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도 없는 땅콩 너무 자주 내놓아 모두 물려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다가 오는 추석 친구들에게 보낼 마땅한 선물이 없어 여기 지난 주말 갓 볶아낸 땅콩 하나를 한가위 선물로 보낸다.
- 나는 추석 휴가동안 말레이지아, 싱가폴에 일이 있어 출장을 다녀와야 한다. 그러므로 혹시 답례한다고 선물꾸러미를 싸들고 천안에 와도 만날 수가 없다. 답례 안 하면 도저히 잠 들수 없는 친구들이 있다면 여기다 쪽지글 하나씩 붙이면 그건 받겠다.
-여기 자주 등장하는 '한 아무개'는 한건수이다. 그렇다고 내가 노상 한건수하고만 어울려 다닌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한 친구 사이이지 무슨 호모라든지 아니면 다른 이상한 관계가 아님을 확실하게 밝혀둔다.
-사대부고 16회 동창들 모두 온 가족이 모여 웃음꽃이 활짝피는 한가위가 되면 좋겠다.
낚시에 얽힌 에피소드
첫째 이야기 ‘낯 가리는 물고기’
낚시하면 오래 전에 본 미국 만화가 생각난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얘기다. 잔잔한 호수에서 두 사람이 낚시질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은 연신 고기를 낚아 올리는데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은 웬일인지 도무지 입질이 없어 옆 사람 낚시질 구경만 하고 있다. 그러다가 연방 붕어를 올리던 사람이 화장실에 간다. 옆 사람은 이때다 싶어 손 맛이라도 볼 요량으로 얼른 자리를 옮겨 앉는다. 그러자 물고기 한 마리가 가만히 얼굴을 내밀고 하는 말이 “방금 여기서 낚시하던 사람 어디 갔어요?”하고 묻고는 쏙 들어간다. 이 만화를 읽고 실성한 사람처럼 한참이나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래 전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 가운데 아주 친하게 지내는 한 아무개와 계룡 저수지로 밤낚시를 갔다. 그는 당시 S은행에 잘 나가는 행원이었고 강태공 저리 가라 할 만큼 낚시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였다. 거기 비하면 나는 왕 초보 낚시꾼이었다.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내 낚시에는 계속 입질을 해대는데 불과 5, 6미터 정도 떨어져 앉은 이 친구는 한가롭기 이를 데 없었다. 뿌옇게 동이 트고 물 안개가 뽀얗게 피어 오르는 새벽까지 붕어 낯짝도 구경 못하고, 비 맞은 중처럼 투덜대기만 하는 저수지 건너편 조사(釣士)들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나만 혼자 신났던 일이 생긴 거였다. 워낙 과묵한 친구라서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으나 좀 약이 올랐을 게다. 이 일은 내가 읽은 만화를 현실로 옮겨 놓은 기이한 체험이었다. 물 고기도 낯을 가리긴 가리나 보다.
둘째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모르는 사람은 낚시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낚시질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가하지 않다. 밤 낚시는 그 조그만 접의자에 앉아 꼬박 밤을 새우는 일이 그렇고, 밤 낚시가 아니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어야 하는 일이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버스가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낚시꾼들은 인정 많게 늦는 사람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그 많은 어구(漁具) 손질하는 것도 만만하지 않다. 막상 낚시 터에 자리를 잡고 앉아도 한가할 사이는 없다. 입질이 많으면 그 재미에 부산한 걸 잊지만, 입질이 없어도 찌만 바라다 보며 한가로이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 간간히 낚시를 꺼내서 미끼가 온전히 달려있는지 봐야 하고, 또 싱싱한 미끼로 갈아주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위 질문에 대한 정답은 낚시질 구경하는 사람이란다.
학교 졸업하고 첫번째 직장이었던 KIST에 다닐 때 일이다. 취미활동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동호회 만드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한 아무개의 영향을 받은 나는, 낚시질이나 배워보려고 낚싯대와 꼭 필요한 장구를 마련하여 낚시반에 들었다. 낚싯대라곤 한번도 손에 잡아 본 일이 없던 당시 내가 모시던 과장은, 거금을 들여 낚시 도구 일습을 사들이고 나와 동기 동창으로 낚시반에 가입했다. 그러나 정작 낚시에는 한번도 참여하지 않고 계속 빠졌다. 매번 늦잠을 자는 바람에 택시 타고 약속장소에 서둘러 나왔지만 벌써 버스가 출발했더라고, 의리 없는 사람들이라며 불평하였다.
