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세 친구를 만난 즐거운 여정>
11일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으로 여름철이면 세계 각국의 저명한 연주가들이 모여들어 성대한 음악제가 개최되고, 아직도 교회와 궁전등 바로크 건축의 걸작품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Salzburg에서 독일의 Frankfrut로 이동하는 여정을 끝으로 8박 9일의 동유럽 여행은 마지막 날이지만 여학생들 ( 분명 여고 시절의 수준이었음) 은 또다른 일정으로 오히려 들뜬 기분들이었다.
Frankfrut 중악역의 규모는 유럽에서의 기차 여행의 기대를 충분히 고조시켰고, Berlin으로 향하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독일의 푸른숲과 잘 정비된 가옥은 꼭 그림 같어서 고 선옥은 일부러 정부에서 정비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차멀미로 고생을 하던 박 미자도 table을 마주하고 앉어서 아주 기분 좋은 얼굴이 되어서 기차 여행을 만끽할 수 있었다.
천 주훈은 Amsterdam의 고객을 방문하는 관계로, 그리고 장 용웅과 김 성구는 우리와 함께 Berlin 관광에 합류하기로 해서 달리는 창밖 풍경을 배경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촬영을 해 보기도 하였다.
Berlin에서는 이 종건이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독일 맥주를 한잔 하면서 내일 일정을 점검하면서 동Berlin 방문의 흥분이 가시지 않는건 아마 우리의 입장이 남다른 탓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동유럽의 고고한 역사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품격있고,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옛 건축물을 만끽한 여행객들의 눈으로 대하는 Berlin의 첫인상은 별 흥분을 느낄수 없었다.
하지만 Kaiser-Wilhelm-Gedachtniskiche 교회를 마주친 순간 머릿속에서 자그만 돌맹이 들이 부딪치는 충격을 느꼈다.
이 교회는 전쟁의 비참함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붕괴된 모습 그대로 시내 한 복판에 보존되어 있었다. 원래 1894년 독일 초대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교회였는데, 제2차 대전에서 무참히 파괴되어 지금은 높이 63미터의 탑 잔해만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하듯 서 있었다.
일부 남어 있는 Berlin 장벽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들 있었지만 유독 우리들은 남다른 감회에 젖지 않을수 없었다.
베를린이 봉쇄되던 당시의 상황과 동베를린을 탈출하는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대하는 순간 신문에서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서 해걸을 하며 연명을 하는 북한 주민들의 기사가 생생하게 기억 되었다.
동베를린 슈프레 강에 떠 있는 박물관 섬에 있는 Pergamon Museum, Bode Museum등 동베를린에 있는 유적들을 관광하는 동안에도 마음의 동요는 진정되지 않었다.
다행히 이 종건이 예약해둔 호돌이 한정식 집에서 김치찌개와 불고기로 오랜만에 현지식에 식상한 뒤라 점심을 폭식한 탓에 느긋해 질수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관장님이 예약해둔 곳으로 모시는 식당 아주머니의 태도는 우리를 V.I.P. 대하듯 했고, 관장님이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가 아! 이 종건이구나! 하자 초라한 행색의 여행객들에게서 관장님을 종건이라고 부르는 여자들이 너무도 놀라운 나머지 동창이란 설명에 그만 자지러진 웃음을 터트리고 말었다.
정말 후한 대접에 우리 모두 넉넉해진 마음으로 동창 잘둔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들 흐뭇해 했다.
특히 현지식에 식상해 있던 박미자와 이미화는 영원히 이 종건을 못잊을 것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포식을 한 탓인지 Potsdam으로 달리는 한시간 남짓 바쁜 일정에 쫓기던 우리들은 모두를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1945년 Potsdam 트루만, 처칠, 스탈린 3거두가 회담을 열어서 제 2차 대전후의 대일 처리 방침을 표명한곳이고, 그들의 결정에 의해서 현재 우리나라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했다는 이곳은 브란덴 부르크 제후가 1745녀~47년에 걸쳐서 건축한 로코코 양식의 아름답고, 품위있는 산수시 궁전으로 지금은 호텔로 개조되어 있었고, 앞뜰의 호수는 너무도 평화스러워서 역사의 무상함 마저 느끼게 하였다.
