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8월은 한달내내 비가 오고 하늘은 찌뿌듯 했다. 여름 한낮의 쨍쨍 쪼이는 햇볕을 보기가 힘들 정도였으며 급기야는 낙동강의 범람으로 김해를 비롯한 일대가 며칠간이나 가옥들이며 논밭등이 물에 잠기게 되어 텔레비젼에 비추인 여러 모습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물론 환경오염으로 인한 세계적인 기상이변의 결과로 우리나라에 한한 일이 아님은 알고 있으되 보수한지도 얼마 않되는 제방뚝 붕괴가 큰 원인임을 감안할때 간단히 天災라고만 말할수 없는 고민이 있다. 다행히 엊그제부터 침수지역의 물이 빠지기 시작하고 날씨도 어제부터는 쾌청하여 우리가 오늘 산행을 한다는데에 마음부담을 덜어 주었다.
황정환이가 어제 새 차를 뽑았다고 분당멤버들을 수서역주차장까지 모셔다 준다고 하여 새차를 타고 김진국, 이석영과 함께 8시에 모이는 장소로 나갔다. 오늘은 날씨가 후덥지근해서 그런지 모두들 뻐스밖에서 웅기중기 모여서들 있다.
둘째 손주 돌잔치 해주느라 지난달에는 빠졌었던 정숙자가 나와 있었고 지난달에 이어 정영경, 이성희, 박정애, 방유정이와 유정숙등 여자동문 고정멤버의 얼굴을 모두 볼수 있었다. 이향숙, 이미화, 진영애, 김풍자, 유정순등 나올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얼굴들이 오늘은 않보인다.
꺽정이회장과 박효범, 권영직은 15분전부터 일찌감치 나와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었다고 하며 항상 부지런한 김윤종, 송인식, 민일홍, 김상건, 이상훈, 이재상이도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김수관, 정만호, 김용호도 최근 눈에 띄게 일찍 나온다. 15분쯤해서 장용웅이가 나타나니 모두 23명의 식구가 된다.
지난 한달여 부친 병간호로 수고하던 정태영이의 밝은 얼굴을 이번에는 볼수 있으려니 기대했었는데 끝내 나오지않아 몹시 궁금하다. 통상 기다리는 시간을 5분이나 초과하여 혹시나 하고 기다렸으나 강기종이도, 신해순도 이승희도 늦게들 여름휴가들을 갔는지 이번에는 한달을 건너 뛰는것 같다.
앞의 여학생들은 둘씩들 앉아서들 가고 뒷쪽의 남학생들은 여유있는 좌석을 활용하여 혼자서들 넓직하게 자리를 잡고 간다. 그래도 할 얘기들은 다하고 간다.
복정 네거리를 지났다 싶었는데 팔당대교를 지나고 그동안 많이 내린 비로 넓어진 것같은 양수리 강옆을 지난다. 수상스키를 즐기는 멋진 모습이 저쪽으로 보이며 부쩍 더 많아졌다 싶은 음식점이며 모텔들을 스친다.
다시 길은 경춘선으로 꼬부라져 들어가 서울 떠난지 꼭 1시간만인 9시20분에 대성휴게소에서 잠간 쉰다. 김수관얘기로 이곳이 서울과 춘천의 딱 한가운데란다.
다시 9시30분 출발.
10월 둘째 일요일의 선농축제를 잘 치루기 위하여 김진국회장이 동기회에서 100만원을 지원하기로 확정했음을 밝히며 추진위원장으로 박정애에게 수고하여줄 것을 부탁한다. 몇번의 고사이후 겨우 수락을 하여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는다.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어떤 일이든간에 추진하는 사람은 애로가 있게 마련이다. 추진하는 사람의 수고를 생각해서 모두들 열심히 따라야 할 일이다. 합창단의 이름도 1차로 밝힌다. 오늘 참석한 모두가 합창단 멤버가 된다.