한번은 버스가 수원쯤을 통과하는데 옆 차선에서 요란스레 경적을 울리며 앞지르는 차가 있었다. 쳐다보니 내가 모시던 과장이 손짓을 해 가며 버스를 세웠다. 그렇게 비싼 차비 들여 겨우 참여한 첫 번째 낚시였는데 그 날 따라 입질조차 없었다. 고삼 저수지였던가? 오전 내내 몸을 비틀며 버티던 이 양반이 술을 한잔 걸치고 더위 식힌다고 물로 뛰어드는 바람에 근처에 있던 낚시꾼들에게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그러고는 이놈의 낚시는 할게 못 된다고 장비를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는 그만두었다. 그 분은 지금 새천년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고 민주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한번 만나면 이 애기를 해서 같이 웃으려고 하는 데 정치에 바빠서 만날 틈이 없다. 천년은 그만두고 4년도 못되어 무슨 신당을 창당한다고 오늘 아침 신문에도 이름이 났다. 그러니 눈 코 뜰 새가 없겠지. 지금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키나 모르겠다. 아무튼 낚시란 부지런하지 못한 사람은 할 수 없다.
셋째 이야기 ‘특별한 김밥’
언젠가 밤낚시 가서 겪은 일이다. 나와 같은 엉터리 조사는 사실 낚시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더 재미있다. 그런데 낚시꾼들은 일단 낚시터에 도착하여 포인트를 찾아 앉기만 하면 털고 일어 설 때까지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얘기 소리에 물고기가 도망을 간다나, 그런 믿기지 않는 소리를 하면서. 그러니 나 혼자서라도 먹을 것 마실 것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진짜 꾼들이 자기 먹을 것보다 붕어 먹일 미끼 준비하는 동안에 말이다. 그리고 오가는 차 안에서는 모두 코를 골며 자는 게 일이다. 그러니 나는 원래 낚시 체질이 아니었나 보다.
그 날도 며칠 전부터 집에 얘기해서 김밥을 맛있게 준비했다. 혹시 월척이라도 한 수 올릴까 하는 허황된 꿈 속에 낚시터에 도착했다. 곧 날이 어두워져 카바이트에 물을 넣어 그 가스에 불을 켜고 입질을 기다리는 데, 그 날은 붕어들이 간식을 많이 먹었는지 도무지 입질이 없었다. 멍청하니 찌를 바라보다, 입이 째져라 하품하다, 졸리면 지렁이만 매달린 낚시 바늘 걷어 올려 먹음직한 놈으로 바꿔주다, 이 짓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집에서 싸온 김밥 생각이 났다. 주섬주섬 김밥을 꺼내 한 입에 넣고 씹는데 맛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벌써 상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쉰 맛은 아니었다. 또 하나를 꺼내 먹어 보았지만 역시 맛이 달랐다. 좀 씁쓰레한 것 같기도 하고 전에 먹어 본 일이 없는 뭔가 특별한 양념이 들어간 것 같기도 했다. 입맛을 의심하며 한 개를 더 먹었다. 역시 맛이 찜찜하였다. 왜 이럴까 생각하면서 칸델라 불빛에 비춰보니 아니나 다를까 무엇인가 붉으죽죽한 난생 처음 보는 게 그 안에 몇 가닥 들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미끼로 쓸 지렁이 들이 통에서 기어 나와 김밥에 속속들이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정말 희한한 김밥을 먹었다. 그러나 모두 토해 낼 수도 없는 일, 께름칙한 기분을 떨쳐 내려고 그 날 낚시는 영 망쳐 버렸다.
남들은 토룡 탕 먹으러 찾아도 다닌다는데 생 토룡 몇 마리 먹었다 해서 이상이야 생기랴 눙쳐보기도 했지만, 그 뒤론 김밥만 보면 지렁이 생각이 나서 한동안 먹지 못했다. 그러나 그 때 먹은 생 토룡 덕분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넷째 이야기 ‘낚시꾼의 거짓말’
낚시꾼들의 거짓말은 호가 나 있다. 잡았다 놓친 붕어는 모두 월척이요, 일단 잡은 고기는 죽어서도 자란다. 현장에서 6치짜리 붕어가 무럭무럭 자라서 며칠 지나면 마침내 9치짜리 준척이 되기도 한다. 초저녁에 세 대를 폈는데 어찌나 바쁜지 두 대는 접고 한 대로 쉴새 없이 붕어를 잡은 날도 부지기수다. 삐꾸가 터지려고 해서 잡았던 고기를 놓아준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낚시 다녀와서 어찌나 팔이 아픈지 일주일 동안 꼼짝 못한 경우도 많다. 내가 따라 나서지 못하는 날은 어떤 저수지든 고기 반 물 반이 된다. 그 정보에 곧 거길 가보면 그 많던 물고기는 어디론가 모두 사라진다. 낚싯대를 끌고 사라져 버린 물고기도 등장하고, 조금 씨알이 굵은 놈을 올리면 최소 한 시간은 씨름을 해야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 한 시간은 두 시간도 되고 세 시간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과장이다. 낚시 다녀 본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라고 부르던가? 그래서인지 누구도 이 낚시꾼들 거짓말을 탓하지 않는다. 낚시꾼 자신은 이런 거짓에 속지않고 적절히 할인해서 듣는다. 그러나 낚시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낚시꾼을 구매 담당자로 쓰면 어떨까? 자기가 부풀리기를 잘하니 남이 부풀린 것 깎는데 일가견이 있지 않을까? 중국 사람들이 과장을 잘 한다는데 중국 낚시꾼은 얼마나 더 부풀릴까. 그럼 중국 낚시꾼을 구매담당으로 써봐? 물건 값을 듬뿍 깎아 회사 이익에 크게 기여할지 모른다.
