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다
더운 여름을 지나 햇곡식과 잘 익은 과일을 수확한 후에 맞는 보름달은 풍족한 마음만큼이나 크고 밝게 보이고 살림도 여유로워서 더 부러울 것이 없지만 욕심을 절제하고 겸손해 하는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같은 유교 문화권이지만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우리 민족이 기제사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 조상섬김은 죽음이 현세와의 단절이 아니며 새로운 차원의 연결로서 부모와 나와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되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주관한다는 우리민족 고유의 원시신앙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사회생활은 유교식이고 생각은 불교적이며 위기대처는 원시종교 즉 샤머니즘이라고 한다. 물론 근래 기독교신자는 지향하는 방식이 다르다고는 하나 포장된 껍질을 벗겨보면 내용은 원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무신론자이며 유물사관으로 무장된 이북에서도 제사가 있다니 민족의 원초적 심성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추석날 차례상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상과의 무언의 대화를 엿볼 수 있다.
차례상에는 햇곡식으로 밥과 술과 떡을 만들고 과일을 올려놓는다. 여러 과일중에서는 조율이시(棗栗梨枾)라고 대추, 밤, 배, 감을 반드시 준비한다.
각 과일은 나름대로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어 알고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대추는 꽃 하나에 반드시 열매 하나를 맺으며 전체적으로 수많은 열매가 열려 자손의 번창을 기원한다. 자식은 반드시 짝을 만나 후손을 두어야만 조상에 대한 도리를 다한 것으로 간주된다. 대추꽃은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열매를 맺지않고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하니 그 생명력이야 정말로 대단하다
밤을 심으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씨밤은 땅속에서 썩지않고 오랫동안 뿌리에 달려있다. 밤은 자기와 조상과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한다. 밤나무가 살아있는 한 씨밤은 같이 존재한다.
배는 껍질이 황색이라 우리 민족을 대변하며 우주의 중심으로 민족의 긍지를 나타낸다.
인종적으로 백인은 흰색에 흑인은 검은색에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감은 특이하여 감 씨앗을 심은 곳에서는 감나무가 나지 않고 대신 고욤나무가 난다. 3-5년 지나서 기존의 감나무가지를 잘라서 이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야만이 다음 해부터 감이 열린다. 이 감나무의 상징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데는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른다. 이 고통을 이겨야 선인의 예지를 이어 받아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된다.
이 제사와 제물을 통하여 자신의 뿌리를 찾고 배우고 자손을 번창시키라는 무언의 약속을 매번 되새긴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추는 씨가 하나이고 밤은 한 송이에 세 개의 밤알이 있고 배는 씨가 8개이며 감은 6개라고 한다. 각각 왕, 삼정승, 팔도관찰사와 육판서를 의미한다고 하니 조상신의 은덕으로 벼슬을 얻고 출세하고파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재물속에 숨어 있기도 하다.
기이하게도 노인들이 즐겨먹는 복숭아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복숭아는 생김새가 여성의 젖가슴과 엉덩이 또는 생식기를 닮아 임신과 새 생명을 상징한다. 따라서 복숭아의 새 생명력과 귀신을 쫓는 힘(복숭아껍질털은 두드리기, 재채기로 성가시게 한다)이 조상신의 출입을 막는다.
금년에는 꼭 과일의 씨를 한 번 헤아려 볼 생각이다.
햇곡식과 과일에다 동해바다에서 잡히는 머리가 크고 알이 많아 훌륭한 아들과 부자를 상징하는 명태와 고기중에 으뜸으로 치는 서해바다의 조기까지 곁들이면 온 들판과 바다의 모든 좋은 음식을 장식한 제사상이 된다.
그동안 멋모르고 절만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금년에는 그 깊은 뜻을 되새기면서 자식들에게도 가르쳐야겠다.
한가위를 맞아 온 가족과 조상이 하나되기 위하여 민족대이동에 동승하여 고향을 향해 재촉하는 그 어려운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2003년 9월 8일 경상일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