노래하면 나도 박자며 음정이 엉망이지만 그게 문제일까 싶다. 참가에 의미를 두자는 꾸베르탕의 말을 빌것도 없다. 앞으로 추가 멤버를 구축할 계획이란다.
꺽정이회장도 이번 축전에는 등산상도 있으니 한번 타보잔다. 그 일환으로 내달의 등산은 왕십리캠퍼스와 합동으로 이루어진단다. 의욕찬 이런 계획들은 모두 좋은 것같다. 자칫 나른해지고 뒤쳐지는 기분을 느낄수 있는 나이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우리가 아닌가?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활력소가 될수 있겠다.
춘천을 지나 꼬부꼬불한 길을 따라올라가 10시50분경 뻐스가 정차한 곳은 화천군 소재의 배후령마루턱이다. 행정구역으로는 화천군에 소재하지만 춘천시와는 경계가 되는 곳이다.
이곳이 600 미터의 고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봉산높이가 779 미터니까 179 미터만 올라가면 정상에 닿는게 아닌가? 그래도 1봉까지는 제법 가파르다. 15분을 조금 지났을까, 벌써 1봉이란다. 다시 내려가다가 조금 올라가니 2봉. 11시30분이다.
3봉과 4봉을 올라갈때에는 쇠줄도 잡고 올라간다.
12시쯤 4봉에 올라가 산위로 올라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내려다보니 서쪽으로 소양강호가 자그마하게 보인다. 29억톤의 저수용량을 갖고있으면서 홍수조절능력이 10 억톤이나 되는 커다란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자그마한 "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내자신을 돌아보면서 혼자 피식 웃는다. 저 호수를 만들기위하여 댐을 만드느라 고생했을 60년대후반과 70년대초의 여러사람의 노고가 생각난다. 그 사람들의 노고에 의해서 우리나라 초유의 이 치수,이수의 다목적댐이 만들어진 것이다.
눈을 돌려 동쪽을 내려다본다. 옆에 있었던 민일홍이가 저기가 화천의 오음리라고 알으켜 준다. 60년대후반과 70년대초반의 파월국군 훈련소로 유명한 곳이며 자신도 월남에 파병되기전에 저곳에 얼마간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보니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동쪽과 서쪽이 모두 동시대에 한창 많은 사람들로 붐비며 바뻤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면서 나도 그 시절추억에 잠시 젖어든다.
10분이나 채 갔을까? 5봉이다. 779 미터의 정상을 표시하는 팻말이 있는 일명 비로봉이다.
이곳부터 청평사까지는 내려가는 길이다. 이번 산행은 이곳부터 내려가는 코스가 몇개의 장애물(?)이 있는 진정한 산행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경사가 비교적 급한편이다.
첫번째 장애물코스는 홈통바위 (일명 구멍바위)이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만한 홈통을 쇠줄을 잡고 내려가는 코스이다. 맨 선두에 김윤종이가 유유하게 통과하길래 쉬운 코스인가 했더니 발 딛는곳이 미끄러운게 더 위험스럽다. 조심스럽게들 통과하고 조금 더 내려오니 넓은 마당바위이다.
12시 30분이다. 배도 출출하고 좁은 홈통도 패스한걸 자축할 겸 과일과 김밥및 샌드위치등으로 편안하게들 앉아 간식을 든다. 5년간 숙성시켰다는 오갑피주를 민일홍이가 한병 내놓고 냉장도에 급속 냉각시켰다는 술을 이재상이가 내놓는다.
12시50분쯤 일어나서 내려 오다보니 청평사 가는 길이 두갈래로 나뉘어진다. 천단과 해탈이다.
