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祭祀를 지내야 하는가?
제사라는 문화는 東洋精神의 꽃이 아닐까 싶다. 특히 儒敎圈에 있는 나라
들에는 한결같이 父母를 恭敬하고 祖上을 崇拜하는 것이 중요한 精神的 風土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西歐化로 치닫는 싱가포르만 해도 자식이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않을 경우 法으로 制裁할 정도니 말이다.
제사를 통해 先祖들의 業績을 기리고 또 그 精神을 繼承하는 일은 아주
重要하다. 부모형제 말고는 조부모의 이름조차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잠사
나마 자신의 뿌리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친
척들은 오랜만에 가족의 따스함을 누려볼 계기가 될 만하다.
한편 어려웠던 지난 시절 제사는 이를테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유일
한 날이었다. 나 또한 자장면과 탕수육이 최고의 외식이었던 6,70년대를 記
憶하는 만큼 제삿날이 조상을 섬기고 웃어를을 공경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
이라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단지 그 날이 오면 오랜만에 동그랑땡도
먹고 여러 가지 나물도 맛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불고기를 모처럼 포식할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남들로부터 우리나라도 좀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나 자신 나이가 들어 제사음식에 더 이상 한눈을 팔지 않에 되면서 제사에
대한 생각이 여러모로 바뀌에 되었다. 더구나 요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제사풍속을 보자면 이런식으로 할 바에는 차라리 하지 않는 편
이 나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제사 본래의 정신은 사라지고 남의 눈 때문이라도 치르기는 해
야 할 천덕꾸러기 행사가 되어버렸다. 서구화되고 민주화되어가는 생활양식
에 맞춰 변해가는 것이라 보기에도 정도가 심하다. 일례로 추석이나 설날 같
은 명절이 되면 아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이 제사용품과 식품을 판매한
다. 콘도나 호텔에 가서 놀더라도 형식적이나마 제사는 지내라는 이야기인데
호응도 꽤 높다. 여러날 전부터 보기 좋고 정갈한 음식을 준비하고 마음과
몸을 가다듬던 정성은 온데간데없이 상 차리고 절하는 행위만 남은 셈이다.
또 하나는 의식의 절차가 제각각 다르다 못해 우스꽝스러워져 가고 있다
는 점이다. 가령 기독교 계통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제사는 동서양 문화의
기이한 혼합 양상을 보인다. 제상은 격식대로 차리고 그 앞에서 찬송가를 부
르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일상적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기독교 교리를 어기
면서 절을 올리기도 한다. 큰 집 식구들은 절을 하는데 교회에 나가는 작은
집 가족들은 그냥 뻣뻣이 서 있는 광경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서로 다른
정신세계가 만나 조화점을 찾지 못하자 이런 웃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다.
게다가 웬만큼 산다는 집에 가면 제삿날은 며느리 군기를 잡는 날이다.
종가집이라 하여 사촌 팔촌 다 모이는 곳의 며느리는 그 많은 장정들의 식
사며 음료, 간식거리를 팔다리가 휘게 장만해야 하는 것이다. 그사이 남자들
은 모여 화투 치고 술 마사면서 팔다리 편하게 늘어져 있다. 그러니 무슨 제
사나 명절 때만 되면 여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오르게 마련이다. 며느
리를 일종의 보충 노동력, 나쁘게 말하자면 노예나 마찬가지로 취급하던 조
선조의 노예문화가 찬란한 빛을 발하도, 흔히 이야기하는 꼰대들이 활개치는
날이 제삿날과 명절인 것이다.
사실 제사라는 것 자체가 조금은 기이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교가 우리의 정식 국교로 채택된 것은 조선시대 때다. 말하자면 이
성계란 장군이 군부 쿠테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뒤 권력 유지를 위해 도입
한 것이 유교 문화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유교가 자리잡은 게 아주 오래 전
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인 것이다. 고려시대만 해도 불교가 융성하고
또 계급간의 마찰이나 남녀차별이 별로 심하지 않았던, 꽤 자유스런 사회였
다. 하지만 이 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거머쥔 군부에서 그런 자유스러움
을 허용할 리 없었다. 그래서 가부장적이고 남녀 차별적인 유교문화를 적극
옹호했던 것이다.