이제 우리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어 있는데, 언제 우리 민족 50년의 아픔을 끝낼수 있을지 우울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저녁에 이 종건과 숭어 요리에 깃들인 독일 맥주를 들며 Berlin의 짧은 여정을 아쉬워 했지만 이 종건의 서울 입성시 11명의 여학생은 모두 황홀한 밤을 약속해 주었다.
<1945년 포츠담 회담 장소 >
장 용웅, 김 성구 남학생 두명을 Berlin에 남겨 두고 12명의 여학생들이 기차로 독일 북서부에 위치한 조용한 휴양도시이고, 한 명희가 살고 있는 Bad Zwischenahn 으로 이동을 했다.
기차에서 내린 순간 우리는 모두가 동화속의 나라로 빨려 들어온 느낌이었다.
가로등마다 아름다운 꼿들이 늘어져 있었으며 거리에는 아주 작고 예쁜 가게들이 관광객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언제나 삶이 힘들때는 우리가 꿈꾸던 그런 그림속 도시속에 담쟁이 덩굴이 감싼 대문을 들어서자 우리는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말었다.
그렇게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꾸미고 살까?
우리는 모두들 영화속에서 보던 아름다운 집과 한 명희의 안목과 부지런함, 그리고 벽을 장식하고 있는 섬세한 십자수의 작품들에 그만 넋을 놓고 말었다.
잘 정돈된 잔디밭 뒤로 숲을 지나야만 옆집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전통적인 옛 독일식 가옥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apple pie와 전통차를 마시며 내다 보는 호수가 아름다워서 모든 피로를 씻을 수 있었고, 반짝이는 햇살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우리는 호숫가 잔디에 누워서 마음껏 게으름을 부리고 싶었지만 바지런하기 그지 없는 한명희의 성화로 부근의 마을을 둘러 보았다.
명희가 근무하는 병원, 근처 묘목장, 그리고 아름다운 집들, 휴양지에 들어선 카지노, 교외에 있는 교회며 farmer's market등을 보면서 아름답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독일의 아름다운 휴양지를 마음껏 부러워 하기도 했다.
독일이라고 우리가 노래방을 빼 놓을 수는 없는일.
넓은 living room이 노래방이 되었고, 한명희의 갈고 닦은 노래 실력을 시작으로 여자들만의 party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남자 동창생들이 있어서 우리가 즐거웠다는 확신을 해 왔지만 그건 정말 기우였다.
잠옷 바람의 유부녀들만의 독일에서의 한밤의 party는 어떤 상상을 해도 부족함이 없는 party 였고, 누가 손만 들어도 우리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들 나오곤 했다.
절대 노래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사의 지시도 무시한 박정애의 현란한 주도로 유 정숙의 활약과 진 영애가 진목면을 발휘한 자리에서 우리는 밤이 깊어 가는줄도 모르고 그만 자지러지고들 있었다.
다음날 아침은 향긋한 커피에 빵집에서 갓 구워온 맛있는 독일빵과 샌드위치로 기품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유독 김치에 샌드위치를 고집하는 한국 아줌마들도 있었다.
기차로 한시간 남짓 떨어진 Bremen은 매우 깔끔하고 화사한 느낌을 주는 독일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잘 간직한 곳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밑에서부터 차례로 당나귀, 강아지, 고양이 닭의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는 Bremen의 음악대 동상은 "그림 동화'의 주무대가 된 메르헨시에 온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 주었지만 동상을 본 순간 언제나 동화의 나라는 상상속에서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시내로 걸어가는 길목에 있는 풍차를 지나 시청사가 있는 곳으로 가면 무척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고, 대성당과 거리 꽃가게들과 노천 카페와 상점들이 늘어져 있어서 우리는 모처럼 여행중에 갈구하던 shopping도 하며 노천 cafe에서 느긋하게 차도 한잔 즐길 수 있었다.
Bremen에서 Mainz로 가는 여정에는 미국의 이 길주와 한 명희가 Hamburug로 가서 18일 미국으로 갈 예정이어서 고선옥, 남영애, 박미자, 박정애, 유정숙, 이미화, 이석영, 진영애, 최혜원 그리고 나 이렇게 10명으로 단출한 식구가 되었다.
