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코스를 압축하여 당일코스로 바꾸느라 일요일 아침시각으로는 이른 7 시 반인데도 수서역에는 소풍가는 학생들 기분으로 벌써들 많이 모여있다.
오래간만의 쓰리 子씨스터스(강인자,김풍자,박미자. 숙자와 양자는 오늘 왜?), 2애 씨스터즈(남영애, 박정애. 그런데 진영애는?), 투 숙 씨스터즈(유정숙,이향숙)과 또 오래간만의 이후영( 이석영과 정태영은?)과 유정순, 그리고 최근 다리부상으로 보름여를 침을 맞았다는 방유정이가 보인다.
주환중, 박효범, 이상훈,이재상, 이영식, 정만호, 김용호, 김상건, 김두경, 심항섭, 강기종, 신해순, 조병희, 위광우, 송인식, 김수관 그리고 10분정도 우리를 기다리게 한 이승희까지 버스에 타니 모두 27명의 식구이다.
기흥 휴게소에서 아침들을 간단히 한후 대진 고속도로의 무주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서창에 도착하니 11시가 되어가고 10여분을 올라가니 서창 매표소이다.
원래 서창이란 말은 이곳에 쌀및 군사장비등의 군기창이 있었기에 서쪽의 창고(西倉)란 뜻인데, 한글로 명기되어 있으니 이조실록이 보관되어 있던 곳이라 서창(書倉)이라 처음에 누군가 얘기했을때 끄덕여지던것도 어쩔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향로봉과 주봉이 멀리도 보인다.

사진 한가운데의 산꼭대기에 기둥으로 보이는것이 적산상 정상에 있는 KTF의 중계탑이다.
멀리도 보인다. 붉은 색의 치마바위라고 하는데, 굳이 치마라고 생각해야 그런가 보다고 느껴지는건 원래가 보기와는 달리 좀 둔해서 그런가?
매표소를 지나 올라가는 길은 잘 정돈되어 있어 오르기가 편하다.
공기도 좋고 주변의 단풍도 아름답다. 철문을 지나 얼마를 오르니 샘물터. 안내서와는 달리 샘물이 거의 말라 있다. 급경사의 산을 오르기 좋게 지그재그로 산길을 만들어 놓아 밑에서 보기와는 달리 오르기도 좋고 또 매표소의 표고자체가 오륙백 미터는 되니 조금 올라가다보니 최영장군이 칼로 내리쳐서 갈라졌다는 전설의 장도바위가 나온다. 올라가면서는 미쳐 사진을 찍지 못하여 안렴대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장도바위를 실어본다.

사진 밑의 나무위쪽으로 바위가 보이고 그 바위 왼쪽에 검은 색이 보이는데 그곳이 장도대 틈새이고 우리가 그곳을 통과하여 올라온 것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서문이 나온다. 치마바위 벨트 위쪽에 성을 축조하고 치마바위의 단애 그 자체가 성곽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이제 주능선이 빤히 보인다.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꺽정이회장이 차에서 설명한대로 왼쪽으로 가파른 길을 10분여 올라가니 평탄한 능선이다. 7시30분에 대어 오느라고 6시에 밥을 먹었으니, 그것도 국에 말아 한그릇을 다 먹었는데도 배가 고파진다. 하긴, 벌써 12시 반이니...
향로봉에 오르니 일행이 않보여 우선 넷이서 정상 증명사진 한커트.

막 내려 갈려는데 저쪽에 일행들이 자리를 펴고 과일들을 먹는다.
송인식이가 오늘도 빠나나 한송이를 들고 왔고 김풍자는 아라비아 대추라고 던져 준다.
배와 사과 , 방울 토마토. 인절미에 닭 똥집 양념한것 까지 나온다.
배가 고팟던 참이라 이것저것 줏어 먹고 하산길.
밑에서 보이던 중계탑을 왼쪽으로 하여 도니 안렴대 그리고 전망대.
안렴대라는 곳이 고려말의 거란 침공시 지금의 도지사격인 안렴사들이 경상도,전라도,충청도에서 관속들을 이끌고 이곳에 피난 왔으며 병자호란때에는 이조실록등을 이 안념대 밑의 암굴속에 보관도 했다는데...
왜, 씁쓰름한 생각이 날까?
이 씁쓰름한 생각을 5 미녀의 사진을 보면서 떨쳐버리자.

안국사는 이곳에서 불과 5백미터의 거리.
그러니까 이곳 적상산은 서창에서 향로봉까지의 올라가는 길만 등산코스이지 안국사로 해서 적상호수옆의 주차장까지는 밋밋한 도로이다. 그것도 그럴것이 호수라는게 한전에서 양수발전을 위해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것인데, 그 위치표고가 870 미터라니 말이다.
안국사의 청하루. 淸霞樓 이름이 이쁘고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한 커트.

내려오며 보니 유정순이와 위광우가 쭈구리고 앉아 이후영이 발을 주물루고 이영이 본인은 아픔을 참으며 장딴지에 침을 마구 놓는다. 쥐가 난거다. 않 하던 등산을 오래간만에 한 결과이다.
얼마후 걸어 내려오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앞으론 꼬박꼬박 나와 건강 찾으세요.
이곳 적상산은 이조실록을 보관했던 5대史庫지의 하나이다. 평안도의 묘향산, 오대산, 태백산, 그리고 강화도의 마니산과 함께. 왕조실록을 우리처럼 자세히 기록한 나라가 세계 어디에도 그 유례가 없다는 신해순 역사학자의 얘기이다. 이의 보존을 위해 험준하고 험준하면서도 기가 왕성한곳을 찾아 이를 보존한 우리 선조를 보고 기록을 하지 않은 선조라고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참을 잘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이겠지?
사고지가 왼쪽에 있고 그 뒤에 호수와 양수발전소를 배경으로 한커트.

즐거운 식사시간. 보글보글 버섯찌게에 밥말아 먹고나니 4시반.
서울로 떠난다. 꺽정이 회장이 8시까지는 틀림없이 도착할거라고 얘기를 하고 마음씨좋게 생긴 기사 아저씨까지 이를 확인한다. 어림없는 소리라며 이재상과 이승희가 이승희의 귀중한거를 담보로 이의를 제기한다. 결과는 이재상괴 이승희의 판정승.
8시반도 너머서 수서역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