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World Cup을 통해서 우리는 축구가 단순한 운동시합이 아니라 국가 또는 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한판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 형태의 국가간 전쟁임을 알았다. 전쟁이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만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축구는 발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도 최대한 사용해야 하고 헐리우드 액션도 최대한 사용해야 하며 때론 행패도 부려야 하고 위협적 행동도 최대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심판의 눈에 띠지 안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전쟁과 다른 것은 최소한의 스포츠성을 유지하기 위한 몇 가지 규칙이 있고 심판이 있어서 이러한 수단과 방법들이 어느 한계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점이다. 만약에 심판이 없다면 축구는 바로 서로 상대를 때려잡는 전쟁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온 세계가 그렇게 미친 듯 열광을 하면서 승리를 추구하는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World Cup은 세계스포츠대회가 아니라 스포츠 형태를 갖춘 세계대전(World War)인 것이다. 더구나 매력적인 점은 공평성이다. 미국이나 소련이나 중국 같은 대국도 벨지움 같이 콩알만한 나라도 모두 똑 같은 영토(운동장의 반쪽)와 똑 같은 전사(11명)를 가지고 승부를 겨루어야 하니 이 얼마나 공평한 전쟁인가. 이런 전쟁에서 우리 나라가 내노라 하는 나라들을 물리쳤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더구나 우리의 영토를 잘 지킨 것은 물론이고 남의 영토를 쳐들어가 누비면서 골을 뽑아내서 승리한 공격의 승리를 일궈냈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역사에 이런 승리감을 맛 본 순간이 과연 있었던가. 고작해야 임란 때 이순신 장군의 노량/한산 대첩이나 고구려의 안시성 대첩 일 것이나 이는 빗장 수비의 승리였고 결국은 0 : 0 무승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광복의 기쁨은 우리 덕에 깨지고도 16강에 오른 미국의 겸연쩍은 기쁨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2002년 6월 18일은 정말로 대단한 날 이었다. 그날의 그 기쁨은 우리 한민족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 몽골 족의 위대한 영광이 재현되는 날이었다. 히딩 칸(본명: 히딩크)이 이끄는 태극 전사들이 저 로마제국을 완벽하게 제압한 것이었다. 그 옛날 징기스칸이 이끄는 몽골 기마 전사들은 숏다리 몽고말을 타고 Multi & Set Play 전법과 빠른 기동력으로 서구를 제패했고 오늘날 히딩칸이 이끄는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난 태극 전사들은 숏다리 만으로 그 때와 똑 같이 Multi & Set Play전법과 빠른 기동력으로 로마제국의 철 기병들을 제압한 것이었다. 그때도 당한 서구인들은 몽고의 위대성을 인정하기는커녕 반대로 야만족으로 폄하 했었고 지금도 당한 로마인들은 우리의 위대성을 인정하기는커녕 심판이 어쨋다는 둥 안정환이 어쨋다는 둥 한국 축구는 동네축구라는 둥 폄하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으면 그리 하였겠냐 하고 생각하면 이해도 가고 측은스럽기도 하지마는 한편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 보았으면 그다지도 자존심 상해하는가 하고 생각해보면 괘씸도 하고 일면 그 동안 그렇게 우습게 보였던 우리 모습을 반성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02년 6월 22일은 또 하나의 사건으로 세계가 뒤집힌 날이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이순신 장군의 후예인 태극함대의 정신력과 지혜에 의해서 침몰해 버린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협에서 저 막강하고 기세 등등했던 일본 함대를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소수함대로 무찔러버린 노량대첩이 재현된 것이었다. 그 동안 지칠 대로 지쳐버린 우리 함대는 기세 등등한 무적함대를 전 후반과 연장전까지 물고 늘어지고 몰아 부치고 해서 결국은 승부차기란 급류 해협으로 몰고 가서 초조함으로 제정신이 아닌 그들을 침몰시켜 버린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골대 신이 우리편을 두 번이나(한번은 강슛을 잡고 뒤로 골대 속으로 넘어지는 이운재를 뒤에서 바쳐주었고 한번은 상대의 또 다른 강슛을 직접 내 차준 것) 결정적으로 도와준 행운이 따라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행운이 왔을 때 그 것을 붙잡는 것도 준비된 실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몇 일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예측도 기대도 못했던 이런 승리가 도대체 어떻게 갑자기 우리 앞에 밀어닥친 것일까.