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이 들어왔을 때 남아메리카의 대서양쪽, 지금 브라질이 있는 지역에는 원주민이 세운 나라는 없었다. 그저 원시적인 수렵생활을 하는 원주민들이 작은 단위의 부족을 이루고 살고 있었을 뿐이다. 아마도 남아메리카의 동쪽은 안데스산맥이 있고 땅이 척박하여 살기에 어려움이 많은 곳이라 지도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잉카왕국 같은 나라가 있었지만 남미 서쪽은 풍요로운 곳이었기 때문에 백인들이 쳐들어올 때까지 인디언들은 그저 평화로운 생활을 하며 살았던 모양이다.
<브라질의 카우보이들의 전통적인 복장>
또 스페인 사람들과 다르게 포르트갈 사람들은 이곳에 이주하거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생각도 없었던 모양이다. 다만 이곳으로 흑인들을 데려와 거대한 커피 농장 등을 경영하고 큰돈을 벌어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러다 19세기 초에 가서야 포르트갈 왕인 동주앙 6세가 나폴레옹을 피해 상파울로 피신 왔을 때부터 왕이 이곳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 후 브라질은 그 아들 동페드로 1세에 의해 본국에서 떨어져 새로운 왕국으로 독립하지만 곧 1872년 브라질 사람 치라덴치스(Tiradentes)에 의해 왕정이 끝내고 브라질 공화국으로 탄생하였다.
어제 도착한 꾸리티바 (Curitiba)는 브라질의 남쪽 과라나 주의 수도이다. 남위 25도 정도에 위치하고 있지만 고도가 높아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성 기후이다. 잣나무처럼 보이는 침엽수 파라나 소나무가 멋진 경관을 보인다. 이 나무의 열매를 원주민 말로 꾸리라고 하고 티바는 많다는 뜻에서 이 도시 이름이 생겼단다
<호텔 옥상에서 본 Curitiba 시의 전경: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나 길은 바둑판처럼 되어있다>
포르트갈은 작은 나라이므로 브라질로 이주 할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는 많은 유럽 사람들이 이주했는데 특히 남쪽지방에는 이탈리아, 폴란드, 독일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처음부터 가족과 함께 실기 좋은 곳을 찾아 이민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브라질의 남쪽 도시들은 북쪽과는 다른 유럽과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 중심가에 운행되는 뻐스 : 이 도시의 교통체제를 이명박 서울 시장이 보러 왔었단다.>
꾸리티바 (Curitiba)는 도로나 건물도 잘 정비되어 있는 깨끗한 인상을 주는 현대적인 도시이다. 이 도시엔 육체적인 노동을 하거나 서비스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백인들이고 흑인들이 아주 드물다. 마침 내일이 이 도시가 생긴지 310년 되는 기념일이라는데 인구는 200만 정도이며 동서로 50km 남북으로 80Km의 크기이다.
<Curitiba 시에 있는 파라나 국립대학 전경>
나는 이곳에 와서 40년 간 근면한 이민생활을 해 오셨고 박식한 학자이기도 한 장Paulo 님과 만나 아주 잘 어울린 바둑도 한 수 둘 수 있었고 경치가 빼어난 Curitiba의 골프장의 푸른 잔디를 밟으며 이틀 간이나 라운딩하며 브라질 역사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36일간의 호강스런 브라질 여행이 모두 끝냈다. 그 동안 내가 올린 글을 읽어주고 한 줄의 답변까지 올려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