다섯째 이야기 ‘죽음을 부른 낚시’
예의 한 아무개와 청평 댐 아래 강으로 밤낚시를 갔다. 역시 꾼이라서 이 친구는 포인트를 잘 찾는다. 강 어귀로 돌출된 길다란 모래 반도 끝에 우리 둘은 자리를 잡았다. 피라미와 붕어 몇 수 올리고 난 뒤 캄캄한 밤이 되자 찌가 자꾸 없어졌다. 강 바닥이 고르지 않은 모양이라고 투덜대며 여러 번 찌를 조정하였다. 그렇게 열중해 있는 어느 순간, 갑자기 장화 속으로 철썩 물이 들어왔다. 처음 자리잡고 앉을 때 장화 바닥에 있던 물이 어떻게 장화를 넘어 들어올까 의아해서 불빛을 여기저기 비춰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모래반도는 온데 간데 없고 우리는 완전히 물 한 가운데 앉아서 태연히 낚시질을 했던 거였다. 우리가 낚시질에 정신 팔려 있던 동안 소리 소문 없이 수문을 열어 강물이 불었던가 보다. 오도 가도 못한 채 우리는 목청이 터지도록 배를 불러 겨우 위기를 모면하였다.
댐 아래서 낚시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아무 얘기 없이 수문을 열면 도대체 어쩌자는 얘기냐며 몹쓸 놈들이라고 생각하며 그 일을 곧 잊었다. 그런데 전직 장관을 지냈던 홍 모씨가 낚시하다가 물에 휩쓸려 실종된 사건이 몇 달 뒤 발생했다.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수난을 모면한 바로 그 청평 댐이었다. 우리가 일을 당했을 때 그걸 크게 문제 삼아 수문을 열 때는 사전에 경보를 내도록 했더라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떠든다고 누구 하나 들은 척이라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사건을 끝으로 나는 낚시에서 손을 뗐다. 낚시꾼들 과장법을 빌어 표현한다면, 젊은 나이에 낚시질에 목숨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어울림이 좋아 따라다닌 짧은 기간동안 낚시질에 얽힌 에피소드가 적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잊혀지지 않은 이런 저런 일화 몇 가지를 추려 보았다. 내 친구 한 아무개는 아마 모두 잊었을지도 모르는 아주 옛날 이야기이다. 옛날 얘기 자주하면 늙었다는 증거라는 데, 이렇게 오래 전 얘기가 자꾸 생각나는 걸 보니 나이 먹어가는 건 숨길 수 없나 보다.
(2002.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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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삼삼한 추석 땅콩 선물 맛있게 먹을게요. 다음엔 동남아 땅콩 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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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어난 일은 깜박깜박하고 옛 날 일은 생생한 게 노망의 첫 징후라는 미확인 보고가 있었다던데, 내가 그렇더라구요. 요즈음 일은 당초에 기억이 안나서 자신이 없는데요? 그 건 심항섭이 전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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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김밥이라? 미끼를 구더기로도 쓰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그래도 다행이었네! 출장 잘 다녀오시고 추석후의 땅콩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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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근이 땅콩들은 정말 병근이 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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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예정지인 동남아에도 추석에는 둥근달이 어김없이 뜰 터이니 기분은 낼수있을걸세 잘 다녀오고 재미있는 얘기 써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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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건수는 우리 사이트 보지도않나? 아무리 제 얘기를 써도 아무 말도 없다. 아니면 또 손가락 다쳐서 키보드를 못치나? 손가락 다쳐서 전화 못 걸은 때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손가락 성할 날이 없네, 그려. 이 친구 손가락으로 뭘 하길래 그리 자주 다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