그럼 유교가 무엇인가? 이 정신체계의 기본은 아주 간단하다. 한마디로
인간사회에 질서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일의 순리를 따지고, 사람과 사람 사
이에도 일정한 차이를 두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남자=아버지=절대
군주=신'. 이에 거역한다는 것은 가정에서건 국가에서건 있을 수가 없는 일
이며, 따라서 아주 자연스럽게 '여자=노예=복종'이라는 대립항을 형성하게 된
다.
이런 사고가 자리잡게 되면서 제사라는 문화가 아주 중요해진다. 이 이벤
트야말로 남자들의 절대권력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그리하
여 장유유서라든가 어른 공경의 정신, 나아가서 부모를 하늘같이 생각하는
사고체계가 나오게 되었다. 물론 연장자나 부모를 우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정신이 서양에서처럼 휴머니즘에 근거해서 만
들어진 것과 유교처럼 밑의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과는 큰 차
이가 있다.
한 예를 들어보겠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전철에 노약자가 타면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가 거의 없다. 아무리 대낮이라 하더라도 대개 피곤하다는
식으로 눈을 감아버리거나 딴전을 피운다. 하지만 독일이나 프랑스에 가면
예외없이 자리를 내어준다. 어찌된 일 일까? 저 서양 오랑캐들이 조선의 유
교교화라도 받았단 말인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은 휴머니즘에 근거해
서 약자라고 생각되는 노인, 어린이, 身體 不自由者, 女性 등을 보호한다. 그
래서 노인이 대중교통수단을 타면 보호받는 것이다. 西歐에서 페미니즘이 자
연스럽게 자리잡은 반면 우리는 여전히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의
감정적인 반발을 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이렇게 휴머니즘이 아닌 絶對服從을 위해 만들어진 祭祀文化인 만큼 조
선시대 때의 病弊는 대단했다. 부모가 죽으면 3년상은 기본이요, 그 細細한
節次와 周邊의 간섭은 상상을 초월한다. 때문에 제사를 위해 家産을 탕진하
거나 머리가 돌고 심지어는 過勞로 죽는 경우도 許多했다. 만일 한 개인이
생전에서 1백만원을 썼다고 가정할 때, 그가 죽은 다음에 들어간 비용이 2백
만원을 넘는 따위의 奇妙한 일도 續出했다. 살아서 재미있게 돈을 써야지 죽
어서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이야기할 법도 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럼 당시엔 왜 이렇게 제사에 汨沒했던 것일까? 바로 絶對權力을 유지
하기 위해서다. 아버지라는 父權을 絶對化함으로서 자식, 곧 일반 백성이 왕
에게 절대 忠誠하도록 만든 것이다. 세상에 이런 제도가 어디 있겠냐 말하지
만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우리나라나 김일성 체제의 북한 모두 이런
시스템을 적절히 이용했다. 모택동이나 장개석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문화혁
명이 진행될 때 프랑스 지식인들은 상부층이 스스로 개혁을 주도했다는 의
미에서 한껏 열광했다. 그러나 한바탕 광풍이 휩쓸고 간 다음 모든 것은 유
교적인 절대권력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즉 속을 들여다
보니까 말로만 평등을 부르짖었지 실제로는 유교적 봉건주의와 다를 바 없
었다는 것이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결코 웃어른을 존경하자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
만 그것이 휴머니즘에 근거해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형태로 발전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저승에 있는 부모라고 할 때 솔직히 물 한 그릇을
떠놓았다고 해도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식의 눈물을 받는 것과
며느리의 고혈을 짜내서 만들어낸 輝煌燦爛한 음식상을 받는 것 중에서 어
느 것이 더 가치있는가 묻고 싶다. 꼭 모여서 배 터지게 먹고 술에 취해서
高聲放歌를 해야만 제사이고 名節인가? 아들딸 구별없이 차분히 默念을 하
고 敬虔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에 대한 禮儀가 아닐
까?
