 정상 (1,189.2미터) 표지석을 옆에두고 사진을 한컷 찍었다.
바람이 세차고 겨울추위를 느낄 만큼 기온이 차갑게 느껴진다. 옷을 배낭에서 꺼내어 다시 입고 얼음골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대비하였다.
한참을 내려와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정상주를 꺼내어 마시고, 소주와 복분자와 마와 배와 비스켙과 사과와 통조림으로 배불리 식탐을 즐기면서 오늘의 영남알프스 산행을 즐겼다. 지금 시각이 오후1시30분 다섯시간 반을 거의 쉬지않고 걸은 것이다.
하산은 얼음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3,5㎞의 가파른 너덜길로 이어지는 강행군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을 전원 아무 사고 없이 허준이 그의 스승인 유의태의 제의로 얼음골의 동굴에서 스승의 환부와 오장육부를 해부하여 육안으로 확인함으로서 그의 의술의 경지를 한껏 높일 수 있었다는 동의굴을 지나 얼음골입구까지 내려와서 아이스밸리호텔 바로 밑에 도달한 시각이 오후3시 15분 결국 7시간 15분의 산행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기차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남강의 촉석루,대동강변의 부벽루와 같은 서열에 드는 영남루와 아랑각을 보지 못한 채로 밀양을 떠나게 되어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영남알프스를 가슴에 안고 살 수 있게되어 아주 흐뭇한 심정이다.
나의 건강을 배려해준 동행하였던 다섯친구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
?
이젠 '왕년에'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나도 천황봉(영길이 얘기하는 사자봉인 듯)에 세번이나 올랐다. 그게 아마 1970년대 초반, 사자평 고사리분교에서 1박도 했고. 그 때가 좋았어. 옛날 생각 나게하네...
-
?
정말 수고들 많았읍니다 힘이 좀 들엇다고 볼수 잇겟지요
-
?
영남알프스, 우리동네에 올때 연락했으면 보고싶은 얼굴도 보고 등산도 같이 하면서 유익한 시간이 되었을텐데 아쉽다.우리집에서 한시간 거리인데 ---- 남쪽으로 올기회 있는 친구들은 연락 하기 바란다 소주한잔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