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a에서
내가 집을 떠난 지도 한 달이나 되다보니 요즈음 서울 사정은 모르고 산다. 오늘 집에 전화를 해보니 서울에는 경제문제 등 불안한 일들이 많은 모양이다. 집과의 거리는 멀어도 여기서 전화하면 통화 상태가 아주 좋고 가격도 1분에 2불 정도로 생각보단 싼 편이다.
Rio de Janerio에 동행하며 나와 함께 여행을 해준 동현이는 어제도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나를 비행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오전 6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안데스산맥을 넘어 다섯 시간 쯤 비행하여 리마에 도착했다. 이곳 리마는 태평양 연안에 있는 페루의 수도이며 스페인에 의해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도시라고 한다.
피사로의 동상 (그도 정적의 아들에 의해 피살되었고 시신이 아직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적도 바로 밑에 있는 페루는 남한보다 10배 이상 되는 국토에 반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수많은 왕조가 이곳에서 흥망을 되풀이하다가 12세기에는 남미 최대의 잉카제국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1532년 이 잉카왕조의 마지막 왕 와타와르파는 스페인 사람인 피사로에 붙잡혀서 많은 금을 뺏기는 등 이용당한 후 결국 처형당한다. 태양신의 아들인 그에게 세례까지 받게 한 후 교수형에 처했다. 죄명은 역모를 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랗게 400여년에 걸친 잉카제국은 끝나고 페루는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되었다. 한 300년이 흐른 후 1820년경에 독립투사 산마르틴 장군에 의해 페루 공화국으로 독립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세 사람의 유해나 동상이 지금 모두 서로 멀지 않은 위치의 성당이나 광장에 모여 있고 관광 코스에 함께 들어 있다. 어쩐지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게 되더라.
피사로의 손으로 초석을 놓은 남미 최고(오래된)의 성당인 Catedral
독립 후엔 쿠데타도 있었고 군사 독재도 있었으나 1980년부터 대통령 선거를 하는 모양이다. 최근에 새 대통령을 뽑았다. 어제 그 곳을 지나며 보니 대통령 궁 근처에는 장갑차도 동원되어 있을 정도로 경비가 삼엄하고 나도 사진 찍으려고 하려다 저지를 당했다. 루놀프라는 이름의 여행 가이드는 듣기 어러운 스페인 어투의 영어로 지난번의 후지모리l 대통령이 엄청 많은 돈을 가지고 일본으로 도망갔다고 아주 분해하더라.
다운타운에는 옛날 식민지 시대에 아주 잘 지은 스페인 양식의 집과 성당이 즐비한데 대부분이 아주 낡은 모습이다. 식민지 시대의 건물이 관광 명소인 것이 조금 처량해 보이기도 하다. 더욱이 외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구걸 비슷한 것을 하는 아이들도 많고 허름한 가방을 든 암달라 상도 자주 접근한다.
이곳 사람들은 옛 잉카인의 모습을 한 사람이 아주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키가 작고 얼굴은 거무칙칙하고 검은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마가 좁아서 그런지 무표정 할 때는 음침한 느낌이기도 하지만 말을 해 보면 보기보다는 착하다는 생각은 든다.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와 도둑도 있단다. 나도 구두닦이에게 혼이 나서 다시는 호텔 밖에 나가지 않았다. 또 여기는 영어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나가봐야 커피나 마실 수 있을 정도다. 인디안 마켓과 우리나라 명동 거리 같이 복잡한 라우리온 거리 구경은 꼭 해봐야 할 듯하여 호텔 경비원 (나 보다 세 살이 어린데도 하얀 할아버지, 은퇴한 경찰이란다.)에게 약간의 돈을 건네 주고 함께 다녀왔다.
한가지 더 있다. 어제 시내 관광은 가이드, 나 그리고 멕시코인 남자 그렇게 셋이서 다녔다. 산프란시스코 성당의 지하에는 옛 공동 묘지도 있다. 옛날 이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일단 천으로 싸서 다른 곳에 두었다가 뼈만 남으면 그 뼈를 이 곳에 옮겨 쌓아 놓았단다. 이곳에는 수천 명의 뼈가 어둠침침한 지하에 종류 별로 (모양과 크기가 같은 것끼리) 차곡차곡 쌓여 있다. 제일 안쪽 방에는 수 없이 많은 두개골이 쌓여 있다. 전기는 들어와 있지만 기분이 묘하더라.
