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시절 철수와 만난 나 역시 철수를 대할 때면 속세의 때가 찌든 내 자신을 철수
라는 거울에 비춰보곤 하는 버릇이 무의식 속에 있었다. 철수의 표현은 항상 어눌
하였고 나는 큰소리 뻥뻥치는 치기어린 스타일 이었으나 나는 언제나 철수 앞에서
내 행동과 사고의 왜소함을 느껴왔다.
필동에 집이 있던 철수와 가까운 곳에 살던 나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공부도
하였고 여름방학 때는 당시 선생님 인솔로 안양 유원지에 텐트치고 야영 했던
기억도 있다. 개구쟁이 시절 그 누구에게 어떤 것도 부탁하는 철수를 본적이
없고 누구의 무슨 부탁이던 묵묵히 들어주던 철수를 보고 나는 철수의 본질은
바로 부처 일 것이란 의식이 어릴적부터 잠재하여 왔다.
원래 부처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없는 법인데 속세의 법대를 나온 부처라 병역법은
준수해야겠기에 내가 제대할 무렵 늙은 나이에 그 특유의 백자 같은 웃음을 띠고
나에게 경례하며 공군사관학교로 배속 되었다고 기뻐하던 모습의 철수 였으나
가무와 음주를 즐겨 하지 않는 그 여서 특별한 방법으로 철수를 축하해주지도
못한 그때의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하필 내가 빠진 그날 몇 달 전 바둑 모임에 철수가 한번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철수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 무척 아쉽구나.
철수에게는 개구쟁이 시절도 없었으니 사춘기도 늦게 왔을 것이고, 아니 사춘기에
성불 하였으니 부처의 깊은 뜻을 모르는 속세의 우리는 슬픔에 잠긴다.
더욱, 철수를 서울 법대에 보내고 신사임당 상까지 수상 하셨던 노모께서 살아
계시고, 그런 노모의 심경을 헤아려 보는 것 이상의 인간의 괴로움이 어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결국 속세를 홀연히 버린 철수 만이 어머님을 위로할 것이고 철수는 분명
해탈하고 열반 하였을 것이니 어머님을 고이 모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