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8일
바래봉 철쭉이 5월중순이면 한창이라고 신문마다 칼라사진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 홈페이지에도 그 멋있는 풍경을 일찌감치 김진국회장이 어디에선가 퍼다놓았다. 꼭 가보야겠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했지만 막상 떠나기 전날부터 목구멍이 따끔따끔대고 잔기침도 계속 나오며 열도 난다. 그렇지만 장가갈 날짜 잡아놓고 얼굴에 뽀드락지 생겼다고 장가갈 날짜 미룰 수도 없는 일. 병원에 가서 약 한주먹 배낭에 챙겨넣고 와씨의 사뭇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뒤로 한채 집을 나선다.
지리산은 95년9월 이 등산회때 가 본이래 이번이 겨우 두번째이다. 원래 등산과는 거리가 멀던 나에게 지리산 가보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이런때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있을소냐 하면서 따라나섰던게 그때 첫번째였으니까. 그런데 벌써 7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 생각하면서 김두경과 약속한 지하철역으로 나갔다. 아마 김두경이도 내 7년전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등산회에도 오늘 처음일터이니까. 그래도 원주에서 오전근무를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나오는 열의를 보면 또하나의 등산애호가를 건진거다.
둘이 전철에서 내려 앞을 보니 얌전하게 차려입고 배낭을 멘 뒷 모습이 김진국이다. 딸이 며칠전에 사주었다는 멋진 모자를 쓰고 있다. 셋이서 3시5분전에 수서역공영주창엘 가니 이미 거의다 모였다. 버스주변에서 오는 인원을 체크하고 있는 주환중,박효범,정태영, 조병희,민일홍,이상훈과 아직도 아픈다리를 약간씩 끌면서 걷고있는 노준용이가 보였으며 이재상과 이승희도 이미 나와있어 이번 산행도 그 즐거움이 배가 될 것임을 예감케한다. 저쪽에서 진영애가 열심히 시간에 맟추어 걸어온다.
버스안을 들어가보니 맨앞줄에 이석영이와 유정순이가 , 바로 뒤에 김풍자가, 옆좌석엔 이성희가 앉아있다. 그 뒤에는 방유정과 유정숙이, 그뒤에는 김양자와 박정애가, 그 옆좌석엔 정숙자가 좌정하고있다. 못보던 여학생모습도 보인다. 처음나온 여학생인가 했더니 선농지기자로 활동하는 20회 후배란다. 여학생들 뒷쪽에 김윤종, 황정환,신해순, 박영준, 김영길,김수관, 김용호,정만호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 있다가 강기종이가 타고 정영경이가 타서 정숙자옆에 앉고 몇달전부터 바래봉,바래봉외었다는 강인자가 타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버스가 출발하니 정확히 3시15분.
판교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뻐스전용선의 위력이 발휘된다. 토요일 오후라 꽤나 밀려있는 승용차들을 보면서 용용 죽겠지 하듯이 시원하게 달려나가니 내가슴도 시원해진다. 이런 심뽀를 뭐라 하더라?
여학생석에선 벌써 깔깔 호호 엔돌핀이 마구 쏟아진다.
숙자,인자, 양자,풍자의 4子씨스터즈의 화려한 무대를 예고도 하면서. 오늘 12명의 여학생들중 자씨스터가 4명이면 33퍼센트가 되는건데 , 전체 180명에선 얼마나 차지할까? 시대변화에 따른 이름의 변천사를 연구해보는 것도 충분한 연구꺼리가 될 것 같다. 최근에 많이 쓰이고 있는 여자애들 이름은 무엇일까? 민정이? 현정이? 윤정이?
김영길이가 열심히 농사지은 마를 삶아왔다. 일식집에서 식사전에 갈아내온 것은 먹어봤지만 감자나 고구마처럼 아렇게 삶은건 처음이다. 별미이다. 위에도 좋고 정력에도 좋단다.
김풍자가 콩과 밤이 들어있는 떡을 한무더기씩 나누어준다. 점심먹은지 얼마 않되었는데도 떡이 맛있어 한개를 후닥닥 다 먹어치운다.