둥근 것과 긴 것의 예술품 처럼 정리된 인골 묘지.
(산프란시스코 성당 지하에 있는 것 중에 하나,)
양쪽 편에 뼈가 쌓인 좁은 길을 서둘러 빠져 나오다가 한 이십 명 정도의 서양인과 마주 쳤다. 미국인은 아닌 듯 한데 거기 있는 여자들도 모두 얼굴을 찡그리고 있더라. 그들과 지나치면서 내가 "Have a nice days!" 하니 내 뜻을 알아차리는 듯 속도는 약간씩 다르게 모두 웃더라. 내일은 마츠피츠가 있는 쿠스코로 간다. 가이드가 아침 새벽 4시에 호텔에 들려 비행장에 데려다 준다고 했다.
쿠스코(Cusco)와 마츠피츠(Machu Pichu)
쿠스코는 옛날 잉카의 수도이다. 비행기로 리마에서 한 시간 거리이다. 창문으로 보니 험상궂게 생긴 안데스산맥 꼭대기에 뾰족한 산 사이로 비행기가 착륙한다. 적도 근처 지만 눈 덮인 설산도 장관이다. 해발 3360m. 아침부터 머리가 띵하다. 약간의 근육통도 느껴진다. 이곳에서 나는 계속 고산병 증세에 시달렸다. 정말 여행도 고생이다. 호텔은 관광지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 바로 옆이다. 그 옆에 산토도밍고 교회가 서 있다. 이 곳 지명과 교회의 이름이 리마와 같은 것이 많다.
태양신의 아들인 아타와르파를 죽인 스페인 사람들은 수도인 쿠스코에 도착 코리칸차라고 부른 태양신전의 많은 양의 금을 모두 탈취해 본국으로 보냈다. 얼마나 많은 양이었는지 스페인은 inflation에 시달렸단다. 잉카인들은 화폐를 사용하지 않았고 금은 그저 태양신전의 장신용 일 뿐이었던 모양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값나가는 것을 다 탈취한 후 신전을 부수고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그 후 세 번의 큰 지진에 의해 성당은 파괴되고 다시 지어졌지만 성당 기초가 되어버린 옛 잉카신전은 끄떡없이 그대로 있다. 그러나 잉카의 유적은 스페인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잔해일 뿐이다. 이것도 신의 뜻인가? 아무리 스페인 사람들이 공들여 멋지게 지었다는 성당 산토도밍고 교회가 멋있어도 나에게는 약탈의 울부짖음 소리만 들리는 듯 했고 이 곳을 돌아보며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마츠피츠의 사진은 더 좋은 것이 많으니 우리 마스터 만 믿으면 될 테고 난 신전의 벽을 찍어 봤다. 잉카가 만든 돌 벽의 솜씨, 그림에서 작은 것이 60cm 두께는 80 cm 인것이 작은 것이다.
돌 사이에는 몰탈을 쓰지 않았고 그냥 쌓아 놓은 것이 아니라 한옥처럼 속으로 구멍 뚫러 엮었다. >
다음 날 아침 6시 지그재그로 운행하는 페루 열차로 산길을 4시간을 가니 우리가 사진에서 보던 돌로 된 옛 잉카의 도시 마츠피츠가 펼쳐진다. 70도가 넘는 산꼭대기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밭과 집 그리고 태양신전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이 보인다. 마치 몇 년 전에 지은 것 같다. 가이드에게 복원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정색을 하며 오리지널이란다. 잉카인들이 잠깐 비운 집에 몰래 들어온 느낌인데 그들은 400년 전에 몇 명에 여인과 노인들의 시신만 남겨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단다. 높은 산 위에 바위를 파서 만든 양수 시설에서는 아직도 맑은 물이 흐른다.
엄청난 크기(어떤 돌은 300톤이 넘는다)의 바위 돌을 갈아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쌓아놓은 신전의 벽은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다. 정말로 석기 시대의 불가사이다. 같이 구경하는 외국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 지 모르겠다. 나만 늘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걸까. 엉뚱하게도 전에 중국의 만리장성을 볼 때보다도 더 분한 느낌도 든다. 오직 단 한번뿐인 인생을 남의 뜻에 맞춰 이런 종교적인 심볼을 만드는데 모두 바쳐 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깝다. 지금을 살고 있는 나 역시 삶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것인가?
이제 페루에서의 1주일의 여정이 끝나고 오늘 밤 비행기로 쌍파울에 가면 동현이가 비행장에 나와 있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