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이의 글을 보니, 문득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떠오른다. 사십이 넘어서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그림을 찾아 새 삶을 시작하는 그 사나이가 왜 떠오르는 것일까? 우리의 친구, 언제나 자신보다 먼저 남을 배려하는 우리의 착한 친구 태영이를 그 괴퍅스럽게 보이는(일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 스트릭랜드는 괴퍅하다.) 소설의 주인공에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핏 내가 달과 6펜스를 떠올린 것은 스트릭랜드의 결단과 태영이의 그것과의 어떤 유사성을 느꼈기 때문인 듯하다.
31년이나 학교 선생님으로서 많은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세 자녀와 부인으로부터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부친에 대한 끔찍한 효심을 가지고 있는 태영이가 아직 5년이나 남아있는 그의 교사로서 보장되어 있는 정년을 버리고 퇴직을 한 것은 아직도 그 자신이 나머지 그의 중요한 삶의 내용을 새롭게 해 보겠다는 대단한 결단이기 때문이다. 태영이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의 조기퇴직은 전혀 외부의 어떤 영향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뜻이었다. (그의 부인도 상당히 반대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직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훌쩍 브라질의 밀림과 하늘도시 마추피추를 향해서 출발하며 오늘 아침 우리 동창회 사이트에 간단한 인사를 올린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의 퇴직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거나, 가정사정이나 건강상의이유로 피치 못한 것이었다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의 이번의 장기간의 배낭여행이 무슨 현실적인 돈벌이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우리들은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치 이제 막 대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가볍게, 즐거운 표정으로, 배낭 하나 둘러메고, 마치 도봉산에라도 다녀오겠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인사말이 너무 가볍고 산뜻해서 우리들은 충격을 받는다.
이 세상에서 정말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백인백색으로 다를 것이다. 그런데 누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아름다운 것은 쓸모 없는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쓸모(효용성)와는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말해서 쓸모를 벗어날 때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무는 아름답지만 목재(쓸모)는 아름다움과 관계가 없는 것이며, 보석은 아름답지만 밥은 아름다움과는 관계없는 것과 같다. 그런 뜻에서 오늘 아침 태영이가 우리에게 산뜻하게 인사한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바로 그가 <쓸모 없는 일>에 망설임 없이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돈벌이를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무엇무엇을 위해서.... 처럼 무슨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세속가치를 넘어서서 행동하는, 어찌보면 무모하게 보이는, 스무살짜리 애숭이들이나 할 법한 일을 그의 말대로 예순이 다 되어 가는 지금 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은근히 위안을 주는 것은 그는 자신이 <아직 젊다>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젊다면, 아직도 순수한 것에 망설임 없이 나설 수 있는 젊음을 가지고 있다면, 틀림없이 그와 나이가 같은 우리들 또한 젊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들의 순수한 그리고 아름다운 젊음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태영이의 짤막한 그러나 대단한 인사말을 읽으면서 나는 한없이 그가 부럽다. 그가 질투가 날 정도로 근사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정말, 건강하게 잘 다녀오길 바란다.
31년이나 학교 선생님으로서 많은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세 자녀와 부인으로부터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부친에 대한 끔찍한 효심을 가지고 있는 태영이가 아직 5년이나 남아있는 그의 교사로서 보장되어 있는 정년을 버리고 퇴직을 한 것은 아직도 그 자신이 나머지 그의 중요한 삶의 내용을 새롭게 해 보겠다는 대단한 결단이기 때문이다. 태영이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의 조기퇴직은 전혀 외부의 어떤 영향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뜻이었다. (그의 부인도 상당히 반대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직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훌쩍 브라질의 밀림과 하늘도시 마추피추를 향해서 출발하며 오늘 아침 우리 동창회 사이트에 간단한 인사를 올린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의 퇴직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거나, 가정사정이나 건강상의이유로 피치 못한 것이었다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의 이번의 장기간의 배낭여행이 무슨 현실적인 돈벌이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우리들은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치 이제 막 대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가볍게, 즐거운 표정으로, 배낭 하나 둘러메고, 마치 도봉산에라도 다녀오겠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인사말이 너무 가볍고 산뜻해서 우리들은 충격을 받는다.
이 세상에서 정말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백인백색으로 다를 것이다. 그런데 누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아름다운 것은 쓸모 없는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쓸모(효용성)와는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말해서 쓸모를 벗어날 때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무는 아름답지만 목재(쓸모)는 아름다움과 관계가 없는 것이며, 보석은 아름답지만 밥은 아름다움과는 관계없는 것과 같다. 그런 뜻에서 오늘 아침 태영이가 우리에게 산뜻하게 인사한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바로 그가 <쓸모 없는 일>에 망설임 없이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돈벌이를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무엇무엇을 위해서.... 처럼 무슨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세속가치를 넘어서서 행동하는, 어찌보면 무모하게 보이는, 스무살짜리 애숭이들이나 할 법한 일을 그의 말대로 예순이 다 되어 가는 지금 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은근히 위안을 주는 것은 그는 자신이 <아직 젊다>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젊다면, 아직도 순수한 것에 망설임 없이 나설 수 있는 젊음을 가지고 있다면, 틀림없이 그와 나이가 같은 우리들 또한 젊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들의 순수한 그리고 아름다운 젊음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태영이의 짤막한 그러나 대단한 인사말을 읽으면서 나는 한없이 그가 부럽다. 그가 질투가 날 정도로 근사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정말, 건강하게 잘 다녀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