길주는 멀리서 동창 여행이라면 캐나다, 호주, 유럽까지 마다 않고, 어려운 schedule을 맞추어 가며 동참해 주는 열의가 너무도 고맙고 우리의 귀감이 되고는 한다.
기차 창밖으로는 독일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Rhein강가의 경치가 펼쳐지고 아름다운 성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황혼이 깃들기 시작하는 시간은 슬프기 까지 했다.
기차안에서 저녁으로 준비해 온 김밥 도시락을 펴 먹으며 우리에게는 친숙한 음식 냄새가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생소할까 걱정이 되어서 우리 모두 흡연실에 모여서 먹으며 바로 뒤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독일인의 눈치가 보이고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조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최 혜원이 예약해둔 Maintz Hilton Hotel은 창밖으로 Rhein 강이 흐르고 멀리 비추이는 다리며 불빛들이 매혹적이어서 짐만 내 동댕이 친채 우리를 밖으로 내 몰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주로 변방에 고색 창연한 Hotel에서 유숙을 했던 관계로 밤에 이렇게 Rhein 강변을 거닐다가 Maintz 시내를 방황을 하며 찬 밤 바람에 아랑곳 않고, 노천 cafe에서 ice cream을 먹으며 다니는 기분은 여행자의 감흥을 한껏 고취시켜 주었다.
15일 아침 오늘은 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떠나는 날이므로 새벽부터 일정을 서두르기로 했다.
최 혜원은 두 아들을 독일서 의대를 보내고 모두 결혼도 시켜서 정말 장한 어머니 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둘째 아들 정석이가 안내겸 해서 우리를 guide해 주기로 했다.
신혼의 정석군이 서울서 온 어머니 동창들을 위해서 그 귀중한 일요일을 우리의 안내자로 동행해준 성의가 너무도 고마웠고, 신통했다.
독일의 상징이기도 한 Rhein강 북쪽으로 많은 화물선들이 다니고 있었으며 풍경이 아름답고 잇달아 나타나는 옛성과 포도원을 비롯하여 하이네의 시로 유명한 로렐라이 바위등 가장 아름다운 이곳을 보지 못하고 독일을 떠난 남학생들은 아마 죽을 때 눈을 감지 못할거라는 걱정까지들 했고 혜원이의 초대를 너무도 흐뭇해 하기도 했다.
독일서도 상부 Rhein쪽은 다리를 볼 수 없는 점도 신기했다.
곳곳에 아름다운 휴양도시들과 민박집 앞에서 여유를 즐기는 노인들의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독일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거의 첫 번째 관광지로 꼽는 Heidelberg 성으로 향하는 마음은 흥분되기까지 했다.
1300년 경에 건축된 Heidelberg 성은 몇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400여년 동안 중, 개축을 반복하였고 르네상스풍의 성관과 중세풍 성새가 혼용되어 있었다. 입구 돌출부에서 바라보는 네카 강의 옛다리와 시내 전경이 한폭의 그림이었다.
지하에는 1751년에 만들어진 약 22만 리터의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술통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뭇 끌어 당기고 있었다.
Heidelberg는 '황태자의 첫 사랑'이라는 영화의 주요 무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도 독일의 황태자와 여종업원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전해오는 Zumzepel 이라는 맥주집에서 시원한 독일 맥주 한컵씩을 마셔 보려고 찾어 갔지만 오후 2시반이 넘은 시간이어서 문을 닫는 바람에 아쉬운 발걸음을 노천 cafe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많이 느끼고 즐긴 여행이었다.
돌아 오는 비행기속에서 화추어지는 뉴스 장면을 보며 밤12시 시계종이 울리면서 마술이 풀려서 아름다운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는 신데렐라의 신세로 돌아옴을 실감하지 않을수 없었고 곧 닥아올 추석 준비로 내일은 배추 김치를 담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지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또 다른 계획을 세워 보자고 의기 투합하며 서울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12명의 여자들 어쩌면 그리도 귀중한 친구들이었던지, 모두들 그 바쁜 여정을 보내면서 서로의 배려를 아끼지 않었고 모두 행복한 여행을 하도록 해준 친구들이었다.
진정으로 이렇게 훌륭한 여행을 하도록 주선해준 독일의 세 친구에게 감사를 보내며 멀리 미국서 동참해준 최 미자와 길주도 다음 여행에 만나길 기대해 본다.