1시간반을 달려 4시45분에 옥산휴게소에서 잠시 쉰 다음, 대전을 조금 지나 진주.통영고속도로로 꼬부라진다. 작년 12월에 개통되고 처음 달려보는 도로이다. 5시에 옥산 떠난지 1시간만에 덕유산휴게소이다.
주변경치가 좋다. 서울은 쨍쨍 햇볕이 비추이는데 이곳은 방금전까지 비가 왔는가보다. 멀리 저쪽으로 운무가 산을 휘어감으며 올라간다. 옛날 무주구천동 가느라고 영동ic를 벗어나 흙먼지 날리면서 가던 생각이 난다.
덕유산휴게소를 지나니 곧 우측으로 장수가 지나친다. 미인들이 많이 난 곳이다. 적장의 목을 끌어안고 진주남강의 푸른물에 자신의 몸을 던져 자기 한 목숨바쳐 정절도 지키고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논개도 이곳 장수출신의 미인이란다. 주논개였으니 주환중이의 자랑스러운 조상이라고 꺽정이회장이 슬쩍 자랑한다.
벌써 함양이다.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 함양,산청인가? 이렇게 가깝게 올수가? . 함양으로 오는 육십령고개를 그대로 바이패스하여 뚫어놓은 고속도로로 달려오니 그야말로 대전에서 한걸음이다.
곧바로 88올림픽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이 도로는 옛날과 전혀 변함이 없으니. 십 몇년이나 지났음에도 의구하구나. 그러면서도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그대로 유지하는 뻔뻔스러움의 일관성을 지키내고 있네. 비를 살짝살짝 뿌린다. 남원ic이다. 시계를 보니 7시 15분.
구례로 가는 턴넬을 통과한다. 이 턴넬을 경계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가 나뉘어진다. 남도로 들어서면서 빗줄기가 조금 강해진다. 그래도 3일간의 끝자락 비이니까 오히려 내일 산행하기엔 더할수 없이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비이다. 7시45분. 지리산온천랜드에 도착한다. 이태동이와 김상건, 김옥건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태동이는 순천출장길에서, 김상건이는 정읍 본가에서, 김옥건이는 창원의 일터에서 각기 쪼인한것이다. 이로써 남학생 24명, 여학생 12명,파견학생 1명, 총 37명의 부대가 정식으로 확정되어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곳의 최완숙과 만난다. 7년만에 보는 얼굴인데 지리산의 깨끗한 공기와 게르마늄온천때문인지 아직도 전과 똑같이 깨끗하다.
넓다란 방에 12명씩 배낭을 던져넣으니 자동으로 방 3개에 배정 끝. 곧바로 밑에 잇는 식당으로.
최완숙이 특별히 우리 동문들을 위하여 식사를 제공한단다. 고기버섯찌게가 보글거리고 있고 지리산 산나물이 대기하고 있다. 맛있게 식사하고 옆방에서 커피와 지리산차까지 대접받는다. 이자리를 빌어서 우리 모두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시간이 벌써 10시 반이 다 되어가지만 이대로 잘 수는 없다는 무언의 합의에 의해 그 옆방의 노래방으로. 40명은 들어갈 수있을 것 같은 큰방이다. 분위기 메이커 이재상이가 분위기를 띄운다.
'메기의 추억'이라는 노래로. 나는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이런 노래갖이고 저렇게 부르니 분위기가 저렇게 달라질 수도 있음을. 저런건 노력갖이고 도저히 않되는 거겠지? 여기에 이승희가 화답을 한다. "월부튼 마운튼'으로 . 옛날 학교다닐때의 생각이 나게 하는 노래이다. 그땐 저런 영어노래 열심히 따라 불렀지. 김옥건이가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부르고 진영애가 심수봉이의 노래를 간드러지게 부른다. 7년전 이곳에서 김옥건이가 이 노래방을 노래로 휘어잡고 진영애가 춤으로 이 노래방을 휘어잡던 생각이 난다. 정숙자가 "꼬마인형"을 최진아보다도 더 잘 부른다. 이상훈이가 누군지모르는 "사랑하는 이에게'라는 남녀혼성으로 부르는 노래를 혼자 멋있게 부른다. 마침 옆자리의 김양자보고 같이나가서 부르라고 하니 그냥 옆에서 따라 부른다. 저쪽의 이상훈이 노래와 옆의 김양자노래가 스테레오로 혼성이 되어 멋있게 들린다. 곧이어 김용호와 정영경이 듀엣으로 "사랑의 눈동자"를 부르면서 노래방의 열기가 뜨거워진다.