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잔디 축구장 하나 없었고 일반 대중에게 축구라면 고작 고수 부지에서 벌어지는 조기 축구 정도로 알고 있었던 것이 우리 나라가 아니었던가. 우리 애국가 가사처럼 이 땅의 하느님이 보우하사 이런 일 생긴 것일까. 우리 모두 이제는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세계적 업적과 기막힌 행운을 잘 소화하면 우리 나라가 개도국의 탈을 벗고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확실한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히딩칸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영웅이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단지 우리 태극전사들이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내면 깊숙한 곳에 잠재해 있는 능력을 일 깨워 준 것뿐이라고. 물론 맞는 말임을 우리 모두는 이제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의 겸양 또한 우리는 안다. 바로 이런 겸양과 경영 능력이 영웅/구세주의 필요충분 조건이란 것을 지금 우리는 또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굴러온 돌이다. 굴러온 돌이 몇 천년 동안 한자리에 박혀 있던 돌들을 뽑아내고 흔들어 놓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이다. 그는 서쪽 먼 곳에서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를 구해냈다. 공자도 석가도 달마도 예수도 모두 우리에겐 서 쪽에서 와서 우리를 구원했다. 그가 일궈낸 16강이나 8강이나 4강이나 어쩌면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깨우쳐 준 공학적이고 과학적인 축구도 어쩌면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큰 것은 우리 내면에 신성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게 한 것이다. 세계 8강 4강은 신성이 없이는 일궈낼 수가 없는 그런 것이기에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온 국민 모두가 미치게 좋아할 만한 엄청난 기쁨도 있으며 그것은 함께 나눌수록 더더욱 커지고 모두를 신명나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국민 모두가 함께 모여서 서로 나눌 것은 슬픔과 고통 내 지는 울분밖에는 없는 암울한 삶만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는 이를 통해서 세상을 어둡게만 보고 부정적 내지는 비관적으로만 보는 자세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또 다른 크고 중요한 것은 조직에서 지도자나 관리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쳐 준 것이다. 교육과 배움과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쳐 준 것이다. 꼴지 수준에서 자포 자기 하면서 막가파 식 또는 그냥 그런 대로 살아가던 학생을 일년 여 만에 세계 최고의 우등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국가관리나 기업관리나 나아가서는 가정관리까지도 무슨 다를 것이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히딩칸이 이끄는 태극전사들이 일궈낸 영광스러운 세계 16강 8강 그리고 4강의 위업을 즐기기만 할 것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들 모두의 차례다. 다시는 없을 이번 기회에 그 속에 숨겨진 깊은 교훈들을 파헤쳐 내서 각자 배우고 닦아서 우리 것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가 축구에서 뿐만이 아니라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사회문화에서도 선진 대열에 진입하도록 저 태극전사들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할 차례가 아니겠는가. 마침 세계적 정세도 축구에서처럼 우리에게 운 때까지도 맞아들고 있으니 정말 절호의 기회라 아니할 수가 없다. 세계적으로 볼 때 선진국 진입 팃켓도 월드컵처럼 아시아에는 매우 인색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 땅 덩이와 인구 측면에서 보면 가장 거대한 대륙인 아시아에 단 한 장뿐이었고 그것도 그 동안 일본의 독차지가 아니었던가. 일등석이란 원래 자리가 한정되어 있어 거기를 차지하려면 누구인가를 대체해야 하는데 마침 요즘 일본이 여러 가지로 뭔가 잘 안 되는 추세이니 이 기회가 바로 일본을 대신해서 우리가 선진대열에 들어서기 위해서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이제 세계 16강의 간절한 소망은 이미 그 이상을 달성했다. 이제는 대한민국 국가감독으로서의 16대 대통령을 히딩칸 같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절감해야 한다. 그리고 온 국민은 태극전사의 마음과 자세를 본 받아야 한다. 그러면 선진국으로 탈바꿈 하는 신화도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다. (다른 싸이트에 있는 것을 옮겨 보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