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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젊어져야 이 바람속에 살 수 있어”
한국의 5060세대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들의 삶과 꿈을 들여다보기 위해 취중좌담을 마련했다. 소설가 박영한(56)씨와 그의 술친구들인 김석구(56·사업)씨, 김승국(55·사업)씨가 주인공. 1월 18일 저녁 7시 서울 평창동의 한 음식점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방담을 나눴다.


한국의 5060세대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들의 삶과 꿈을 들여다보기 위해 취중좌담을 마련했다. 소설가 박영한(56)씨와 그의 술친구들인 김석구(56·사업)씨, 김승국(55·사업)씨가 주인공. 1월 18일 저녁 7시 서울 평창동의 한 음식점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방담을 나눴다.

장모가 단골손님을 위해 특별히 개발했다는 찹쌀쇠고기 부침과 막걸리를 식탁위에 내려놓았다. 소설가 박영한씨는 단골로 드나드는 밥집 주인을 “장모”라고 불렀다. 서울 평창동의 한식집 ‘산골’. 박씨와 그의 중·고교 동창생인 김석구씨, 그리고 박씨의 동네 술친구인 김승국씨가 ‘주안상’ 앞에 마주 앉았다. 김석구씨와 박영한씨는 부산 자갈치 시장 바닥에서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부산고 동문이다.

김승국씨는 박영한씨가 15년 전에 이곳 구기동으로 이사오면서 절친한 친구가 됐고, 박영한씨를 통해 김석구씨와 안면을 텄다. ‘하늘의 뜻을 안다’(知天命)는 ‘오십’도 훌쩍 넘어 노년의 문턱을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은 5060세대가 급속한 변화에 밀려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세파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막걸리가 한순배 돌자 먼저 한달 전의 대선 얘기부터 꺼냈다.

박영한: 대학에서 젊은애들 만나고, 창작 교실 열면서 30대 친구들 만나니까 선거결과를 보고 놀랍다는 느낌은 좀 덜한 편이야. 20∼30대가 영향이 클 거라고는 봤는데, 저렇게 막강한 파워를 보일 줄은 몰랐어. 나는 대선에서든 총선에서든 그동안 선거를 안하는 편이었거든. 투표 안하고 그냥 관찰자로 지켜보는 게 더 재밌단 말야. 이번에도 투표 안 했어. 근데 내 예상하고 다른 결과가 나온 거야. 내가 세상을 잘못 읽어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

김승국: 선거 며칠 전에 나보다 대여섯살 많은 분들하고 식사하면서 선거얘기를 했어. 모두 다 노무현씨가 우세하다고 말하면서도, 투표장에서는 젊은애들도 생각이 바뀔 거라고 봤거든. 나중에 그 사람들에게 전화해 봤더니 대선 결과를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더라고. 50대나 60대나 젊었을 때 월남전 참전하고, 70년대 경제성장 이끌면서 사실 30년 동안 우리나라를 주도해온 사람들이야. 그만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누가 대통령이 될 지 예측도 못하다니, 이거 병신들 아니냐는 거지(웃음).

김석구: 2030이니 5060이니 하는 말은 언론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들어. 20∼30대 중에도 개혁을 원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거지. 50~60대 중에도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이 많아. 20∼30대 중에서도 교육이나 성장배경 때문에 보수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말야. 젊은 사람들 목소리가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그걸 가지고 세대간의 격차를 말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나 싶어.

세 사람에게 대선결과에 대한 ‘충격’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올해 삼성그룹의 임원 승진자 평균 연령은 45.9세로 역대 최연소였다. 정보통신업체에서는 40대 CEO가 속출하고 있다. 과연 이들은 ‘50대의 퇴조’라는 사회적 흐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승국: 예전에는 동창회에 사람들이 모이질 않았어. 같은 회사 다니더라도 누구는 부장이고, 누구는 과장이니 기분나쁜 거지. 오십이 넘으니까 동창회가 잘 돼. 이제는 비슷해졌거든. 참가비가 3만원인데, 아주 열심히들 나와. 40대까지만 해도 동창중에 누가 잘 나간다 하면 친해지려고 했잖아. 반말도 못했어. 오십이 되니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구분이 없어서인지 잘 나오더라고. 나이 먹어서 뭔 잘난 척을 하겠어.