11일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으로 여름철이면 세계 각국의 저명한 연주가들이 모여들어 성대한 음악제가 개최되고, 아직도 교회와 궁전등 바로크 건축의 걸작품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Salzburg에서 독일의 Frankfrut로 이동하는 여정을 끝으로 8박 9일의 동유럽 여행은 마지막 날이지만 여학생들 ( 분명 여고 시절의 수준이었음) 은 또다른 일정으로 오히려 들뜬 기분들이었다.
Frankfrut 중악역의 규모는 유럽에서의 기차 여행의 기대를 충분히 고조시켰고, Berlin으로 향하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독일의 푸른숲과 잘 정비된 가옥은 꼭 그림 같어서 고 선옥은 일부러 정부에서 정비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차멀미로 고생을 하던 박 미자도 table을 마주하고 앉어서 아주 기분 좋은 얼굴이 되어서 기차 여행을 만끽할 수 있었다.
천 주훈은 Amsterdam의 고객을 방문하는 관계로, 그리고 장 용웅과 김 성구는 우리와 함께 Berlin 관광에 합류하기로 해서 달리는 창밖 풍경을 배경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촬영을 해 보기도 하였다.
Berlin에서는 이 종건이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독일 맥주를 한잔 하면서 내일 일정을 점검하면서 동Berlin 방문의 흥분이 가시지 않는건 아마 우리의 입장이 남다른 탓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동유럽의 고고한 역사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품격있고,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옛 건축물을 만끽한 여행객들의 눈으로 대하는 Berlin의 첫인상은 별 흥분을 느낄수 없었다.
하지만 Kaiser-Wilhelm-Gedachtniskiche 교회를 마주친 순간 머릿속에서 자그만 돌맹이 들이 부딪치는 충격을 느꼈다.
이 교회는 전쟁의 비참함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붕괴된 모습 그대로 시내 한 복판에 보존되어 있었다. 원래 1894년 독일 초대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교회였는데, 제2차 대전에서 무참히 파괴되어 지금은 높이 63미터의 탑 잔해만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하듯 서 있었다.

일부 남어 있는 Berlin 장벽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들 있었지만 유독 우리들은 남다른 감회에 젖지 않을수 없었다.
베를린이 봉쇄되던 당시의 상황과 동베를린을 탈출하는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대하는 순간 신문에서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서 해걸을 하며 연명을 하는 북한 주민들의 기사가 생생하게 기억 되었다.

동베를린 슈프레 강에 떠 있는 박물관 섬에 있는 Pergamon Museum, Bode Museum등 동베를린에 있는 유적들을 관광하는 동안에도 마음의 동요는 진정되지 않었다.

다행히 이 종건이 예약해둔 호돌이 한정식 집에서 김치찌개와 불고기로 오랜만에 현지식에 식상한 뒤라 점심을 폭식한 탓에 느긋해 질수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관장님이 예약해둔 곳으로 모시는 식당 아주머니의 태도는 우리를 V.I.P. 대하듯 했고, 관장님이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가 아! 이 종건이구나! 하자 초라한 행색의 여행객들에게서 관장님을 종건이라고 부르는 여자들이 너무도 놀라운 나머지 동창이란 설명에 그만 자지러진 웃음을 터트리고 말었다.
정말 후한 대접에 우리 모두 넉넉해진 마음으로 동창 잘둔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들 흐뭇해 했다.
특히 현지식에 식상해 있던 박미자와 이미화는 영원히 이 종건을 못잊을 것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포식을 한 탓인지 Potsdam으로 달리는 한시간 남짓 바쁜 일정에 쫓기던 우리들은 모두를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1945년 Potsdam 트루만, 처칠, 스탈린 3거두가 회담을 열어서 제 2차 대전후의 대일 처리 방침을 표명한곳이고, 그들의 결정에 의해서 현재 우리나라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했다는 이곳은 브란덴 부르크 제후가 1745녀~47년에 걸쳐서 건축한 로코코 양식의 아름답고, 품위있는 산수시 궁전으로 지금은 호텔로 개조되어 있었고, 앞뜰의 호수는 너무도 평화스러워서 역사의 무상함 마저 느끼게 하였다.