12시가 넘어간다. 이젠 가서 자야지 하고 방에 들어오니 신해순과 김상건,김영길이가 술타령을 하고 있고 옆방에서도 이재상이 주도로 정만호와 민일홍등이 술을 즐긴다.
술 잘먹고 아무데서나 식식 잠 잘자는 애들 보면 부럽다. 이건 타고난 체질이 맞어야겠지?
1시반이 되니 불을 끄고 자잔다. 이제 나도 잠을 자야 하는데.. ..꺽정이 회장이 일어나서 덜컹덜컹 옷장을 옮 기느라 고생한다.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신경쓰여 잠이않와 옷장뒤의 냉장고코드를 뺀단다. 저쪽 여학생들의 풍경은 지금쯤 어떨까?
이런게 모두 즐거운 추억거리지 하면서 잠을 청한다.
5월19일
여기서 부스럭 저기서 부스럭, 코고는 소리에 잠꼬대소리, 화장실 가는 소리가 비몽사몽간 들리면서 이리둘척 저리들척하고 있는데 한둘씩 주섬주섬 옷들을 주어입는 소리가 들린다. 오지않는 잠 억지로 자려하는것보다는 일찌감치 온천목욕이나 하자꾸나 하면서 욕탕으로 갔다. 받은 옷장번호표가 천칠백몇으로 나가니 엄청나게 큰 목욕탕이지만 이른아침이라 사람도 없고 욕조물도 깨끗하다. 푹 담갔다 나오니 못잔 잠이 약간 보충되는듯 하다.
7시에 식당으로. 재첩국에 더덕구이로 아침식사. 어제 잡았다는 재첩이라 그런지 짭짜름한 재첩국물이 입맛을 돗군다. 양도 푸짐하고 재긍재금한것도 전혀 없다. 요렇게 작은 조개를 어떻게 일일이 까지? 뜨거운 물에 푹 담그면 저절로 까지겠지? 식당의 부부도 사근사근한게 점심때 먹으라고 김밥만 한줄씩 뚝뚝 주는게 아니고 산수유쥬스에 오이며 당근에 지리산약수 한병씩 봉다리에 넣어준다. 다음에 가게되면 다시한번 꼭 둘러야지.
8시 정확히 온천랜드를 떠나 다시 남원으로. 축산기술연구소 남원지소 옆의 넓다란 주차장에 뻐스가 도착한 시각이 얼추 8시반. 곧바로 산행이다. 7,8분 걸었을까? 오른쪽으로는 雲智寺팻말이 보이고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린다. 오늘이 마침 석탄일이지. 요새는 방생한다고 엉뚱한 남생이들을 잡아다가 한강에 놓아주는 억지방생은 없어졌겠지? 우리는 왼쪽 좁은 길로 꺾어져 들어간다.
한사람이 겨우 걸을만한 좁은 길이 약간은 가파르게 이어진다. 등산회에 오래간만에 나온 강인자가 저앞에서 씩씩하게 올라간다. 몰래 등산공부 많이 하는가보다. 한 40분정도 올라갔을까?
앞이 확 트인다. 자동차도 2대는 지나다닐수 있는 넓은 길이다. 길 양쪽이 모두 철쭉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꽃은 가끔씩 흔적만 보인다. 지난 주 목요일 꺽정이회장 사전답사시에는 만발하였다는데
어제까지 온 비때문에 모두 저버렸단다. 아쉽지만 어쩌겠나. 비온후의 청량함을 대신 즐기며 피어있을 철쭉을 상상하며 걸으면 되지. 이래서 다음에 또 올 구실을 만드는거지.
