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부회장 3명이 어느날 이 난에 6월 16일 늘봄공원에서 여학생들만 모이자는 글을 올렸다.
이후 남학생들한테서 세번이나 왜 모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야 그저 보고싶으니까 보자는 거죠.
그동안 몇 여학생이 개인적으로 자기집에 여학생만 초대한 일은 있지만 공식 모임은 처음이다.
하여간 몇명이나 모일까? 졸업후 39년만에 보는 얼굴은 몇이나 될까? 맞선보러가는 것처럼 기대와 설레임으로 논현동 도산공원 건너편 하얀집 늘봄공원에 16일 낮 12시에 갔다. 공원은 공원인데 나무 하나 풀 한포기 없는 ,웨딩홀과 한정식 식당이 있는 건물이다.
종업원들이 2열종대로 서서 인사하는 속을 뚫고 예약된 방으로 가는데 방앞에 잘 생긴 남자가 우리 여학생들에게 일일히 악수를 청하며 "Nice to meet you."한다. 나도 같이 얼떨결에 손을 내미니 저쪽에서 한명희가 "우리 남편이야."한다. 그제야 모두들 "아하."하는 표정이다. 명희는 독일에서 볼일이 있어서 5월 말일에 한국에 왔는데 19일 돌아간단다.
방으로 들어가니 아, 거기엔 39년만에 만나는 최순을 비롯해서 졸업 후 겨우 두번째 보는 얼굴들이 많고, 늘 다정한 친구들이 벌써 많이 와서 정담을 나누느라 시끄럽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 29명이 모여서 접시 열장을 깨니 그 소리가 오죽 크겠는가.
여고 졸업생들의 동창회에서는 남편자랑 자식자랑 돈자랑이 화두라지만 우리 여학생들은 그런 팔불출 꼴불견은 없는데도 무에 그리 할말이 많은지 하하호호 깨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잠시후 돌솥밥이 들어오니 그제야 조~용 조~ 용, 역시 먹을 때는 말이 없는 법. 웨딩홀과 겸한 식당이지만 깔끔하고 친절하다.
금강산도 식후경. 먹고나서는 다시 앉은 순서대로 얘기 보따리들을 풀기 시작했다.
채수인은 정영숙과 단짝인데 둘 다 딸만 넷을 둔 딸딸이 부자라고 소개해서 한바탕 웃겼다. 그것도 채수인이 막내를 낳을 때 정영숙은 첫애를 낳았다나. 두집 딸들이 모이면 도레미파솔라시도 한 옥타브가 되겠다.
이창성이는 윤주수와 동문 부부라서 남학생들과 만나는 모임엔 못 나왔다면서 여학생 모임이라면 나오겠다고 한 마디.
처음 나온 이정희는 그동안 먹고 사느라고 밤일(약국 운영)했기 때문에 못 나왔지만 앞으로는 열심히 참여하겠다고 말했고, 동창 모임에 처음인 최이란은 그동안 못 나와서 미안해서 할말이 없다며 앞으로는 잘 나오겠다고 다짐했다.
프랑스에서 10년 살다 귀국하고, 노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느라 저녁 외출이 여의치 않다는 이순경도 오늘 동창 모임에는 첫 나들이라서 환영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이순경 남편이 근무하던 외환은행 파리 지점에서 20년간 근무하다 퇴직하고, 현재 일시 귀국한 최순은 여전히 날씬한 몸매였다.
전행선은 디카를 들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는데 주말부부라서 일요일 모임엔 참석을 못한다고 해명. 오늘 모임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린단다.
동창 모임에 몇년만에 온 이효숙은 "몇년전 세종호텔에서 총회를 열 때 '애가 넷인 사람 손들어보라고 사회자가 얘기해서 손을 들었더니 케익을 주더라. 그런 케익을 두번 받아먹었다."고 해서 폭소를 자아냈다. 그러자 누군가 채수인 정영숙도 넷이라고 하니, 정영숙은 "그때까지는 넷이 아니었다."고 해서 역시 폭소.
서경석은 졸업 후 지난 선농축전때 처음 선보이고 오늘 두번째로 시원하고 큰 눈에 가무잡잡 매력있는 얼굴을 보여줬는데 그동안 직장 다니느라 불참했었다고 해명.
39년만에 만나건 20년만에 만나건 우린 어제 헤어진 꽃순이들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놀기만 했겠는가? 황양순 수석 부회장의 제의로 내년 졸업 40주년에 봉사할 위원 10명을 선정했다. 내년 행사에는 오늘 모인 사람들이 불참자를 한명씩 손잡고 오기로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58명은 올테니까.
그리고 이 모임을 정례화시키자는 의견이 많아 만장일치로 매년 6월 16일 12시에 모이기로 정했다.
모임에 뺄 수 없는 순서가 노래방. 기쁨조 조장 박정애가 예약한 이웃의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와, 16회 여학생들이 다 가수인걸 새삼 느꼈다. 평소에 노래라면 죽어라 사양하던 '여자 중의 여자' 현정인이 '긴머리 소녀'를 불렀더니 글쎄 100점이다. 동창모임에 오늘 첫선 보인 정영숙은 '낭만에 대하여'를 구성지게 잘 불러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현영의 노래 실력은 자타공인이고, 머리털 나고 노래방에서 처음 노래 부른다는 이창성 실력도 만만치 않다. 전행선은 사진 잘 찍고 애들만 잘 가르치는 줄 알았더니 노래도 썩 잘하는 팔방미인이다.
100점 받은 사람이 낸 벌금이 쏠쏠해서 음료수도 싫컷 마셨다. 맥주 없고 담배 연기 없고 야설이 없는 무공해 청정 숲속에서 삼림욕을 하고 피톤치스를 흠뻑 마신 것처럼 오늘의 5시간은 행복하고 유쾌하고 통쾌했다.
남학생들 없이 여학생끼리 모이는 재미를 만끽했다. 남녀 공학으로, 남학생들과 만나는 장점에다 여학생끼리만의 모임도 가지는 장점을 두루 섭렵하는 우리 여학생들은 행운아들이다. 그러니까 우린 천하부고 졸업생들이지.
오늘 회비를 안 걷고, 16회 찬조금과 황양순 류진희 박정애 강인자 정영경이 힘을 합쳐 회식비를 냈다. 이자리를 마련한 이들에게 감사한다.
오늘 안 나온 친구들아. 내년엔 꼭 보고 싶구나. 더 세월 가기 전에.
끝으로 오늘 참석자는 다음 29명이다.
현영, 최이란, 정영경, 이순경, 최순, 박정애, 강소화, 이석영, 이미화, 이효숙, 유미희, 유정숙, 장정자, 정영숙, 채수인, 박미자, 임매자, 이정희, 황양순, 류진희, 이향숙, 한명희(독일), 전행선, 현정인, 강인자, 이창성, 서경석, 정숙자, 남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