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면 눈도 여려지는가, 나도 이 짧은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 축구로 달아오른 열기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주말연속극은 멈출 수 없는 것, 그래서 약속대로 올린다. 역시 각양각색의 주례 경험이 많은 서강대 이남주교수 글이다.
- 이미 세상을 뜬 친구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아직 살아서 숨쉬는 친구들은 자식들이 이런 가슴 아픈 경우 당하지 않게 얘들 혼인할 때까지 모두 건강하게 살자.
주례 이야기(3)—“눈물로 얼룩진 예식장”
주말에 주례를 부탁하는 커플이 인사를 왔다. 그냥 처다만 보아도 눈가에 웃음이 감도는 게 보통인데, 예비 신부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엄마 품을 떠나는 것이 섭섭하냐고 물었더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다. 아이고, 이 어린 것이 시집가서 잘 살까... 그 여린 마음이 측은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제자 녀석이 머뭇거리며 말한다. 사실은요, 은영이 엄마가 한달 전에 돌아가셨어요. 결혼식 날자는 몇 달 전에 잡아놓고, 식장예약 다 해놓고, 청첩이랑 모두 돌리고, 혼수 준비 다 해놓고 엄마는 가셨다. 년 초에 폐암을 선고받고, 이 세상 떠나기 전에 외동 딸 출가시킨다고 서두르던 엄마가 기다리던 그 날을 한 달여 남기고는 가신 것이다.
결혼식 날. 모든 화촉은 이미 켜 있다. 단에서 보아 왼쪽 맨 앞에도 오른 쪽과 마찬가지로 의자가 두 개 놓여있다. 정시에 식이 시작되고, 신랑이 단 앞에까지 와서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신부 맞을 준비를 한다. 웨딩 마치가 시작되고, 신부가 아빠의 인도를 받으며 걸어 오고 있다. 고개를 숙인채, 한 발씩 떼어 놓을 때마다 어깨가 떨리고 있다. 중년부인 십여명이 중간에 모여 앉아 있고, 또 뒷 편에 십여명이 앞뒤로 앉아 있는데 모두 고개를 숙이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부가 의자 첫줄까지 거의 왔을 무렵, 신랑이 계단을 내려가 신부를 맞는데, 두 사람은 주례 앞으로 오지 않고, 왼쪽으로 가더니 비어있는 의자 위에 꽃 다발 하나를 내려 놓는다. 신부는 부케와 함께 장미 꽃 한 다발을 더 들고 있었다. 이때 한복을 입고 앞 자리에 있던 부인 한사람이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한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던 중년부인들 쪽에서도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장미 꽃을 바라보던 신부의 아버지도 손수건을 꺼낸다. 신랑도 눈물을 흘리고, 안경을 쓰고 있는 나도 안경을 벗을 수 밖에 없었다. 결혼식장은 눈물 바다가 된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 마음을 추스르고 이들이 단위에 올라와 섰지만, 훌쩍이는 소리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나는 그 날 주례사에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 나라에 간 어머니가 아버지 옆에 앉아 딸과 사위가 드린 장미꽃을 가슴에 안고 웃으며 바라보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전정되어 가던 식장이 이 말로 다시 울음바다가 되었다. 식이 시작될 때에는 영문을 모르고 의아해 하던 사람들도 손수건을 꺼냈다.
결혼 며칠 전 두 사람이 나를 찾아 왔을 때, 양가모친의 화촉은 엄마대신 이모가 하고, 아빠 옆에는 이모가 앉아 계시도록 한다고 했다. 나는 촛불은 식전에 모두 켜두고, 신부는 엄마가 생시에 좋아하던 꽃 한 다발을 가져와 신랑과 함께 빈 의자에 놓아 드리고, 엄마 자리는 비워두자고 제의했다. 그 자리는 엄마가 앉아야 하는 자리이니까.
그 날 제일 먼저 울음을 터뜨린 이는 이모였고, 중년 부인들은 엄마의 대학교 동창, 고등학교 동창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