김석구: 지난해에 동창회를 했는데, 1백20명이 나왔더라고. 그중에 40쌍이 부부동반으로 나왔어. 50대에 동창회에서 잘난 척하면 ‘왕따’ 당해. 근데, 50대가 도태된다는 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야. 나이보다는 능력이 문제되는 거지.

박영한: 능력이 특출나면 그렇지. 근데 보통은 그냥 막 내쫓잖아. 그게 문제지. 우리 나이 되면 자신감이 없어지는 사람들이 사실 많거든. 주변에서 소외감을 가진 친구들을 보면 회사나 조직에서 뭐가 안 풀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야. 우리 이제 갈 때 다 됐다, 이제 그만 먹고 가자, 이러거든.

김승국: 인문계통은 그래도 오래 버티는 편이야. 이공계 쪽은 벌써 쫓겨났어. 옛날에야 기술자들이 진급도 빨랐고, 돈도 많이 벌었지. 군대에서 특기병과 출신은 소장 정도에서 끝나잖아. 그거랑 똑같아. 나처럼 건축과 나온 사람은 회사에서 잘돼 봐야 상무·전무라고. 인문계 나오면 구멍가게라도 하는데, 건설회사 봉급쟁이 출신들은 자영업도 못해. 오십이 되면 퇴물이 돼 버리거나,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게 돼.

김석구: 50대의 퇴장은 자연스런 수요·공급의 법칙이라고 봐. 예전에 삼성에 입사할 때 1백50명을 뽑았어. 그런데 지금은 한해에 3천∼4천명을 뽑는다구.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밑에서는 공부도 많이 하며, 해외경험도 많고, 회의문화에도 익숙한 사람들이 치고 올라오니 윗사람들을 그냥 놔둘 수 없는 거지. 자연스런 변화지 20∼30대가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 아냐.

동창회 얘기부터 시작한 술자리는 점점 달아올랐다. 모두들 할말이 너무 많았다.

김승국: 예전에 마흔아홉살 먹은 전두환이 정권을 잡으니까 회사의 이사·부장들을 10년 젊은 사람들로 교체했던 적이 있었지. 대선만 끝나면 학연이나 지연을 동원해야 하니까 사람을 바꾸더라고. 이번 대선의 주축이 20∼30대이다보니 인사 로테이션이 좀더 빠른 거 아닌가 해. 회사에 다닐 때는 어차피 ‘똥차’는 밀리는 거니까 나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능력이 없다는 생각은 안 드는 거야. 박형이 얘기한대로 우리도 젊었을 때 지금 60대를 그런 눈으로 봤어. 우리 윗세대들은 육군상사 마인드를 갖고 있었어. 봉급을 깎아도 있겠다는 데 뭐. 젊은 세대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하지만 우리 세대는 좀 다른 거 같아. 창피한 거 알고, 자존심 때문에 가지 말래도 자기가 먼저 회사를 뛰쳐나가는 사람들이야.

김석구: 나이 앞세워서 강압적이고 권위적으로 하던 시대는 이제 끝난 거야.

김승국: 20∼30대 보면 햇볕정책이나 북한을 보는 데 참신함은 있어. 북한에서 핵개발한다고 하면 5년 전만 해도 난리가 났잖아. 그런데 지금은 설마 핵무기를 쓰겠어 한다고. 남북대화를 보면서도 우리는 “돈 갖다주면서 하려면 차라리 대화하지 말지” 하는데, 젊은 친구들은 “거 좀 주면 어떠냐” 하거든. 그래도 괜찮다는 걸 젊은 친구들이 가르쳐준 거지. 물론 우리 세대 중에도 정신 못 차리는 사람 많아. 보수적이라 해도 제대로 된 보수도 아니지. 좀 감각이 변했으면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거 같아.

‘장모’가 내온 찹쌀쇠고기 부침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어수선한 밥집에서 세 사람은 간간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도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이제 대화는 잠시 그들이 2030세대였던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그들은 4·19와 3선개헌 반대 시위, 유신을 거친 세대다.
김석구: 나는 3선개헌 반대시위가 일어날 때 서울에 올라왔어. 4·19때는 부산진 경찰서가 불타는 것도 보고, 마산까지 걸어서 간다고 구포다리 지나 김해까지 가기도 했어. 나는 박형이 관찰하는 데 바빠서 투표 안했다는 건 이해 못해.