이제 우리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어 있는데, 언제 우리 민족 50년의 아픔을 끝낼수 있을지 우울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저녁에 이 종건과 숭어 요리에 깃들인 독일 맥주를 들며 Berlin의 짧은 여정을 아쉬워 했지만 이 종건의 서울 입성시 11명의 여학생은 모두 황홀한 밤을 약속해 주었다.

<1945년 포츠담 회담 장소 >
장 용웅, 김 성구 남학생 두명을 Berlin에 남겨 두고 12명의 여학생들이 기차로 독일 북서부에 위치한 조용한 휴양도시이고, 한 명희가 살고 있는 Bad Zwischenahn 으로 이동을 했다.
기차에서 내린 순간 우리는 모두가 동화속의 나라로 빨려 들어온 느낌이었다.
가로등마다 아름다운 꼿들이 늘어져 있었으며 거리에는 아주 작고 예쁜 가게들이 관광객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언제나 삶이 힘들때는 우리가 꿈꾸던 그런 그림속 도시속에 담쟁이 덩굴이 감싼 대문을 들어서자 우리는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말었다.
그렇게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꾸미고 살까?
우리는 모두들 영화속에서 보던 아름다운 집과 한 명희의 안목과 부지런함, 그리고 벽을 장식하고 있는 섬세한 십자수의 작품들에 그만 넋을 놓고 말었다.
잘 정돈된 잔디밭 뒤로 숲을 지나야만 옆집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전통적인 옛 독일식 가옥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apple pie와 전통차를 마시며 내다 보는 호수가 아름다워서 모든 피로를 씻을 수 있었고, 반짝이는 햇살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우리는 호숫가 잔디에 누워서 마음껏 게으름을 부리고 싶었지만 바지런하기 그지 없는 한명희의 성화로 부근의 마을을 둘러 보았다.
명희가 근무하는 병원, 근처 묘목장, 그리고 아름다운 집들, 휴양지에 들어선 카지노, 교외에 있는 교회며 farmer's market등을 보면서 아름답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독일의 아름다운 휴양지를 마음껏 부러워 하기도 했다.
독일이라고 우리가 노래방을 빼 놓을 수는 없는일.
넓은 living room이 노래방이 되었고, 한명희의 갈고 닦은 노래 실력을 시작으로 여자들만의 party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남자 동창생들이 있어서 우리가 즐거웠다는 확신을 해 왔지만 그건 정말 기우였다.
잠옷 바람의 유부녀들만의 독일에서의 한밤의 party는 어떤 상상을 해도 부족함이 없는 party 였고, 누가 손만 들어도 우리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들 나오곤 했다.
절대 노래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사의 지시도 무시한 박정애의 현란한 주도로 유 정숙의 활약과 진 영애가 진목면을 발휘한 자리에서 우리는 밤이 깊어 가는줄도 모르고 그만 자지러지고들 있었다.
다음날 아침은 향긋한 커피에 빵집에서 갓 구워온 맛있는 독일빵과 샌드위치로 기품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유독 김치에 샌드위치를 고집하는 한국 아줌마들도 있었다.
기차로 한시간 남짓 떨어진 Bremen은 매우 깔끔하고 화사한 느낌을 주는 독일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잘 간직한 곳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밑에서부터 차례로 당나귀, 강아지, 고양이 닭의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는 Bremen의 음악대 동상은 "그림 동화'의 주무대가 된 메르헨시에 온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 주었지만 동상을 본 순간 언제나 동화의 나라는 상상속에서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시내로 걸어가는 길목에 있는 풍차를 지나 시청사가 있는 곳으로 가면 무척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고, 대성당과 거리 꽃가게들과 노천 카페와 상점들이 늘어져 있어서 우리는 모처럼 여행중에 갈구하던 shopping도 하며 노천 cafe에서 느긋하게 차도 한잔 즐길 수 있었다.
Bremen에서 Mainz로 가는 여정에는 미국의 이 길주와 한 명희가 Hamburug로 가서 18일 미국으로 갈 예정이어서 고선옥, 남영애, 박미자, 박정애, 유정숙, 이미화, 이석영, 진영애, 최혜원 그리고 나 이렇게 10명으로 단출한 식구가 되었다.
