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리가 16강에 들더니, 엊저녁에는 이태리를 물리치고 8강에 올랐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응원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제는 4백만 명이 거리에 나와서 응원을 했다고 한다. 일제히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텔레비젼 화면으로 시청 앞에서 세종로에 이르는 붉은 인파를 보며 나는 전율했다. 이번에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감독의 작전과 선수들의 기량의 결과이겠지만, 거기에 더하여 모든 국민의 하나된 응원이 힘이 보태졌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많은 사람들의 뜻이 하나로 모이면 놀라운 능력이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수로부인 이야기가 그것이다. <신라 성덕왕때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길에 갑자기 해룡(海龍)이 나타나 그의 아내 수로부인을 바다로 끌고 들어갔다. 공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중 한 노인이 말하되 "옛 말에 뭇 사람의 입김은 쇠도 녹인다 했으니, 용인들 어찌 이를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경내(境內)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치면 나타나리라"고 하여 그렇게 했더니 과연 나타났다 한다. >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치면 동해바다의 용도 꼼짝 못하니 어찌 수백만의 붉은 인파가 한 목소리로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데 승리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도대체 [무엇]이 온 국민을 그토록 하나로 묶어 열광하게 한 것일까 하는 점이다. 어떻게 그런 놀라운 국민적 결집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축구란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의 눈과 귀를 흡인하는 것일까? 따져보면 아주 간단한 게임이 아닌가? 11명씩 편을 갈라서 공을 손을 쓰지 않고 상대편 골에 넣으면 이기는 것인데, 그 간단한 게임에 무슨 신비한 마력이라도 있는 것인가? 물론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 우선 그들은 소위 [몸값]이 대단하다. 수십억 수백억대의 몸값을 가진 최고 스타들이 모였고, 그들이 조그만 볼 하나에 온갖 힘과 정신과 기량을 모아서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몰두하고 있으니 대단하다. 거기에 수 만 명의 관중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고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탄성과 한숨이 터져 나온다. 그 뿐인가, 전 세계의 수 천 수 억의 축구 팬들이 텔레비젼 화면에 붙들려서 환호한다. 인류 역사상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에 그토록 열광하고 집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예컨대 엊저녁 연장 후반에 안정환이 헤딩으로 볼을 이태리 골에 넣는 그 순간, 전 세계의 수천만 사람들의 환호와 비탄이 그렇게 선명하게 갈라지다니... 도대체 축구란 것이 무엇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