등산객들의 얘기는 해탈쪽이 좀 쉽단다. 해탈한다는게 쉬울 것인가?하고 망설이며 꺽정이회장의 지시를 받기위해 잠시 기다린다. 천단쪽으로 가란다. 모두들 왼쪽의 해탈하는 길을 포기하고 천단으로 직진이다. 이때부터 대여섯개의 쇠줄타기코스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쇠줄은 꽉잡고 두발은 바위에 확실하게 붙이고 다음 발 댈곳을 정해서 대고 내려가란다. 선배의 말은 항상 쉽다. 그러나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선배의 도움이 필요하다. 꺽정이회장, 김윤종, 이상훈, 김상건등의 도움으로 모두들 안전하게 통과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올라갈 때 본 두개의 진혼비가 그때야 생각난다. 쇠줄이 없었을때 사고가 났던건 아닐까?
바위위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소나무들의 꿋꿋하고 끈질긴 삶의 모습도 무언가 생각하게 한다.
충분한 수분이 있었겠는가? 때론 얼마나 모진 바람과 싸워야 했던 것일 겄인가? 어느곳은 소나무에 쇠줄을 걸어 놓은곳도 있다. 매일 수백명이 자기가 살려고 잡아다녔을 터인데.....
2시30분에 청평사에 내려온다. 고려 광종때 창건된 절이며 6.25때 소실되어 지금은 한창 새로 짓느라고 바쁘다. 광종이라고 하면 왕건의 세째부인의 둘째아들이 아닌가? 아버지 왕건이 죽고나서 이복형인 혜종과 친형인 정종이 모두들 일찍 죽어 천신만고끝에 고려 네번째왕이 되어 고려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사람이다. 요새 연속극의 소태자이다.
절옆에는 800년이 되었다는 주목이 서있다. 비록 줄기속은 비어있어 시멘트로 수술은 받았지만 살아천년 죽어천년의 주목나무 위상이 아직은 남아있다. 바로 밑에는 오봉산이 비추인다는 影池가 있지만 금붕어와 연꽃으로 차있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은 연인들의 좋은 데이트코스이다. 소양강을 배로 건너와서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은 모두 옆의 시원한 계곡물에 그동안 수고를 해준 발을 담그고 피로를 푼다.
발이 시원하니 온몸이 모두 시원해진다.
3시30분.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아까 산에서 내려다 보았던 오음리를 통과하여 춘천으로 온다. 최근에 새로 난 길이란다. 전에는 이곳 청평사를 오기 위하여는 소양강의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는데 이제는 이길로 배를 타지않고도 갈수 있는 것이다.
춘천 막국수집에는 10 몇년전에 황정환이를 모셨다가 현재는 한미은행 춘천지점에 지점장으로 있는 분이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한다고 기다리고 있다. 청떡(전병떡의 이곳 이름인데 김치를 밀가루반죽으로 싸은 것이다), 빈대떡, 수육과 함께 동동주를 마시고 춘천막국수로 맛있게 점심겸 저녁식사를 하니 5시10분이다. 오래전의 상사가 온다고 그 친구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일요일저녁을 할애한 그분도 그분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덕을 쌓은 우리 황정환이의 후덕했음도 미루어 짐작케 하며 아울러 즐거운 식사시간이 될수 있도록 시간과 돈을 써준 그분께도 우리 모두의 고마운 마음을 이자리를 빌어 전한다.
벌써 5시10분이다. 버스를 탄다. 김윤종이가 지난주에 다녀온 킬리만자로의 여정을 소개한다.
홍콩에서 방콕으로 아부다비로 그리고 나이로비로 해서 목적지 까지만도 30여시간, 그리고 지루할 정도의 무미건조 하다면 그러할 등정스케쥴을 실감있게 얘기해준다. 장하게 보이기도 하고 부럽게도 보인다.
정영경이가 아프리카의 사파리여행도 설명한다. 숫사자 한마리가 몇마리의 암컷과 새끼들을 거니고 다니는 모습이며 나무호텔밑에서 코끼가족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들, 마사이족방 에서의 특이한 체험등를 소개했다.
