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우리는 웃음을 잃은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웃음을 모르는 세대인 것 같기도 하다. IMF 이후 계속된 사회적, 경제적 불안에다 곳곳이 파업의 연속이며 날씨마저 왜 이렇게 짓궂은지 잠시도 얼굴을 펼 여유가 없다
웃음은 쾌적한 정신활동에서 나오는 감정 변화로서 타인과의 텃세거리를 좁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원활한 사회를 형성하는 신비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웃음을 잃어버린 사회는 서로간의 교류가 단절될 수 밖에 없으며 인간의 존재가치의 상실로 절망에 이르게 한다.
웃음을 되찾기 위해서는 사회적 여건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기본적 정서의 변화도 필연적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치추구대상인 물질소유도 취득하는 순간에는 기쁨이 최고조로 달하지만 곧 익숙해지면서 싫증을 느끼고 다시 다른 대상을 갈망하는 불안의 연속이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현재 전세계적인 물질적 풍요는 1970년도 보다 2배이상 늘어났지만 행복지수는 오히려 반 이하로 감소하였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선진국일수록 특히 경제발전속도가 빠른 개발도상국이 후진국보다 자기 만족도가 낮다는 사실이다.
"풍요로운 가난"의 저자 엠마누엘 수녀는 이집트 카이로 빈민가에서 넝마주이들과 더불어 87세까지 봉사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물도 전기도 없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삶의 기쁨이 충만하고 가족간에 화기애애하고 웃음이 가득찬데 비하여 프랑스가정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여유가 진정 행복에로의 길인 것 같다. 진정 해맑은 웃음도 여기에서 싹튼다고 생각된다.
물론 웃음에는 쓴웃음이나 냉소적, 조소적인 부정적 웃음도 있지만 그래도 사회를 매끄럽게 하는데는 미소나 기쁨이 담긴 함박웃음이어야 한다.
웃음은 옛부터 소문만복래(笑門滿福來)하고 일소일소 일로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 )하다고 한다. 그리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도 있다.
한 번 웃으면 5분동안 에어로빅한 효과가 있다. 괘활하게 웃을 때 인체근육 650개중 약 230개가 움직이면서 뇌하수체에서는 건강 호르몬인 엔돌핀이 분비되어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부신 호르몬분비로 통증, 신경통을 억제하며 면역체를 활성화하고 암 예방과 감염 방지에도 유익할 뿐 아니라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심장 질환을 예방 할 수 있다.
어느 학자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 비관적인 사람은 16명 중 15명, 낙천적인 사람은 16명 중 5명뿐이였다는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낙천가들은 학업성적도 올라가고 사회적 활동도 보다 왕성하였다고 한다.
어떤 만병통치약보다 경제적 부담도 없고 부작용도 없으며 보약으로 우수한 효과를 내는 웃음을 갖추기 위해서는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만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기분이 좋으면 노래가 절로 나오지만 우울할때에도 노래를 부르거나 좋은 시를 외우거나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면 자연히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솟아나온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중세유럽의 암흑기에 르네상스를 열게 하였고 신라시대의 청동 석가여래좌상의 손가락에 떠받친 미소는 우리민족에게 삶의 여유를 보여주었다
유교사회에서나 프로테스탄트 칼벵주의는 웃음은 사람을 가볍게 하고 점잖지 않다고 하였으나 현대사회에서는 상대에게 친근감을 주며 경계적 저항을 없애주고 감성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한다.
자비의 마음으로 바램없이 베푸는 보시 중에는 파안시(破顔施)가 으뜸이다. 기독교의 사랑도 격없는 미소에서 출발한다. 얼굴에 부드럽고 따뜻한 웃음을 그릴 수 있다면 나에게는 건강을 사회에는 활력을 준다. 과연 웃음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어지간한 국책 사업보다는 파장효과가 클 것이다. 사회저변에 미소운동을 인프라로 깐다면 국민소득 20,000불 목표는 한걸음 빨라 질 것이다.
한 번 웃자! 크게 자주 웃자!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좋다.
내가 웃어서 이웃에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사오정이라도 좋을 뿐 아니라 공동체 교화에는 눈 부릅뜬 사천왕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우리 비록 빈손이라도 부드러운 미소가 온누리에 가득하다면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맛나는 천국이 될 것이다.
경상일보 9월 1일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