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불치의 병이지만 언젠가 치료약이나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가볍게 치유할 수 있는 그 때를 기다리며 죽기 전에 자기 몸을 냉동시켜 보관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져 수 십 년 혹은 수 백 년 후 다시 살아나서 그 때의 세상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2002년 9월 5일 근 20 시간에 걸쳐 공중과 육상을 내달려 미지의 땅 체코 푸라하의 바체라프(Svati Vacelave)광장에 떨어진 우리는 수 백 년 전 냉동에서 풀려 나온 고대인처럼 오관이 굳어버렸다. 그것은 놀라움이었다. 경탄이었고 충격이었다.
신시가지 즉 바체라프 광장은 13세기 경에 이루어졌다는 설명을 필요치 않게 약 2 키로에 걸친 양측에 지난 천년의 건축양식과 문화와 전통을 모두 보여주고 있었다. 15년이면 재건축을 해야하는 건설의 나라에서 온 우리는 도열해 있는 르네상스 양식에서부터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그리고 바로크 양식 등 온갖 건축기법을 동원해 만든 건물에 압도당했다. 단순히 건물 몇 채에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이 아니다. 천 년을 버틴 바닥석 위를 활기차게 걷는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잘 생겼다는데 누구의 이의도 없었던 체코의 선남 선녀들의 모습도 우리를 크게 놀래키는데 한 몫을 하였다.
바체라프 보다 3세기 전에 구축되었다는 구 시가지는 토키 눈이 되어 있던 우리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그 규모하며 아름다움하며. 우리는 그곳에서 모두 말을 잊었다. 아니 말이 필요 없었다.
매년 1억 명의 관광객이 온다는 프라하에는 신 구 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 시가지를 잇는 불바타강 위에 놓인 까르 교(Karluv Most)도 사람의 다리를 후들거리게 할 만큼 미모와 위용을 자랑했다. 다리 위 양쪽에 붙박이 된 예수의 고난 상을 위시한 각종 조각 작품만 둘러보는 데도 한 시간은 족히 필요했다.
프라하의 충격은 일주일 내내 이어진 중부유럽국가들이 준 문화충격의 서막에 불과하였다.
이번 여행의 중심지인 체코, 폴란드, 헝가리 및 오스트리아는 같은 문화권으로 동양이나 소위 선진서양 제국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
- 광장문화
중부유럽국가들은 모든 도시에 대소의 광장을 갖고 있다. 광장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서만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체코 프라하의 바체로프 광장, 폴란드 크라카우의 중앙광장,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페스트 광장 그리고 영웅광장,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역시 영웅광장은 그 규모가 엄청날 뿐 아니라 그 광장 좌우에 있는 건물들이 천 여 년에 걸친 건축사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어 그 나라 역사를 한 눈에 보여준다. 부다페스트나 빈의 경우에는 건물의 각 층을 별도의 건축양식으로 지어 한 건물이 1천 년의 건축역사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광장은 도시의 중심이요 문화의 중심이었다.
체코와 폴란드 그리고 헝가리의 경우 오랜 기간 사회주의체제 하에 있었고 1, 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이었으면서도 광장을 중심으로 한 문화유적이 원형대로 보관되어 있음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공원문화
그들은 어느 도시랄 것도 없이 모든 도시에 수많은 공원을 조성하고 있었다. 도시 속에 공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원 위에 도시가 있는 양상이었다. 우리나라 보다 훨씬 높은 위도 상에 있으면서도 그림 같은 잔디를 가진 공원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교외의 모든 땅을 초지화 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초지가 곧 인간과 가축의 양식을 만들어주는 어머니의 터(Eearth Mother)임을 그들은 일찍 깨달은 것이다.
공원문화의 극치는 비엔나의 귀족의 정원과 미라벨 정원 그리고 쉔브룬에서 극치를 이룬다.
- 성당(교회)문화
기독교의 원산지인 유럽국가들은 한결 같이 굳건한 믿음 속에 놀랄만한 성당이나 교회를 지었고 또 짓고 있다.
프라하의 롤레타 성당, 비투스 성당, 크라카우의 마리아 성당, 부다페스트의 마차시(Mattasy)성당, 비엔나의 미카엘 성당, 슈테판 성당 등은 그 규모와 예술성에 혀를 내두루지 않을 수 없다. 굳건한 믿음과 경건할 정도의 예술혼이 만들어낸 인간예술의 극치들이었다. 특히 종교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오랫동안 있었으면서도 마을마다 교회가 우뚝 서 있고 고색창연한 성당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요일 아침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타트라 산장에서 하루 밤을 유하고 폴란드로 가기 위해 농업국가인 슬로바키아를 관통하면서 그림 같은 농가와 농로 사이로 검은 전통의상을 입은 촌노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손을 잡고 교회로 향하던 모습을 여러 장면 보았다. 그들 생활이 얼마나 깊이 종교에 뿌리를 두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주거건축문화
중앙유럽국가에서 우리가 놀란 건 대도시의 건축문화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우리를 놀라고 부럽게 한 건 특히 시골의 농가를 중심으로 한 개인주거의 건축문화였다. 마침 폴란드를 방문 중 그곳 티비에서 한국특집을 보여주며 태풍에 휩쓸려간 시골집들을 비쳐주었다. 티비를 통해 풍지박산 된 농가의 잔해를 보며 우리 농가의 건축도 이제는 개선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 방문국들의 농가는 그 실용성이나 외양 등의 건축미에 있어서 최고 수준이었다. 우리가 우리들의 교외에서 어쩌다 보는 별장이라는 주택이 그들 농가의 평균주택 정도다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주거를 통해서 그들 국가에 도농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각 국의 농가가 많이 비슷하나 지붕의 모양이 체코가 가장 다양하며 슬로바키아, 폴란드 그리고 헝가리 순으로 단순화되고 있는 것이 흥미를 끈다.
- 미인문화
중부유럽 5개국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예술과 문화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들 나라의 시 외곽의 자연은 한결 같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자연파괴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고 모든 삶의 시설은 자연조화적이었다. 그들은 마을을 형성할 때 교회부터 지었고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한 신앙으로 거대한 성당을 짓고 보전하여 왔다. 그들은 몇 대 앞을 바라보며 건믈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였다. 음악과 미술을 즐겼으며 과학을 숭상하여 세계적인 음악가와 미술가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그런 자연주의 인본주의 그리고 문화주의 사상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선가 체코를 필두로 그 지역의 사람들이 남녀 구별 없이 세계 최고의 미남 미녀임에 우리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를 폴란드에 있는 인간도살장인 아우슈비츠를 통해 보았고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그들이 가꾼 공원과 도로와 건물 그리고 자연을 통해 보았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여행도 동반자가 성패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는데 일주일 여에 6개국을 관통해야하는 초인적 일정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사람도 아프지 않고 혼연일체가 되었음은 큰 행운이요 기쁨이었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푸른 다뉴브강>을 들으며 야밤에 함께 다뉴브강을 유람하고 황금소로를 이슬비를 맞으며 걸었고 까르 다리와 세치니 교를 건너 모차르트와 베토벤과 슈베르트와 요한 스트라우스와 브람스를 함께 만나 본 여행 동반자들에게 애정과 감사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