길이 너무 밀린다. 허긴 2시에 춘천에서 떠나면 서울까지 2시간, 3시출발엔 3시간, ......의 얘기가 있으니 느긋하게 맘먹을 수밖에 없지. 이러한 지루함을 달래 주기 위하여 이재상과 박정애의 환상적인 두콤비가 우리들의 노래방 쑈를 개최한다.
여행담과 자체쇼로 지루함을 달래가면서 수서역에 도착한 시각은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그동안 겪여보지 못했던 쇠줄타기 산행의 즐거움을 맛볼수 있었던 즐거운 산행의 하루였다.
황정환이가 어제 새 차를 뽑았다고 분당멤버들을 수서역주차장까지 모셔다 준다고 하여 새차를 타고 김진국, 이석영과 함께 8시에 모이는 장소로 나갔다. 오늘은 날씨가 후덥지근해서 그런지 모두들 뻐스밖에서 웅기중기 모여서들 있다.
둘째 손주 돌잔치 해주느라 지난달에는 빠졌었던 정숙자가 나와 있었고 지난달에 이어 정영경, 이성희, 박정애, 방유정이와 유정숙등 여자동문 고정멤버의 얼굴을 모두 볼수 있었다. 이향숙, 이미화, 진영애, 김풍자, 유정순등 나올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얼굴들이 오늘은 않보인다.
꺽정이회장과 박효범, 권영직은 15분전부터 일찌감치 나와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었다고 하며 항상 부지런한 김윤종, 송인식, 민일홍, 김상건, 이상훈, 이재상이도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김수관, 정만호, 김용호도 최근 눈에 띄게 일찍 나온다. 15분쯤해서 장용웅이가 나타나니 모두 23명의 식구가 된다.
지난 한달여 부친 병간호로 수고하던 정태영이의 밝은 얼굴을 이번에는 볼수 있으려니 기대했었는데 끝내 나오지않아 몹시 궁금하다. 통상 기다리는 시간을 5분이나 초과하여 혹시나 하고 기다렸으나 강기종이도, 신해순도 이승희도 늦게들 여름휴가들을 갔는지 이번에는 한달을 건너 뛰는것 같다.
앞의 여학생들은 둘씩들 앉아서들 가고 뒷쪽의 남학생들은 여유있는 좌석을 활용하여 혼자서들 넓직하게 자리를 잡고 간다. 그래도 할 얘기들은 다하고 간다.
복정 네거리를 지났다 싶었는데 팔당대교를 지나고 그동안 많이 내린 비로 넓어진 것같은 양수리 강옆을 지난다. 수상스키를 즐기는 멋진 모습이 저쪽으로 보이며 부쩍 더 많아졌다 싶은 음식점이며 모텔들을 스친다.
다시 길은 경춘선으로 꼬부라져 들어가 서울 떠난지 꼭 1시간만인 9시20분에 대성휴게소에서 잠간 쉰다. 김수관얘기로 이곳이 서울과 춘천의 딱 한가운데란다.
다시 9시30분 출발.
10월 둘째 일요일의 선농축제를 잘 치루기 위하여 김진국회장이 동기회에서 100만원을 지원하기로 확정했음을 밝히며 추진위원장으로 박정애에게 수고하여줄 것을 부탁한다. 몇번의 고사이후 겨우 수락을 하여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는다.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어떤 일이든간에 추진하는 사람은 애로가 있게 마련이다. 추진하는 사람의 수고를 생각해서 모두들 열심히 따라야 할 일이다. 합창단의 이름도 1차로 밝힌다. 오늘 참석한 모두가 합창단 멤버가 된다.
노래하면 나도 박자며 음정이 엉망이지만 그게 문제일까 싶다. 참가에 의미를 두자는 꾸베르탕의 말을 빌것도 없다. 앞으로 추가 멤버를 구축할 계획이란다.
꺽정이회장도 이번 축전에는 등산상도 있으니 한번 타보잔다. 그 일환으로 내달의 등산은 왕십리캠퍼스와 합동으로 이루어진단다. 의욕찬 이런 계획들은 모두 좋은 것같다. 자칫 나른해지고 뒤쳐지는 기분을 느낄수 있는 나이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우리가 아닌가?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활력소가 될수 있겠다.
