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5060이여 자신을 구조조정하라 |
6·25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태어났고, 4·19, 5·16의 정치적 혼란기를 통해 세상을 알고,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속에서 자신의 삶의 목표를 세웠던 50대와 60대는 이제 급하게 밀려나는 자신의 모습을 허망하게 지켜보는 현실에 직면했다. |
6·25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태어났고, 4·19, 5·16의 정치적 혼란기를 통해 세상을 알고,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속에서 자신의 삶의 목표를 세웠던 50대와 60대는 이제 급하게 밀려나는 자신의 모습을 허망하게 지켜보는 현실에 직면했다. 잘 살아 보겠다고 물불 안가리고 일 열심히 한 것뿐인데,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50대도 여전히 젊은데 왜 갑자기 사회와 조직에서 부담스럽고 무능력한 집단으로 취급되는지 의아할 뿐이다. 변해야 하고, 젊은 사고를 해야 한다기에 최신 유행곡까지 열심히 배워 불렀는 데 말이다. 어느 때보다 세대간의 차이가 뚜렷이 표현됐다는 대통령 선거 후에 50대 이상의 세대가 느끼는 심리적 박탈감은 분명하다. 선거가 끝난 몇주 뒤, 50대에 속한 어떤 분이 40대의 필자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던진, “이젠 자네들 세대가 힘을 쓰겠구먼”하는 이야기는 이런 심정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50대와 60대를 사회의 중추로, 조직의 핵심으로 보지 않고 무조건 젊은 세대로 교체하려 하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60세 환갑을 누구나 경험하고, 평균 수명이 80을 바라보는 사회에서 50대가 사회적 고려장(高麗葬)의 시작이라면 그것은 당신이 아닌 바로 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왜 경험과 연륜이 있는 사람을 조직에서 빨리 내보낸다고 합니까?”라는 질문을 하면, 꼭 듣는 대답이 있다. “별로 하는 일이 없어요. 그리고 월급만 많이 받고요.” 이들의 경험과 연륜이 소용 없단다. 심지어 교육현장에서 한 사람의 늙은 교사는 세 사람의 젊은 교사로 대체할 수 있다는 논리까지 만들어졌으니 기업의 경우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고려장 신세의 당사자 반응도 비정상적이다. “그래, 나는 안 그렇지만 우리 세대는 경쟁력이 없어.” “우리야 자식과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지 뭐.” 아니면 “갈 곳이 없으면 암담하니까 밀어낼 때까지 붙어 있는 거야.” 이런 이야기는 단군 이래 최고의 국가 융성기를 만들었다는 현재의 50~60대 집단이 자신들을 평가절하하는 말이다. 스스로 버림받고 밀려나는 이유를 스스로의 무능으로 합리화한다. 현재 50대와 60대는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부와 힘을 가진 세대다. 밀려난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이 사회의 중추다. 장강(長江)의 앞물결이 뒷물결에 의해 밀려나는 것이야 자연의 이치겠지만 어떤 사회에서 특정 세대가 가장 핵심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정당화시킬 수 없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 사회의 50대와 60대가 직면한 문제다. “명함이 없으면 불안한 사회. 어디 가서 어디의 누구라고 이야기 할 수 없으니 마치 내가 산송장이 된 느낌이었어요.” 이것은 어디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 느끼는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외부에서 주어지는 역할을 통해서만 느껴야 했던 조직인간, 소위 말하는 회사형 인간의 심리다. 이들의 자아는 앞만 보고 달려온 경제개발의 주역이 되는 것이었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란 고작 나이에 따라 좀 더 높은 자리로 가는 출세, 그리고 조직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었다. 조직이 개인을 대신하고 또 그렇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개인의 삶이다. 이것은 20세기 조직 사회의 원리였고, 경제기적을 만든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발전 논리였다. 하지만 결국 개인은 조직 속에서 발전한 자신의 모습보다 조금씩 망가지면서 희미해진 자기의 모습만을 갖게 된다. 회한과 비통감을 안고 조직을 떠나는 그 순간에 자아의 상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구조조정과 변화의 소용돌이는 직장의 상실이 아닌 자아의 몰락과 상실을 확인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사고 방식은 성장지향적 사고였다. 더 나은 위치, 더 나은 역할, 더 나은 상황을 위해 항상 앞으로만 가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를 찾아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인생경로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하는 시대에 개인의 적응을 위해서는 잘못된 믿음이다. 무엇보다도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을 일치시킬 조직도 없고, 지금까지 인정받고 잘 해왔던 일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는 50대와 60대의 경우 성장 지상주의적 사고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는다. “왜, 회사에 다녀요? 일을 하려고요? 월급을 받자고요?”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러면, “왜 사세요?” “글쎄, 죽지 못해서, 아니면 먹고 살자고.” 이런 대화를 50대와 60대와 하게 되면 상당히 곤혹스런 반응을 보게 된다. 아마 질문 자체도 삭막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뻔한 대답 이상의 무엇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굳이 거창하게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한다는 등의 말을 하고 싶지만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연배가 됐기 때문이다. 주어진 정답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이제 50대와 60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사고의 전환, ‘적응적 사고’로의 변환이 필요하다. 사실 이것은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조직을 통해 자아를 찾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프리 에이전트’로 바꾸는 생각이다.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하는 것이 20세기의 대표적 직업 형태였다면 이제는 자신과 타인으로 구분하면서, 자신의 재능과 서비스를 에이전트의 형태로 제공하는 역할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를 위한 직장을 만들고, 조직이 아닌 자신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생활 방식과 삶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어떤 조직과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의 가치, 존재 이유를 찾는 것이 인생 전반부의 20년 동안 해왔던 일이라면 인생의 후반부에 있는 50대와 60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이것을 자신에게 맞추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꿈이 없는 자는 죽은 것이다”는 말은 10~20대의 젊은이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50~60대에 맞는 꿈을 꾸어야 한다. 단지 이 꿈은 젊은 시절의 꿈이 아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나를 위한 꿈이 되어야 한다. |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