길주는 멀리서 동창 여행이라면 캐나다, 호주, 유럽까지 마다 않고, 어려운 schedule을 맞추어 가며 동참해 주는 열의가 너무도 고맙고 우리의 귀감이 되고는 한다.
기차 창밖으로는 독일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Rhein강가의 경치가 펼쳐지고 아름다운 성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황혼이 깃들기 시작하는 시간은 슬프기 까지 했다.
기차안에서 저녁으로 준비해 온 김밥 도시락을 펴 먹으며 우리에게는 친숙한 음식 냄새가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생소할까 걱정이 되어서 우리 모두 흡연실에 모여서 먹으며 바로 뒤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독일인의 눈치가 보이고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조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최 혜원이 예약해둔 Maintz Hilton Hotel은 창밖으로 Rhein 강이 흐르고 멀리 비추이는 다리며 불빛들이 매혹적이어서 짐만 내 동댕이 친채 우리를 밖으로 내 몰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주로 변방에 고색 창연한 Hotel에서 유숙을 했던 관계로 밤에 이렇게 Rhein 강변을 거닐다가 Maintz 시내를 방황을 하며 찬 밤 바람에 아랑곳 않고, 노천 cafe에서 ice cream을 먹으며 다니는 기분은 여행자의 감흥을 한껏 고취시켜 주었다.
15일 아침 오늘은 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떠나는 날이므로 새벽부터 일정을 서두르기로 했다.
최 혜원은 두 아들을 독일서 의대를 보내고 모두 결혼도 시켜서 정말 장한 어머니 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둘째 아들 정석이가 안내겸 해서 우리를 guide해 주기로 했다.
신혼의 정석군이 서울서 온 어머니 동창들을 위해서 그 귀중한 일요일을 우리의 안내자로 동행해준 성의가 너무도 고마웠고, 신통했다.
독일의 상징이기도 한 Rhein강 북쪽으로 많은 화물선들이 다니고 있었으며 풍경이 아름답고 잇달아 나타나는 옛성과 포도원을 비롯하여 하이네의 시로 유명한 로렐라이 바위등 가장 아름다운 이곳을 보지 못하고 독일을 떠난 남학생들은 아마 죽을 때 눈을 감지 못할거라는 걱정까지들 했고 혜원이의 초대를 너무도 흐뭇해 하기도 했다.
독일서도 상부 Rhein쪽은 다리를 볼 수 없는 점도 신기했다.
곳곳에 아름다운 휴양도시들과 민박집 앞에서 여유를 즐기는 노인들의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독일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거의 첫 번째 관광지로 꼽는 Heidelberg 성으로 향하는 마음은 흥분되기까지 했다.
1300년 경에 건축된 Heidelberg 성은 몇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400여년 동안 중, 개축을 반복하였고 르네상스풍의 성관과 중세풍 성새가 혼용되어 있었다. 입구 돌출부에서 바라보는 네카 강의 옛다리와 시내 전경이 한폭의 그림이었다.
지하에는 1751년에 만들어진 약 22만 리터의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술통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뭇 끌어 당기고 있었다.
Heidelberg는 '황태자의 첫 사랑'이라는 영화의 주요 무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도 독일의 황태자와 여종업원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전해오는 Zumzepel 이라는 맥주집에서 시원한 독일 맥주 한컵씩을 마셔 보려고 찾어 갔지만 오후 2시반이 넘은 시간이어서 문을 닫는 바람에 아쉬운 발걸음을 노천 cafe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많이 느끼고 즐긴 여행이었다.
돌아 오는 비행기속에서 화추어지는 뉴스 장면을 보며 밤12시 시계종이 울리면서 마술이 풀려서 아름다운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는 신데렐라의 신세로 돌아옴을 실감하지 않을수 없었고 곧 닥아올 추석 준비로 내일은 배추 김치를 담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지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또 다른 계획을 세워 보자고 의기 투합하며 서울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12명의 여자들 어쩌면 그리도 귀중한 친구들이었던지, 모두들 그 바쁜 여정을 보내면서 서로의 배려를 아끼지 않었고 모두 행복한 여행을 하도록 해준 친구들이었다.
진정으로 이렇게 훌륭한 여행을 하도록 주선해준 독일의 세 친구에게 감사를 보내며 멀리 미국서 동참해준 최 미자와 길주도 다음 여행에 만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