10여분 더 올라가니 왼쪽 으로 바래봉이다.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뒤집어 놓은듯 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높이가 1165 미터이지만 우리가 올라오기 시작한 축산연구소가 이미 700 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실제로 우리가 걸은건 청계산 오른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부터 오른쪽으로 팔랑치 철쭉능선이란다. 팔랑치란 이름은 8명의 화랑이 지키던 곳이란데서 유래되었다는데 이름이 한자어이면서도 순수한 우리말같아 정겹다.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놓치기 아까운 영상물을 카메라에 담는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맛있는 땅콩을 제공하는 카메라맨 한병근이를 같이 오자고 할걸 하는 생각이 난다.
나무계단으로 연결된다. 주변이 모두 철쭉군락지이다. 꽃이 활짝 피었을땐 장관이었겠구나. 대신에 남쪽으로 눈을 돌려 동서로 길게 펼쳐저있는 지리산능선을 본다. 동쪽의 천왕봉부터 오른쪽의 노고단까지. 언젠가 한번은 종주를 해야 하는데...
11시밖에 않되었지만 배도 출출하고 시간도 여유가 있어 넓다란 잔디밭에 둥그렇게 앉아 이른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신해순, 정만호, 민일홍의 술 삼총사는 소주도 맛있게 마시고, 여학생들은 진짜 여학생으로 돌아가 노래자랑을 하고.
12시가 채않되어 하산길. 그야말로 심마니들이나 걷는 길인듯 싶다. 가파른 내리막길이라 나무도 잡고 철조망도 여러번 넘어야하고 조심해서 내려와야하는 길이지만 인적이없는 전인미답의 깨끗한 길이다. 작년에 꺽정이회장이 개발해놓은 길이란다. 지저귀는 새소리도 귀엽다. 4박자로 우는 "쪽박바꿔새" 소리가 유난하다. 옛날 지지리도 가난했던시절 시어머니한테 구박받고 쪼끄만 쪽박으로만 밥을 지어야 했던 며느리가 죽어서 환생한 새라는 게 꺽정이설명인데, 맞은 얘기겠지?
심마니 김상건과 민일홍, 정만호는 더덕을 캔다. 크지는 않지만 향기가 서울에서 보는 더덕과는 비교가 않된다. 짓찌어 술에 넣는다. 천연 더덕술이 된다. 등산해서 좋고 거기다 천연 무공해 더덕술까지 즐기니 보는사람이 다 흐뭇해진다.
1시간정도 내려왔을까? 팔랑마을이다. 10여채가 채 않되는 작은 마을이다. 집앞까지 차도 들어오고 물론 전기도 들어온다. 그러나 이곳은 꿀을 만들어 파는게 주업으로 보인다. 꿀치는 상자가 많이 눈에 띈다. 그야말로 진짜로 믿을 꿀이라면 두어병 사가고 싶은데, 꺽정이회장 말씀, 절대로 사지말란다. 한사람한테 잃은 신용의 무서움을 이사람들한테 알으켜 줄 방도는 없을까?
평상에서들 앉아 막걸리로 목들을 추긴다. 안주는 고사리 나물과 개발딱지나물. 햐! 개발딱지나물이라. 이름도 희한하다. 쌉싸름 매콤한게 괜챦은 맛이다. 종지에 아무렇게나 내어놓인 걸 보니 왠지 안되어 보인다. 예쁜 유리병에 담아 판다면 몇병쯤 살수도 있을 터인데....
꿀과 개발딱지나물을 보면서 일본의 一村一品생각이 난다. 예쁜여자아이 아무렇게나 내돌리는것같은 애처러움이다.
넓은 길을 따라 내려오니 2시반경 산내면내령리 계곡모텔입구에 이른다.
뻐스가 기다리고 있어야하는데 3시가 가까워도 오지 않고 핸드폰도 연락이 않되고. 한쪽에선 막걸리를 즐기고 있지만 꺽정이회장과 이상훈이가 애를 태운다. 김옥건이가 갖이고 온 차가있어 겨우 저쪽에서 뻐스를 발견하여 데리고 온다.