춘천을 지나 꼬부꼬불한 길을 따라올라가 10시50분경 뻐스가 정차한 곳은 화천군 소재의 배후령마루턱이다. 행정구역으로는 화천군에 소재하지만 춘천시와는 경계가 되는 곳이다.
이곳이 600 미터의 고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봉산높이가 779 미터니까 179 미터만 올라가면 정상에 닿는게 아닌가? 그래도 1봉까지는 제법 가파르다. 15분을 조금 지났을까, 벌써 1봉이란다. 다시 내려가다가 조금 올라가니 2봉. 11시30분이다.
3봉과 4봉을 올라갈때에는 쇠줄도 잡고 올라간다.
12시쯤 4봉에 올라가 산위로 올라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내려다보니 서쪽으로 소양강호가 자그마하게 보인다. 29억톤의 저수용량을 갖고있으면서 홍수조절능력이 10 억톤이나 되는 커다란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자그마한 "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내자신을 돌아보면서 혼자 피식 웃는다. 저 호수를 만들기위하여 댐을 만드느라 고생했을 60년대후반과 70년대초의 여러사람의 노고가 생각난다. 그 사람들의 노고에 의해서 우리나라 초유의 이 치수,이수의 다목적댐이 만들어진 것이다.
눈을 돌려 동쪽을 내려다본다. 옆에 있었던 민일홍이가 저기가 화천의 오음리라고 알으켜 준다. 60년대후반과 70년대초반의 파월국군 훈련소로 유명한 곳이며 자신도 월남에 파병되기전에 저곳에 얼마간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보니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동쪽과 서쪽이 모두 동시대에 한창 많은 사람들로 붐비며 바뻤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면서 나도 그 시절추억에 잠시 젖어든다.
10분이나 채 갔을까? 5봉이다. 779 미터의 정상을 표시하는 팻말이 있는 일명 비로봉이다.
이곳부터 청평사까지는 내려가는 길이다. 이번 산행은 이곳부터 내려가는 코스가 몇개의 장애물(?)이 있는 진정한 산행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경사가 비교적 급한편이다.
첫번째 장애물코스는 홈통바위 (일명 구멍바위)이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만한 홈통을 쇠줄을 잡고 내려가는 코스이다. 맨 선두에 김윤종이가 유유하게 통과하길래 쉬운 코스인가 했더니 발 딛는곳이 미끄러운게 더 위험스럽다. 조심스럽게들 통과하고 조금 더 내려오니 넓은 마당바위이다.
12시 30분이다. 배도 출출하고 좁은 홈통도 패스한걸 자축할 겸 과일과 김밥및 샌드위치등으로 편안하게들 앉아 간식을 든다. 5년간 숙성시켰다는 오갑피주를 민일홍이가 한병 내놓고 냉장도에 급속 냉각시켰다는 술을 이재상이가 내놓는다.
12시50분쯤 일어나서 내려 오다보니 청평사 가는 길이 두갈래로 나뉘어진다. 천단과 해탈이다.
등산객들의 얘기는 해탈쪽이 좀 쉽단다. 해탈한다는게 쉬울 것인가?하고 망설이며 꺽정이회장의 지시를 받기위해 잠시 기다린다. 천단쪽으로 가란다. 모두들 왼쪽의 해탈하는 길을 포기하고 천단으로 직진이다. 이때부터 대여섯개의 쇠줄타기코스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쇠줄은 꽉잡고 두발은 바위에 확실하게 붙이고 다음 발 댈곳을 정해서 대고 내려가란다. 선배의 말은 항상 쉽다. 그러나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선배의 도움이 필요하다. 꺽정이회장, 김윤종, 이상훈, 김상건등의 도움으로 모두들 안전하게 통과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올라갈 때 본 두개의 진혼비가 그때야 생각난다. 쇠줄이 없었을때 사고가 났던건 아닐까?
