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해 보니 크게는 '새마을 운동'부터 작게는 '5S 운동'까지 의식개혁이니 경영혁신이니 주제도 가지각색으로 온갖 운동을 다했다. 그런데도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오리무중이다.
- 다음 글은 '무결점 운동(ZD)'이 한참 진행될 때, 사보 '경영자 칼럼'에 싣겠다고 부탁받아 쓴, 해묵은 글이다. 파일을 뒤지다 우연히 이것을 발견했는데 지금 읽어보니 내용은 우습지만, 건강에 도움도 안되는 운동을 나만한건 아니겠고 우리 세대에 스쳐간 각종 운동 한번 생각해보고, 그래서 우리 세대의 한 추억으로 여기자고 여기 올려본다.
- 지금 보니 제목부터 어딘지 촌스럽고 웃긴다. 요즈음 버전으로 한다면 '디스크에 키보드로'쯤 될까?
노트에 연필로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서로 우애 있게 살고 열심히 공부해라. 그리고 불쌍한 네 엄마를 모셔다오. 나는 지금 매우 슬프다.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구나.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시는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다. 아, 하느님, 제가 살 수는 없을까요? 비행기가 폭발한 때문인지 기내에 연기가 가득하다. 온몸이 내려 앉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서운 생각이 드는구나. 나의 아들 쓰요시야, 너는 우리집의 장남이니 너만 믿는다. 집안을 잘 이끌어 가다오. 그리고 여보.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아이들을 부탁하오. 지금은 6시30분 비행기가 흔들리면서 급속히 떨어지고 있소.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행복한 삶에 고마움을 느끼오. 이제 모든 것이 끝인 것 같소. 잘 있으시오.”
이 글은 1985년 8월 12일 일본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한 탑승객이 남긴 죽음의 기록이다. 기류가 좋지 않거나 에어포켓에 걸려, 단 몇 분간 동체가 흔들리기만 하여도 손에 땀이 나고 얼마나 불안 했던 가를 생각할 때,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 짧은 죽음의 순간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모두 타버린 잔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사고로 숨진 승객 중, 이렇게 무엇인가를 기록하려고 시도 했던 사람이 3명이나 더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단순히 몇몇 사람의 특이한 기록 벽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이 사고 순간의 상황과 사고원인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이렇게 밝혀진 사고원인은 또 다른 사고를 예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오래 전 우리회사 최고 경영자과정 강의를 맡은 교수 한 분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교수는 미국 유학시절 방학을 맞아 같은 반의 독일 친구 집으로 여행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십 수년이 지난 얼마 전 독일 출장 길에 그 친구 집을 다시 들르게 되었는데, 그 때 이미 돌아가신 친구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학생 때 만났던 그 친구 아버지가 혹시 자신에 대한 기록을 일기에 남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 그 당시의 일기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당시 자신의 인상과 모습부터 친구 아버지와 나눴던 아주 사소한 얘기에 이르기 까지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한다. 그것을 본 순간 그 교수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백하였다. 전혀 쓸모도 없는 이런 하찮은 것을 이토록 철저히 기록하여 남겼을진대 꼭 필요한 정보들은 얼마나 완벽하게 기록해 두고 있을까?, 이와 같은 철두철미한 국민과 경쟁하기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모짜르트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아내로부터 외면당한 채 돈 한푼 없이 티브스 열병과 싸우며 불후의 명곡 레퀴엠을 작곡하였다. 그런 불행의 중첩 속에서도 그는 그 때의 불안과 초조와 엄습해 오는 죽음의 공포를 낱낱이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짧은 일생동안 그가 작곡한 무수한 명곡의 뒤안길에 깔린 알려지지 아니한 여러 가지 이야기와 느낌과 당시의 환경, 생활상등을 많은 편지 속에 상세하게 적어 놓았고, 이 편지들은 지금까지 보관되어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나 지난 오늘날, 이 기록들은 ‘아마데우스’ 와 같은 명화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기초자료가 되었다.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와 같이 전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찬연히 빛날 우리 선조들의 작품세계는 영원히 그 맥이 끊겨버린 것 같다. 가마에 그 비결이 있는지, 자기를 빚은 흙인지, 아니면 유약에 비법이 숨겨 있던 것인지 알 길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재현해 보기 위하여 얼마나 긴 세월을 두고 연구를 거듭해 오고 있는가? 그러나 아직까지 그 비법을 알아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단 몇 장이면 족할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한국에서 오는 분들은 정부 관리도, 대학교수도, 회사임원도 한결같이 같은 질문을, 그것도 몇 년 동안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같으면 답변을 정리해서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읽게 하여 똑 같은 것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까지 출장을 반복해서 오도록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대만의 경제발전 모델을 연구하기 위해 대만 정부관리를 만나 면담한 바 있던 한 노 교수가 그들의 얘기를 듣고 털어놓은 낯 부끄러웠던 고백이다.
장황하게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우리 선조를 비방하거나 대만에 갔다 온 교수를 탓하자는 생각 때문은 결코 아니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는 기록하는데 너무 인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적어 보았을 뿐이다. 설사 기록을 했다 하더라도 그 기록은 철저히, 완전하게 자기만의 것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를 꺼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발전의 밑거름이 될 만한 자신의 실수나 과오에 대한 솔직한 기록들을 찾아보기란 더더욱 어렵다. 문서로 남겨놓은 건 기껏해야 책임을 면하기 위한 근거 자료정도가 아니었던가 싶다.
무결점을 지향하는ZD(Zero Defect) 운동이란 모든 게 완전하여 한치의 실수나 착오가 허용되지 아니하는 상태를 만들자는 운동이며, 이를 달성하려면 과정상의 모든 불완전 요소가 빠짐없이 배제되어야만 할 것이다. 가능한 모든 불완전 요소를 자기가 체험 함으로서 터득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혹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와 같이 미련스럽고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하면 안될 거라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ZD는 여러 사람의 뜻과 지혜가 합쳐지지 아니하면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경험해 알고 있는 불완전 요소를 옆 사람이 알고 있는 것에 보태야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록은 이렇게 하기 위한 필수 수단이다. 그러므로 기록의 누적 없이 ZD는 생각 할 수 없다. 기록만 가지고 ZD가 달성 될 수는 없겠지만, ZD를 달성하기 위하여는 기록의 축적과 공유가 필수 요건인 것은 틀림없다.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침착하게 적어놓은 편지,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들 친구의 관광 여행기록, 유명한 예술가, 저명한 사상가들이 남겨놓은 그 무수한 기록들이, 그 사회, 그 나라의 발전과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 우리는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 지금부터 그리고 우리들부터, 무엇이든 적어야 한다. 적은 것은 무엇이든지 감추지 말고 공개해야 한다. 적는 것이 습관이 되고 적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러워 질 때 ZD는 우리 앞에 한 걸음 다가와 있을 것이다.
(1987. 4. 3.)
(사보 ‘아남’ 1987년 5월호 ‘경영자 칼럼’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