이런이야기도 하고 싶다. 이제 제사음식이란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가만히 그 음식들을 살펴보자. 대개 전이라든가 생선 졸인 것 등 며
칠이고 보관이 가능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한꺼번에 많은 음식
을 장만한 뒤에 여러사람이 모일 때마다 다시 지저먹거나 구워먹도록 되어
있드 것이다. 이것은 냉장보관이 가능해진 지금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상
온에서 보관할 경우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달라붙을 수도 있다.그리고 대개
이런 음식을 먹기 위해 멀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시간이고 달려올 필요
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냥 라면을 끓여먹어도 사람만 좋으면 그만이 아닌
가?
또 제사는 그렇다 치고 왜 명절 때마다 부모에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궁금하다. 사람에게 생일은 1년에 한번이듯 제사 역시 한 번이면 족하다. 어
차피 제삿날은 따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그 좋은 명절날 무슨 페스티벌이나
祝祭는 벌이지 못할망정 왜 窮相맞게 香을 피우고 울상을 지어야 하는가?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명절 역시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 브라질처럼 국가적으로 댄스 파티를 열거나 일본처럼 전국민이 단결해
서 마쓰리를 벌이지 못할망정 이런 강요된 진지함은 이제 謝絶해야 한다. 그
것은 결코 진심으로 조상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진짜 조상을 위하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코 祭床에 있지 않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위해서 보더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려고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야말로 眞情으로 조상 앞에 떳떳한 일일 것이다. 진짜 21세
기를 향하고자 한다면 이런 제사 콤플렉스부터 벗을 일이다.
- 이종학의 "난 한국이 싫어" 중에서 -
자리 讓步 이야기는 틀린 얘기지만 모든 論調가 全的으로 옳다. 엘리트는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 한 나라의 잘못된 문화를 바꿔가는 것은 엘리트들의 역활이다. 스스로 엘리트 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이제는 祭祀文化가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眞情 祭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사라는 문화는 東洋精神의 꽃이 아닐까 싶다. 특히 儒敎圈에 있는 나라
들에는 한결같이 父母를 恭敬하고 祖上을 崇拜하는 것이 중요한 精神的 風土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西歐化로 치닫는 싱가포르만 해도 자식이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않을 경우 法으로 制裁할 정도니 말이다.
제사를 통해 先祖들의 業績을 기리고 또 그 精神을 繼承하는 일은 아주
重要하다. 부모형제 말고는 조부모의 이름조차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잠사
나마 자신의 뿌리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친
척들은 오랜만에 가족의 따스함을 누려볼 계기가 될 만하다.
한편 어려웠던 지난 시절 제사는 이를테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유일
한 날이었다. 나 또한 자장면과 탕수육이 최고의 외식이었던 6,70년대를 記
憶하는 만큼 제삿날이 조상을 섬기고 웃어를을 공경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
이라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단지 그 날이 오면 오랜만에 동그랑땡도
먹고 여러 가지 나물도 맛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불고기를 모처럼 포식할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남들로부터 우리나라도 좀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나 자신 나이가 들어 제사음식에 더 이상 한눈을 팔지 않에 되면서 제사에
대한 생각이 여러모로 바뀌에 되었다. 더구나 요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제사풍속을 보자면 이런식으로 할 바에는 차라리 하지 않는 편
이 나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제사 본래의 정신은 사라지고 남의 눈 때문이라도 치르기는 해
야 할 천덕꾸러기 행사가 되어버렸다. 서구화되고 민주화되어가는 생활양식
에 맞춰 변해가는 것이라 보기에도 정도가 심하다. 일례로 추석이나 설날 같
은 명절이 되면 아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이 제사용품과 식품을 판매한
다. 콘도나 호텔에 가서 놀더라도 형식적이나마 제사는 지내라는 이야기인데
호응도 꽤 높다. 여러날 전부터 보기 좋고 정갈한 음식을 준비하고 마음과
몸을 가다듬던 정성은 온데간데없이 상 차리고 절하는 행위만 남은 셈이다.