바위위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소나무들의 꿋꿋하고 끈질긴 삶의 모습도 무언가 생각하게 한다.
충분한 수분이 있었겠는가? 때론 얼마나 모진 바람과 싸워야 했던 것일 겄인가? 어느곳은 소나무에 쇠줄을 걸어 놓은곳도 있다. 매일 수백명이 자기가 살려고 잡아다녔을 터인데.....
2시30분에 청평사에 내려온다. 고려 광종때 창건된 절이며 6.25때 소실되어 지금은 한창 새로 짓느라고 바쁘다. 광종이라고 하면 왕건의 세째부인의 둘째아들이 아닌가? 아버지 왕건이 죽고나서 이복형인 혜종과 친형인 정종이 모두들 일찍 죽어 천신만고끝에 고려 네번째왕이 되어 고려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사람이다. 요새 연속극의 소태자이다.
절옆에는 800년이 되었다는 주목이 서있다. 비록 줄기속은 비어있어 시멘트로 수술은 받았지만 살아천년 죽어천년의 주목나무 위상이 아직은 남아있다. 바로 밑에는 오봉산이 비추인다는 影池가 있지만 금붕어와 연꽃으로 차있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은 연인들의 좋은 데이트코스이다. 소양강을 배로 건너와서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은 모두 옆의 시원한 계곡물에 그동안 수고를 해준 발을 담그고 피로를 푼다.
발이 시원하니 온몸이 모두 시원해진다.
3시30분.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아까 산에서 내려다 보았던 오음리를 통과하여 춘천으로 온다. 최근에 새로 난 길이란다. 전에는 이곳 청평사를 오기 위하여는 소양강의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는데 이제는 이길로 배를 타지않고도 갈수 있는 것이다.
춘천 막국수집에는 10 몇년전에 황정환이를 모셨다가 현재는 한미은행 춘천지점에 지점장으로 있는 분이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한다고 기다리고 있다. 청떡(전병떡의 이곳 이름인데 김치를 밀가루반죽으로 싸은 것이다), 빈대떡, 수육과 함께 동동주를 마시고 춘천막국수로 맛있게 점심겸 저녁식사를 하니 5시10분이다. 오래전의 상사가 온다고 그 친구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일요일저녁을 할애한 그분도 그분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덕을 쌓은 우리 황정환이의 후덕했음도 미루어 짐작케 하며 아울러 즐거운 식사시간이 될수 있도록 시간과 돈을 써준 그분께도 우리 모두의 고마운 마음을 이자리를 빌어 전한다.
벌써 5시10분이다. 버스를 탄다. 김윤종이가 지난주에 다녀온 킬리만자로의 여정을 소개한다.
홍콩에서 방콕으로 아부다비로 그리고 나이로비로 해서 목적지 까지만도 30여시간, 그리고 지루할 정도의 무미건조 하다면 그러할 등정스케쥴을 실감있게 얘기해준다. 장하게 보이기도 하고 부럽게도 보인다.
정영경이가 아프리카의 사파리여행도 설명한다. 숫사자 한마리가 몇마리의 암컷과 새끼들을 거니고 다니는 모습이며 나무호텔밑에서 코끼가족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들, 마사이족방 에서의 특이한 체험등를 소개했다.
길이 너무 밀린다. 허긴 2시에 춘천에서 떠나면 서울까지 2시간, 3시출발엔 3시간, ......의 얘기가 있으니 느긋하게 맘먹을 수밖에 없지. 이러한 지루함을 달래 주기 위하여 이재상과 박정애의 환상적인 두콤비가 우리들의 노래방 쑈를 개최한다.
여행담과 자체쇼로 지루함을 달래가면서 수서역에 도착한 시각은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그동안 겪여보지 못했던 쇠줄타기 산행의 즐거움을 맛볼수 있었던 즐거운 산행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