차에 오르자 모두들 조용히 취침. 4시에 덕유산 휴게소라고 깨운다. 잠깐 부친 낯잠이 꿀맛이다.
피로도 확 풀린기분. 나누어주는 부라보 콘 하나씩 먹고 다시출발하면서 재주꾼 이재상의 사회로 남.여 대항 동요부르기시합. 동요란 동요는 다 튀어나온다. 노준용이는 좋은 기억력을 발휘하여 청팀을 리드하고 박정애는 꽉 맥힌 목소리로도 홍팀을 리드한다. 심한 감기로 김양자의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래일은 래일이고 오늘은 오늘이라는듯이 원기왕성하게 리드한 덕분에 홍팀을 승리로 이끈다.
경기도에 들어선다. 톨게이트에 도착하는 시간맟추기를 김풍자가 제안한다. 그때시각이 6시 25분쯤.
7시 15분부터 8시15분까지 다양한 답이나온다. 7시 20분대가 가장 많다. 정답자에게는 김진국회장의 큰상이 있단다. 너무 밀리지않고 쭉쭉 달리는 바람에 조금은 밀렸으면 하는 눈치들이다.
정확히 6시 55분에 톨게이트에 도착하고 수서역엔 7시 15분에 도착한다. 아무도 맟추지 못했지만 시원하게 달려온 것에 만족한다. 꺽정이회장이 저녁을 낸단다. 최근 여학생들의 출석율이 양호하여 기분이 좋단다. 모두들 우루루 근처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를 한다.
30여시간의 1박2일 지리산 여행이 이렇게 즐겁게 끝난다.
바래봉 철쭉이 5월중순이면 한창이라고 신문마다 칼라사진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 홈페이지에도 그 멋있는 풍경을 일찌감치 김진국회장이 어디에선가 퍼다놓았다. 꼭 가보야겠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했지만 막상 떠나기 전날부터 목구멍이 따끔따끔대고 잔기침도 계속 나오며 열도 난다. 그렇지만 장가갈 날짜 잡아놓고 얼굴에 뽀드락지 생겼다고 장가갈 날짜 미룰 수도 없는 일. 병원에 가서 약 한주먹 배낭에 챙겨넣고 와씨의 사뭇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뒤로 한채 집을 나선다.
지리산은 95년9월 이 등산회때 가 본이래 이번이 겨우 두번째이다. 원래 등산과는 거리가 멀던 나에게 지리산 가보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이런때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있을소냐 하면서 따라나섰던게 그때 첫번째였으니까. 그런데 벌써 7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 생각하면서 김두경과 약속한 지하철역으로 나갔다. 아마 김두경이도 내 7년전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등산회에도 오늘 처음일터이니까. 그래도 원주에서 오전근무를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나오는 열의를 보면 또하나의 등산애호가를 건진거다.
둘이 전철에서 내려 앞을 보니 얌전하게 차려입고 배낭을 멘 뒷 모습이 김진국이다. 딸이 며칠전에 사주었다는 멋진 모자를 쓰고 있다. 셋이서 3시5분전에 수서역공영주창엘 가니 이미 거의다 모였다. 버스주변에서 오는 인원을 체크하고 있는 주환중,박효범,정태영, 조병희,민일홍,이상훈과 아직도 아픈다리를 약간씩 끌면서 걷고있는 노준용이가 보였으며 이재상과 이승희도 이미 나와있어 이번 산행도 그 즐거움이 배가 될 것임을 예감케한다. 저쪽에서 진영애가 열심히 시간에 맟추어 걸어온다.
버스안을 들어가보니 맨앞줄에 이석영이와 유정순이가 , 바로 뒤에 김풍자가, 옆좌석엔 이성희가 앉아있다. 그 뒤에는 방유정과 유정숙이, 그뒤에는 김양자와 박정애가, 그 옆좌석엔 정숙자가 좌정하고있다. 못보던 여학생모습도 보인다. 처음나온 여학생인가 했더니 선농지기자로 활동하는 20회 후배란다. 여학생들 뒷쪽에 김윤종, 황정환,신해순, 박영준, 김영길,김수관, 김용호,정만호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 있다가 강기종이가 타고 정영경이가 타서 정숙자옆에 앉고 몇달전부터 바래봉,바래봉외었다는 강인자가 타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버스가 출발하니 정확히 3시15분.