또 하나는 의식의 절차가 제각각 다르다 못해 우스꽝스러워져 가고 있다
는 점이다. 가령 기독교 계통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제사는 동서양 문화의
기이한 혼합 양상을 보인다. 제상은 격식대로 차리고 그 앞에서 찬송가를 부
르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일상적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기독교 교리를 어기
면서 절을 올리기도 한다. 큰 집 식구들은 절을 하는데 교회에 나가는 작은
집 가족들은 그냥 뻣뻣이 서 있는 광경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서로 다른
정신세계가 만나 조화점을 찾지 못하자 이런 웃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다.
게다가 웬만큼 산다는 집에 가면 제삿날은 며느리 군기를 잡는 날이다.
종가집이라 하여 사촌 팔촌 다 모이는 곳의 며느리는 그 많은 장정들의 식
사며 음료, 간식거리를 팔다리가 휘게 장만해야 하는 것이다. 그사이 남자들
은 모여 화투 치고 술 마사면서 팔다리 편하게 늘어져 있다. 그러니 무슨 제
사나 명절 때만 되면 여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오르게 마련이다. 며느
리를 일종의 보충 노동력, 나쁘게 말하자면 노예나 마찬가지로 취급하던 조
선조의 노예문화가 찬란한 빛을 발하도, 흔히 이야기하는 꼰대들이 활개치는
날이 제삿날과 명절인 것이다.
사실 제사라는 것 자체가 조금은 기이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교가 우리의 정식 국교로 채택된 것은 조선시대 때다. 말하자면 이
성계란 장군이 군부 쿠테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뒤 권력 유지를 위해 도입
한 것이 유교 문화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유교가 자리잡은 게 아주 오래 전
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인 것이다. 고려시대만 해도 불교가 융성하고
또 계급간의 마찰이나 남녀차별이 별로 심하지 않았던, 꽤 자유스런 사회였
다. 하지만 이 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거머쥔 군부에서 그런 자유스러움
을 허용할 리 없었다. 그래서 가부장적이고 남녀 차별적인 유교문화를 적극
옹호했던 것이다.
그럼 유교가 무엇인가? 이 정신체계의 기본은 아주 간단하다. 한마디로
인간사회에 질서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일의 순리를 따지고, 사람과 사람 사
이에도 일정한 차이를 두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남자=아버지=절대
군주=신'. 이에 거역한다는 것은 가정에서건 국가에서건 있을 수가 없는 일
이며, 따라서 아주 자연스럽게 '여자=노예=복종'이라는 대립항을 형성하게 된
다.
이런 사고가 자리잡게 되면서 제사라는 문화가 아주 중요해진다. 이 이벤
트야말로 남자들의 절대권력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그리하
여 장유유서라든가 어른 공경의 정신, 나아가서 부모를 하늘같이 생각하는
사고체계가 나오게 되었다. 물론 연장자나 부모를 우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정신이 서양에서처럼 휴머니즘에 근거해서 만
들어진 것과 유교처럼 밑의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과는 큰 차
이가 있다.
