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희끄무리하게 산 봉오리 자위를 뜬 지도 한 참이나 됐다.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을 툭툭 건드리며 농로를 따라 밭으로 향하는
바지 자락 끝이 젖어오른다.
바랭이, 쑥, 질경이, 엉겅퀴, 크로버, 애기똥풀 등 갖가지 잡초가 어우러진
농로 저편에 빨갛게 떠오르는 해의 절반쯤을 가로지르는 논두렁 위에는
아직도 졸리운듯 어눌하게 마주 서 있는 들오리 한 쌍의 모습이
년 말에 받아보는 신년 축하 카드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밭도랑을 가로지르는
발꿈치 옆에 아주 조그마한 하얀 망초 꽃이 수줍은듯이 베시시 웃는 모습이
앙증맞다. 채송화, 글라디올러스, 접시꽃, 장미 등 밭 통로 입구에서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서서 나! 예뻐! 하는것 같아 잔잔한 미소로 답하며
고추밭, 참깨밭, 콩밭을 차례로 살피며 한 바퀴 돌아본다.
산자락 밑 쪽으로 콩잎이 여러개 끓겨 없어진 것을 보니
어제 밤에도 노루란 녀석이 다녀간 모양이다.
요놈들이! 하며 순간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괘씸한 놈들하고 화가 오르며 속상해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어디에다 화를 내는 것일까? 노루에게?
아니 나 자신이 스스로 화난 상태인 것이다.
조금 전까지도 마음은 고요하고 편안하며 아늑하기까지 했는데......
자연의 순환하는 한 순간의 과정에서 다른 과정을 수용하지 못함인가?
마음의 평화를 깨고 동요를 일으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마음인가?
이미 지나간 과거를 현실로 끌고와서 현재화하여 흥분하는것이 바람직한가?
잎을 따 먹으면 결실이 안되어 수확을 못할 것이라는
불확실한 미래를 끌어다 붙여 불편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합당함인가?
순쳐주기가 되어 곁가지가 많이 나와 소출이 늘 수도 있는데...
삶의 곳곳에서 조그만 일에도 지금, 여기의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고
분주하게 탐색하고 예측하며 과거와 미래로 뛰어 다니느냐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삶을 힘들게 했나 하고 생각하니
스스로 마음의 중심을 잡고 지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의 실마리를 놓지 못하고 있는 나를
개구리 한 마리 텀벙하고 뛰어드는 웅덩이에
노란 수련 몇 송이 피어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백수 3년 . 원래 큰 야망도 가져보지 않았지만 이제와서 가진들
뭘 하겠나 하는 마음에 산기슭에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크게 욕심 내지 않고 건강하고 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야지 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적당히 육체적 노동을 하며, 가능하면 남에게
폐 안끼치고 , 편안하게 막걸리 한 잔하며 지내는 것도
삶의 한 방편이려니 하고 생각하며 지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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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너도 반갑고 너 같은 글도 반갑고. 몇년 전 용두리 인가 하는 (지 선배) 휴계소 개업식에서 본것 같은데 내년 40주년 행사때는 자주 행차 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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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 아름다운 자연과 삶의 지혜를 일깨워준 자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철따라 변하는 계절의 신비를 종종 접할수있게 해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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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백수가 아니라 신선 같네. 여하튼 반가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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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하고 차분한 글솜씨 일품이네, 정섭이랑 강태공,이태백이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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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인구에 회자되는 정지용의 '향수'만큼 아름다운 글이네요. 마음마저 대자연에 융화되 넉넉해져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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몃있어!! 양평 수진원에 가서 그 유명한 말표구두약 할아버지로부터 자네 얘기 몇 번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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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 풍경이 눈에 보이는듯 하네. 10월3일 체육대회 및 12월 18일 송년모임때는부부동반해서 나타나길 바라네. 그리고 사는얘기도 들려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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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을 갈망하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도시인들에게 후덥지근한 여름철 오후 소나기 같은 시원함을 주는 글이었네. 앞으로도 그시원함을 계속 전달해 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