판교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뻐스전용선의 위력이 발휘된다. 토요일 오후라 꽤나 밀려있는 승용차들을 보면서 용용 죽겠지 하듯이 시원하게 달려나가니 내가슴도 시원해진다. 이런 심뽀를 뭐라 하더라?
여학생석에선 벌써 깔깔 호호 엔돌핀이 마구 쏟아진다.
숙자,인자, 양자,풍자의 4子씨스터즈의 화려한 무대를 예고도 하면서. 오늘 12명의 여학생들중 자씨스터가 4명이면 33퍼센트가 되는건데 , 전체 180명에선 얼마나 차지할까? 시대변화에 따른 이름의 변천사를 연구해보는 것도 충분한 연구꺼리가 될 것 같다. 최근에 많이 쓰이고 있는 여자애들 이름은 무엇일까? 민정이? 현정이? 윤정이?
김영길이가 열심히 농사지은 마를 삶아왔다. 일식집에서 식사전에 갈아내온 것은 먹어봤지만 감자나 고구마처럼 아렇게 삶은건 처음이다. 별미이다. 위에도 좋고 정력에도 좋단다.
김풍자가 콩과 밤이 들어있는 떡을 한무더기씩 나누어준다. 점심먹은지 얼마 않되었는데도 떡이 맛있어 한개를 후닥닥 다 먹어치운다.
1시간반을 달려 4시45분에 옥산휴게소에서 잠시 쉰 다음, 대전을 조금 지나 진주.통영고속도로로 꼬부라진다. 작년 12월에 개통되고 처음 달려보는 도로이다. 5시에 옥산 떠난지 1시간만에 덕유산휴게소이다.
주변경치가 좋다. 서울은 쨍쨍 햇볕이 비추이는데 이곳은 방금전까지 비가 왔는가보다. 멀리 저쪽으로 운무가 산을 휘어감으며 올라간다. 옛날 무주구천동 가느라고 영동ic를 벗어나 흙먼지 날리면서 가던 생각이 난다.
덕유산휴게소를 지나니 곧 우측으로 장수가 지나친다. 미인들이 많이 난 곳이다. 적장의 목을 끌어안고 진주남강의 푸른물에 자신의 몸을 던져 자기 한 목숨바쳐 정절도 지키고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논개도 이곳 장수출신의 미인이란다. 주논개였으니 주환중이의 자랑스러운 조상이라고 꺽정이회장이 슬쩍 자랑한다.
벌써 함양이다.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 함양,산청인가? 이렇게 가깝게 올수가? . 함양으로 오는 육십령고개를 그대로 바이패스하여 뚫어놓은 고속도로로 달려오니 그야말로 대전에서 한걸음이다.
곧바로 88올림픽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이 도로는 옛날과 전혀 변함이 없으니. 십 몇년이나 지났음에도 의구하구나. 그러면서도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그대로 유지하는 뻔뻔스러움의 일관성을 지키내고 있네. 비를 살짝살짝 뿌린다. 남원ic이다. 시계를 보니 7시 15분.
구례로 가는 턴넬을 통과한다. 이 턴넬을 경계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가 나뉘어진다. 남도로 들어서면서 빗줄기가 조금 강해진다. 그래도 3일간의 끝자락 비이니까 오히려 내일 산행하기엔 더할수 없이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비이다. 7시45분. 지리산온천랜드에 도착한다. 이태동이와 김상건, 김옥건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태동이는 순천출장길에서, 김상건이는 정읍 본가에서, 김옥건이는 창원의 일터에서 각기 쪼인한것이다. 이로써 남학생 24명, 여학생 12명,파견학생 1명, 총 37명의 부대가 정식으로 확정되어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곳의 최완숙과 만난다. 7년만에 보는 얼굴인데 지리산의 깨끗한 공기와 게르마늄온천때문인지 아직도 전과 똑같이 깨끗하다.