한 예를 들어보겠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전철에 노약자가 타면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가 거의 없다. 아무리 대낮이라 하더라도 대개 피곤하다는
식으로 눈을 감아버리거나 딴전을 피운다. 하지만 독일이나 프랑스에 가면
예외없이 자리를 내어준다. 어찌된 일 일까? 저 서양 오랑캐들이 조선의 유
교교화라도 받았단 말인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은 휴머니즘에 근거해
서 약자라고 생각되는 노인, 어린이, 身體 不自由者, 女性 등을 보호한다. 그
래서 노인이 대중교통수단을 타면 보호받는 것이다. 西歐에서 페미니즘이 자
연스럽게 자리잡은 반면 우리는 여전히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의
감정적인 반발을 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이렇게 휴머니즘이 아닌 絶對服從을 위해 만들어진 祭祀文化인 만큼 조
선시대 때의 病弊는 대단했다. 부모가 죽으면 3년상은 기본이요, 그 細細한
節次와 周邊의 간섭은 상상을 초월한다. 때문에 제사를 위해 家産을 탕진하
거나 머리가 돌고 심지어는 過勞로 죽는 경우도 許多했다. 만일 한 개인이
생전에서 1백만원을 썼다고 가정할 때, 그가 죽은 다음에 들어간 비용이 2백
만원을 넘는 따위의 奇妙한 일도 續出했다. 살아서 재미있게 돈을 써야지 죽
어서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이야기할 법도 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럼 당시엔 왜 이렇게 제사에 汨沒했던 것일까? 바로 絶對權力을 유지
하기 위해서다. 아버지라는 父權을 絶對化함으로서 자식, 곧 일반 백성이 왕
에게 절대 忠誠하도록 만든 것이다. 세상에 이런 제도가 어디 있겠냐 말하지
만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우리나라나 김일성 체제의 북한 모두 이런
시스템을 적절히 이용했다. 모택동이나 장개석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문화혁
명이 진행될 때 프랑스 지식인들은 상부층이 스스로 개혁을 주도했다는 의
미에서 한껏 열광했다. 그러나 한바탕 광풍이 휩쓸고 간 다음 모든 것은 유
교적인 절대권력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즉 속을 들여다
보니까 말로만 평등을 부르짖었지 실제로는 유교적 봉건주의와 다를 바 없
었다는 것이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결코 웃어른을 존경하자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
만 그것이 휴머니즘에 근거해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형태로 발전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저승에 있는 부모라고 할 때 솔직히 물 한 그릇을
떠놓았다고 해도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식의 눈물을 받는 것과
며느리의 고혈을 짜내서 만들어낸 輝煌燦爛한 음식상을 받는 것 중에서 어
느 것이 더 가치있는가 묻고 싶다. 꼭 모여서 배 터지게 먹고 술에 취해서
高聲放歌를 해야만 제사이고 名節인가? 아들딸 구별없이 차분히 默念을 하
고 敬虔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에 대한 禮儀가 아닐
까?
이런이야기도 하고 싶다. 이제 제사음식이란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가만히 그 음식들을 살펴보자. 대개 전이라든가 생선 졸인 것 등 며
칠이고 보관이 가능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한꺼번에 많은 음식
을 장만한 뒤에 여러사람이 모일 때마다 다시 지저먹거나 구워먹도록 되어
있드 것이다. 이것은 냉장보관이 가능해진 지금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상
온에서 보관할 경우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달라붙을 수도 있다.그리고 대개
이런 음식을 먹기 위해 멀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시간이고 달려올 필요
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냥 라면을 끓여먹어도 사람만 좋으면 그만이 아닌
가?
또 제사는 그렇다 치고 왜 명절 때마다 부모에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궁금하다. 사람에게 생일은 1년에 한번이듯 제사 역시 한 번이면 족하다. 어
차피 제삿날은 따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그 좋은 명절날 무슨 페스티벌이나
祝祭는 벌이지 못할망정 왜 窮相맞게 香을 피우고 울상을 지어야 하는가?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명절 역시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 브라질처럼 국가적으로 댄스 파티를 열거나 일본처럼 전국민이 단결해
서 마쓰리를 벌이지 못할망정 이런 강요된 진지함은 이제 謝絶해야 한다. 그
것은 결코 진심으로 조상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진짜 조상을 위하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코 祭床에 있지 않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위해서 보더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려고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야말로 眞情으로 조상 앞에 떳떳한 일일 것이다. 진짜 21세
기를 향하고자 한다면 이런 제사 콤플렉스부터 벗을 일이다.
- 이종학의 "난 한국이 싫어" 중에서 -
자리 讓步 이야기는 틀린 얘기지만 모든 論調가 全的으로 옳다. 엘리트는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 한 나라의 잘못된 문화를 바꿔가는 것은 엘리트들의 역활이다. 스스로 엘리트 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이제는 祭祀文化가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眞情 祭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