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가을 하늘이 맑고 쾌청하다. 집을 나서는 마음이 그리 가볍지 않다. 날씨가 이렇게 청명한데 등산이나 가는 것이 더 좋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일년에 한번 찾아가는 모교이지만 어딘가 늘 생소하다. 을지로에 가는 길이라면 발 거름이 더 가벼울 텐데.
행사장에는 이미 수백 명의 선후배들이 웅성거린다. 간혹 낮 익은 얼굴이 보인다. 15회 명찰을 달고 있다. 옳지! 40년 전 그가 교복입고 있던 옛날 그의 모습을 살짝 덮어본다. 참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우리는 구태여 눈을 감고 생각을 모으지 않더라도 오래된 앨범 속에 붙어있는 흑백 사진 같은 옛 모습들을 기억할 수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빳빳하게 폭넓은 하얀 칼라가 달린 교복 입은 청초하고 고운 소녀들의 예쁜 모습이 있다.
그런 저런 생각에 젖은 발걸음으로 대회장으로 들어가는데 저 앞에서 예쁜 여학생이 밝게 웃으며 날 맞이한다. “태영이 어서 와” 사무총장 유정숙이다. 하하 40년 전에 이렇게 다정하게 불러줬으면 인생이 달라지는 건데.. 하여간 오늘 여기 잘 왔나 싶다.
그 옆에 까맣게 이명희가 있고 조금 지나니 유진희, 고선옥이 선수 격려차 먼 길을 찾아 왔단다. 유정순이가 야구르트를 사들고 찾아오니 오늘 16회는 선수10명 응원단 5명과 회장 우무일까지 총 16명이다.
총 동창 바둑대회의 횟수가 지남에 따라 기별 간의 경쟁이 심해지는 것 같다. 올해는 26회가 졸업 30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준비를 했단다. 참석 인원도 응원단도 대규모인 것이 기세가 등등하더니 역시 우승을 한다.
이번 바둑대회에 16회의 이름으로 출전한 선수는 회장 천주훈과 권영직. 김영길, 강기종, 이승희, 김용호, 장재원, 양재헌, 노준용, 정태영 이렇게 10명이다. 대회장은 매우 무덥고 소란하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1승을 더 따기 위해 반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우리 동기들이 모습이 아름답다.
이번 대회에 최고로 좋은 성적인 4등(장재원)이 나왔고 다른 출전선수들이 모두 3승 이상을 거두었으나 입상은 하지 못했다. 지난 일년 동안 천주훈이가 기우회장을 하면서 서초동에서 매주 2째 토요일에 여는 바둑모임에 꾸준히 열기를 더한 덕에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오늘도 모든 참가자에게 푸짐한 음식을 대접한다. 천주훈 회장의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