박영한: 김형은 운동권이었잖아. 난 4·19때도 참석 안 했어. 대학때도 총장 몰아내자고 데모했는데, 나는 그런데 안 갔어. 남들 데모할 때 나는 내 속에 뭐가 들어 있을까, 이런 거 관찰하는 게 더 재밌었어. 데모하러 몰려갈 때 나는 대폿집에서 술이나 마셨지. 내 문학관도 그래.

김승국: 우리는 그래도 새로운 세상에서 공부를 한 세대 아냐. 중학교때부터 입시경쟁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게 우리야. 나름대로 엘리트 의식이 있었던 거지. 그러다 전두환 정권 들어서면서 엘리트 의식이 무너져 버렸지. 지금 20∼30대들 얘기에 공감은 할지 몰라도 그들이 주류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래도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단 말야.

김석구: 김형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의견’이 어느 세대에서 나왔건 존중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20∼30대는 경륜이나 경험이 부족하겠지만, 우리에게 없는 참신함과 새로움이 있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모든 의견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자는 거지. 우리 세대중에도 그런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 같아. 민주주의적인 문화가 더 일반화되는 거지. 지금 40대가 50대가 되면 이런 흐름이 더 커지지 않겠어?

50대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삶은 어떤 것일까. 그들이 이룬 것은 무엇이고, 현재 그들의 삶은 만족할 만한가.
김석구: 30대 후반까지는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박사학위라도 딸 수 있겠다 싶었지. 그런데 마흔이 딱 넘어가니까, 어이구 백만장자는 나하고 거리가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업종을 바꾸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고 싶어도 멈칫거리는 거야. 나이를 먹으면서 허들같은 것에 마주치게 되는 거지. 우리는 일단 회사에 들어오면 이게 평생직장이고 나가라 할 때까지 있겠다, 그러면 임원도 시켜줄 거고 노후도 보장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김승국: 나는 별로 부침이 심하지는 않았어. 대학 졸업할 즈음은 취직이 어려울 때였어. 건설회사에 들어갔는데, 그때 건설붐이 일면서 정신없이 지냈어. 서른 일곱까지 한 회사에서 근무했는데, 한 조직안에 오래 있다 보니까 진급도 빨리 되고 해서 계속 지냈지. 회사에서 알아주는 재미로 다닌 거야. 그러다 30대 후반에 건설회사 차렸는데 이게 참 황당무계하더라고. 싱크대 높이가 몇cm인지 몰라도 현장감독 잘 하고, 감독관청하고 잘 지내면 되는 거야. 집을 잘 짓는 게 문제가 아니라 땅값이 올라서 돈 버는 거야. 건설이 아니라 부동산 장사였던 거지.

박영한: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렵게 자랐어. 우리가 살아왔던 사회는 만신창이였지. 지금 대학교 3학년, 1학년에 다니는 애 둘이 있는데 재산은 별로 못 모았어. 전세 살고 있는데, 재산 다 합치면 집 한 채 정도나 나올까. 열심히 살아온 작가를 한국사회가 이렇게 대접한다는 게 좀 슬프기도 하지만 나보다 못한 작가들도 있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어. 요만큼이라도 글쓰고 살게 됐다는 건, 그래도 견딜 만한 거야. 예술을 질량으로 따질 수도 없는 거고 말이지.

김승국: 나는 아들이 한의대 다니고 있고, 딸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 우리 또래는 비슷하지 않나 싶어. 아파트 한 채에 마누라가 몰래 만들어놓은 1억∼2억 정도. 아파트래야 2억∼3억대짜리고. 그저 남한테 아쉽다 소리는 안하면서 사는 정도랄까.

김석구: 난 아들이 둘 있는데, 우리 또래에 대학교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한 사람으로서 뭐 평균치는 가는 거 같아.

박영한: 뭐가 평균치야. 김형은 좀 상급레벨이야.

김석구: 그래 평균치 이상이다. 그만 해라(웃음). 박형이 자기 분야에서 얻은 입지에 만족한다고 했듯이 나도 내 분야에서 이만한 정도가 된 것에 대해 그렇게 큰 불만은 없다는 얘기야.

김승국: 우리야 워낙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했으니까 나아진 것만은 분명해. 어렵게 시작해 여기까지 왔으니까 다들 성공했다고 보는 거지.

