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낙 엄청난 일을 당하면 분별력이 없어진다. 지금이 그런 상태다. 이런 때는 억지로 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 와야 한다. 어처구니 없이 희생된 대구 지하철 참변의 유족들과 피해자들이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난감하다. -
억지로라도 일상으로 돌아가자. 분위기 down 되면 다시 나온다고 준비 해 놓은 것이 있어 그냥 올린다.
토끼굴 풍경
우리 집 뒤에 여의도 까지 뻗어 있는 한강 변 자전거 길로 나가는 제법 긴 토끼 굴이 있다. 평소에는 한적하다가 토요일 오후만 되면 북적거린다. 소위 거리의 낙서꾼들, (이들은 자기들을 Graffiti Artist라고 부른다) 과 Roller Blade를 즐기는 젊은이 들이 몰려 들기 때문이다. 이들은 혼자서, 또 동호회 별로 몰려 든다.
Graffiti 라는 것은 말 그대로 낙서이고 70년대 초 뉴욕의 지하철 차량에 그리기 시작 하면서 급속히 퍼져 지금은 세계적으로 하나의 art 장르가 되었다. 갱단의 자기 영역 표시로 쓰기도 하고 공공 건물이나 남의 집 담장에 마구 그려 놓아 큰 도시 마다 대표적인 Vandalism 으로 골치거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 아이들은 합법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 감아 주는 곳에만 그리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 내가 찍은 청년들은 원탁이라는 동호회 멤버들인데 부산, 대전등에서 올라 와서 작품을 그리고 있었다. 막 그려 대는 것이 아니라 원고(draft)도 있고 자기가 맡은 구역에만 집중하는데 이들에 의하면 나름대로 무언의 규칙이 있어서 아무 곳이나 그리는 것이 아니고 충분히 노출되었다고 보여 지는 오래 된 그림 위에나 아니면 도저히 작품성이 없다고 생각 되는 곳 위에다 덧 그린다고 한다. 어차피 사라 질 운명이니까 한번 그리면 뒤 돌아 보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이런 Graffiti 동호회가 전국적으로 3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젊은이 들을 보고 있으면 재미 있는 것이 많다. 이들이 낙서(?)를 하고 있던 곳, 바로 옆에 차량 출입을 막아 놓은 막음 돌이 있다. 이 곳은 Roller Blade를 즐기는 아이들이 쉬어 가는 곳이기도 한데 활기 차고 역동적인 이들이 바로 옆에서 떠들어 대도, 여자 친구와 다투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자기들끼리도 말이 없다. “너희들 원래 이렇게 말이 없니?” “글쎄요, 저희 만나서 그림 그리고 헤어지고 그런 거지요 뭐” 이 친구들, 오늘 그림 그리고 부산으로 대전으로 그냥 헤어지는 모양이다. 오랜 만에 만난 표시로 소주잔도 노래방도 계획에 없는 것이 분명하다. 늙은이가 주책 떠는 것 같아서 소주 한잔 사 주겠다는 말도 못했다.
사진을 보내 줄 수 있겠느냐고 명함을 내민다. Graffiti/Visual Artist, 이름, 멜 주소 그리고 홈피 3곳. 이들 site에 들어 가 보았다. 장난이 아니다. 체계적이고 진지하다. 사진을 전송 받고 답 글을 보내왔다. “…… 다음에 또 서울 올라 가게 되면 멜 드리겠습니다.” 행여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소주 한 잔 꼭 사주어야 겠다.
사진은 여기다. (밑의 주소를 때리고 들어 오세요)
http://www.zoomin.co.kr:80/album/InviteURL.asp?InviteFrom=Album&AlbumNumber=46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