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건수, 자네의 수고가 퍽 고마웠다. 철수의 빈소에서 자네는 친구에 대한 사랑과 우정이 어떤 것인가를 눈빛과 표정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옛날 학생시절, 달리기를 잘하고 특별히 수학공부에 뛰어나던 이과지망생인 자네가 공대가 아니라 상대에 갔다는 얘길 듣고 당시 나는 의아했었다. 근래에 자네는 무슨 은행의 동경지점장으로 가 있다가 일찍 퇴직하고 지금은 분당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는데, 그래서 한 번 만나고 싶었는데, 철수의 빈소에서 호상(護喪) 하고 있는 자네를 만나게 되었다. 말없이 빈틈없이 유족들을 돕고 문상객을 맞이하던 자네가 몹시 고맙게 느껴졌는데, 지금 이곳에서 망자가 된 철수에 대한 자네의 심경을 읽으니 가슴이 메인다. 그렇게 착한 철수가 그렇게 갑자기 떠나다니....
건수가 철수를 <은은한 백자모양 겉으로는 아무 재미없는, 그러나 속은 참 깊고 따뜻한 그런 친구>였다고 말한 것은, 짧지만 기막히게 철수의 정체를 잘 드러낸 말이라고 생각된다. 철수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바로는 대단히 드물게 착한 사람이었다. 특별히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때 우리반 부반장을 하던 그를 나는 속으로 퍽 좋아했다.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수줍음이 많던 소년, 그는 청소당번이 아니면서도 방과후에 거의 매일 남아서 청소를 했다. 청소당번 아이들이 도망가는 것도 탓하지 않고 조용하게 비질하는 그의 뒷모습은 퍽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의 기억이 맞는다면 당시 우리들은 분기마다 사친회비 통지서를 받았는데, 그것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사친회장 박만희]의 이름으로 되어있었다. 그 사친회장이 철수네 아버지이고 철수네 집이 퍽 부자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 부잣집 아이가 전혀 티를 내지 않았고, 공부도 잘 하면서 언제나 겸손하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그야말로 없는 듯 있던 소년이었다.
대구에 살았기 때문에 철수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나는 그가 결혼도 하지 않고 그냥 고시 공부만 하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었다. "공부 잘하는 철수가 왜 자꾸만 고시에 실패를 하지?" 라고 내가 언젠가 청용이게게 물었더니 "철수는 사춘기가 늦게 와서 그런 것 같애"라고 웃으며 대답한 적이 있다. 농스러운 표현이었지만 <사춘기>라는 말이 매우 인상적으로 들렸다. 오늘 건수의 글을 보니 철수는 <고고히 절에 틀어박혀 있어야 맞는> 그런 친구였다는 말이 어쩌면 청용이의 <사춘기>라는 표현과 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사춘기란 자아에 눈뜨고 진지하게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철수는 일생동안 가장 진지한 인생의 탐구자로서 고독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살았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잘 나타나지 않고 조용히 그가 사색하고 고민하고 추구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직 60도 되기 전에 그는 조용하게 떠났다. 요즘의 나이로는 떠나기에 일러서 매우 아쉽고 안타깝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에게는 속세의 삶이 덧없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그래서 그는 평소 그의 성격대로 아주 조용하게 말없이 그러나 표표히 떠나갔는지 모른다. 그의 급작스런 별세를 보고 우리들은 창준이의 표현처럼 <땅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충격은 지금 우리들에게 자신의 삶을 깊이 돌아보게 한다.
옛날 청소당번도 아니면서 매일 방과후에 혼자서 말없이 청소하던 모습이 한없이 감동을 주었듯이, 건수의 표현대로 <은은한 백자 모양>처럼 욕심 없이 착하게만 살던 철수가 이제 그의 육신을 한 줌의 재로 남기고 떠나는 것을 보며 우리들은 형언키 어려운 어떤 실존적인 물음을 가슴에 품고 장지에서 헤어졌다.
슬프다. 철수! 부디 잘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