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급한 일정이 없으면 아침 산책 겸 운동 삼아 용문사에 오른지도
몇 년이 된듯 하다. 주차장에 차 세우고 왕복 3킬로 정도 걷는 이 길이
그렇게 수 없이 오르면서도 늘 새로운 감흥을 준다.
일주문 안으로 접어드니 골짜기를 훑어 내리던 시원함이 온 몸에 싸~하니
퍼진다. 장마가 끝났다고 하는데도 밤새 추적추적 내린 비로 물량이 엄청
불어 골짜기는 급류로 변하여 쏟아져 흐르는 물소리로 꽉 채워져 있다.
거친 물소리에 가슴 시원함을 느끼며 한 모퉁이 한 모퉁이 접어들 적마다
자욱한 물안개 속에 향긋한 풀내음과 함께 쌉사름한 산의 체취기 코끝에
스며든다.거센 물소리를 뚫고 울창한 숲사이로 흐르는 안개속으로
은은하게 퍼져오는 범종 소리에 신비 미묘함을 느끼며 한 발짝 한 발짝
걷는 발끝으로 대지의 기가 피어올라 온몸이 가벼운 흥분에 휩싸인다.
이끼 낀 바위에 걸터 앉아 물끄러미 요란하게 흐르는 물을 바라보다
물살 따라 마음도 흐른다.
거칠게 외쳐대듯 소리치며 급류 속으로 뛰어드는 놈, 어깨를 밀쳐대며
앞으로 나서려는 놈, 잔뜩 겁먹은듯 가장자리에서 빙빙 돌며 눈치 만
보는 놈, 등 떠밀려 밑으로 떨어지며 비명을 질러대는 놈, 용기가나지
않아 머뭇거리며 한 쪽 귀퉁이에 조용히 머물러 있는 놈, 여기 저기 돌과
바위에 부딪치며 허연 물거품을 게거품처럼 뿜어내는 급류가 흐르는 모양을
바라보며 튀어오르는 저 물방울 하나 하나에 젊은 시절 얼마나 많은 꿈과
아픔을 실어 보냈던가 하는 아린 생각에 젖어 있던 감상을 헤치고 좀 전과는
다르게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비록 우국지사(憂國之士)
아니라도 TV, 신문이 보기 싫어지는 요즈음의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 보는 듯
해서다. 신라의 마지막인 마의 태자가 천년사직 망국의 한을 곱씹으며 잠시
머물렀던 이 곳 절 마당가에는 그 쓰리고 아픈 허망함을 보상이라도 하는듯
천 년이 넘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오늘도
아무 말없이 법당 앞 마당에 서성이며 두리번 거리는 몇 명의 관광객을
내려다 보고 있다.
주름 진 얼굴에 마디 굵어진 두 손을 모으고 돌 탑을 도는 저 할머니의
바람은 무엇일까? 법당 안을 들여다 보니 몸집이 자그마한 스님 한 분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은 체 미동도 없이 염주만 돌리고 있다. 경건해
보이기 까지 하는 저 스님의 마음에는 어떤 감정들이 흐르고 있을 까?
법당 한 가운데서 흐르는 저 잔잔한 황금빛 미소는 탑을 도는 저 할머니의
바램과 저 자그마한 스님의 감정이 모두 수용되었다는 의미일까?
노래가사 한 구절이 생각난다.
" 산사에 홀로 앉아 백팔번뇌 잊으려고 두 송을 합장하고
두 눈을 꼭 감아도 속세에 맺은 정을 어디에서 풀겠는가
달 빛만이 서럽게 나를 감싸네~,
구름가듯 세월가듯 천년 겁이 흘러가면 너도 가고 나도 가련만 ~
님의 뜻을 알 길 없어 이리 저리 헤 메이다 이 밤도 지새는구려"
금강경에 凡所有相 이 皆是虛妄이라, 諸相非相이 卽見如來라 했거늘
(무릇 있는 바의 형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알면 곧 깨우침을 얻으리라)
세상 만사 뭐 그리 집착할 일인가
법당 앞 돌계단에 앉아 저 멀리 산 봉오리를 휘감고 있는 자욱한 안개 위로
비죽히 내비치는 햇빛을 향해 무표정한 얼굴로 초점없이 바라보는 저 시골
어디에선가 관광 온 듯한 어저씨의 가슴에 흐르는 감정처럼
그물에 바람 가듯 그러려니하고 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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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네! 부러워!! '아침 산책길' '동동주' '족발' '겉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