자식도 웬만큼 성장했고, 아파트 한 채 정도는 마련한 이들에게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7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경제성장 과정을 온몸으로 부딪쳐온 세대가 그리는 내일은 무엇인가.

김석구: 은퇴한 뒤에 생각해 둔 게 있어. 사륜구동 트럭 뒤에 집 같은 거 하나 만들어 그걸 가지고 세계일주하는 거야. 그러다가 객사하고 싶어. 삶의 지혜는 여행에서 오는 거 같아. 소원 한가지 덧붙이자면, 기행문이나 칼럼 같은 거 기고하면서 여행하는 거야. 그렇게 세계일주를 다섯번 하는 거지. 동년배들에게 이제까지 재테크에 신경쓰며 살아왔던 것만큼 건강에 신경쓰라고 말하고 싶어. 가족관계나 주위 여건도 달라지잖아. 변화에 적응하면서 활동목표가 있어야 해.

김승국: 몇년 전부터 감리단 제도가 생겼는데, 이게 건설기술자들의 양로원이야. 이쪽 분야 퇴직자들이 거기 가 있어. 애들 시집, 장가 보낼 때까지는 명함이라도 있어야 하잖아. 애들한테 내가 해주는 마지막 서비스가 끝나면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 일본에 가보니 한평밖에 안되는 라면집에서 육십 먹은 사람이 종업원도 없이 혼자 일하더라고. 점심·저녁때 두시간씩 네시간 일하는 거야. 그렇게 국수장사 해보는 꿈을 가져본 적이 있어. 펜션 하우스를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보고 있는데 5년 후 쯤해서 방도 빌려주고, 젊은애들한테 음악도 들려주는 펜션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 하여간 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야.

박영한: 전업작가 생활을 한지도 25년 정도 됐는데, 지금까지 작품과는 다른 계열의 작품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 그거 안하고 넘어가면 인생이 씁쓸할 거 같아. 경제적인 성공은 바라지 않아. 그러고 나면 꽃도 키우고 짐승도 키우면서 살고 싶어. 동년배들 만나면 내면이 너무 늙은 거 같아. 공부도 안해. 쉬임없이 세상을 관찰해야 하는데 말이야. 마인드가 젊어야 50대도 살아남을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도 반성하고, 젊어지려는 노력을 해야지.

세 사람은 어수선한 술자리를 마치고 맥주집으로 향했다. 거기엔 박영한씨의 소설창작강의를 수강하고 있는 20∼30대들이 모여 있었다. 세 사람은 떠들썩한 맥주집에서 함께 어울렸다. 이만하면 대체로 성공한 삶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석구씨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50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누구든 인생의 절반은 성공이고, 절반은 실패라는 얘기다. 거기서 성공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10시 30분이 넘어가자 50대의 두 사람은 맥주 몇병을 비운 뒤 서둘러 귀가했고, 소설가와 제자들이 마지막까지 술자리를 지켰다.

 
[진행·정리: 김재환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좌담 참석 3인의 인생 ‘이력서’

박 영 한
1947년 부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77년 ‘머나먼 쏭바강’으로 데뷔했다.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동의대 교수. ‘왕룽일가’, ‘우묵배미의 사랑’ 같은 작품을 발표했다. 창작교실을 열어 소설가 지망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에 다니는 두 자녀를 두고 있고, 전업작가 생활을 전념하면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 게 남은 인생계획.

김 석 구
1947년 부산 출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고, 삼성전자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에스원 정보통신실 실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벤처기업 리얼아이디의 부회장. 73년생, 76년생인 아들 둘을 두고 있으나 아내와 자식들이 모두 미국에 유학가 있는 ‘기러기 아빠’다. 은퇴후 트럭을 몰고 세계일주를 다섯번 정도 하다 ‘객사’하는 게 꿈이다.

김 승 국
1948년 인천 출생. 한양대 건축학과를 나와 (주) 대농에서 15년 정도 근무했다. 30대 후반 중소건설업체를 차렸다. 현재 한박건업의 대표로 있지만 건설불경기를 호되게 겪고 있다. 한의대 다니는 아들과 대기업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다. 60대 후반이 되면 조그만 생라면 집을 하거나 강원도에 펜션을 짓고 민박도 하며, 음악을 들려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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