넓다란 방에 12명씩 배낭을 던져넣으니 자동으로 방 3개에 배정 끝. 곧바로 밑에 잇는 식당으로.
최완숙이 특별히 우리 동문들을 위하여 식사를 제공한단다. 고기버섯찌게가 보글거리고 있고 지리산 산나물이 대기하고 있다. 맛있게 식사하고 옆방에서 커피와 지리산차까지 대접받는다. 이자리를 빌어서 우리 모두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시간이 벌써 10시 반이 다 되어가지만 이대로 잘 수는 없다는 무언의 합의에 의해 그 옆방의 노래방으로. 40명은 들어갈 수있을 것 같은 큰방이다. 분위기 메이커 이재상이가 분위기를 띄운다.
'메기의 추억'이라는 노래로. 나는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이런 노래갖이고 저렇게 부르니 분위기가 저렇게 달라질 수도 있음을. 저런건 노력갖이고 도저히 않되는 거겠지? 여기에 이승희가 화답을 한다. "월부튼 마운튼'으로 . 옛날 학교다닐때의 생각이 나게 하는 노래이다. 그땐 저런 영어노래 열심히 따라 불렀지. 김옥건이가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부르고 진영애가 심수봉이의 노래를 간드러지게 부른다. 7년전 이곳에서 김옥건이가 이 노래방을 노래로 휘어잡고 진영애가 춤으로 이 노래방을 휘어잡던 생각이 난다. 정숙자가 "꼬마인형"을 최진아보다도 더 잘 부른다. 이상훈이가 누군지모르는 "사랑하는 이에게'라는 남녀혼성으로 부르는 노래를 혼자 멋있게 부른다. 마침 옆자리의 김양자보고 같이나가서 부르라고 하니 그냥 옆에서 따라 부른다. 저쪽의 이상훈이 노래와 옆의 김양자노래가 스테레오로 혼성이 되어 멋있게 들린다. 곧이어 김용호와 정영경이 듀엣으로 "사랑의 눈동자"를 부르면서 노래방의 열기가 뜨거워진다.
12시가 넘어간다. 이젠 가서 자야지 하고 방에 들어오니 신해순과 김상건,김영길이가 술타령을 하고 있고 옆방에서도 이재상이 주도로 정만호와 민일홍등이 술을 즐긴다.
술 잘먹고 아무데서나 식식 잠 잘자는 애들 보면 부럽다. 이건 타고난 체질이 맞어야겠지?
1시반이 되니 불을 끄고 자잔다. 이제 나도 잠을 자야 하는데.. ..꺽정이 회장이 일어나서 덜컹덜컹 옷장을 옮 기느라 고생한다.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신경쓰여 잠이않와 옷장뒤의 냉장고코드를 뺀단다. 저쪽 여학생들의 풍경은 지금쯤 어떨까?
이런게 모두 즐거운 추억거리지 하면서 잠을 청한다.
5월19일
여기서 부스럭 저기서 부스럭, 코고는 소리에 잠꼬대소리, 화장실 가는 소리가 비몽사몽간 들리면서 이리둘척 저리들척하고 있는데 한둘씩 주섬주섬 옷들을 주어입는 소리가 들린다. 오지않는 잠 억지로 자려하는것보다는 일찌감치 온천목욕이나 하자꾸나 하면서 욕탕으로 갔다. 받은 옷장번호표가 천칠백몇으로 나가니 엄청나게 큰 목욕탕이지만 이른아침이라 사람도 없고 욕조물도 깨끗하다. 푹 담갔다 나오니 못잔 잠이 약간 보충되는듯 하다.
7시에 식당으로. 재첩국에 더덕구이로 아침식사. 어제 잡았다는 재첩이라 그런지 짭짜름한 재첩국물이 입맛을 돗군다. 양도 푸짐하고 재긍재금한것도 전혀 없다. 요렇게 작은 조개를 어떻게 일일이 까지? 뜨거운 물에 푹 담그면 저절로 까지겠지? 식당의 부부도 사근사근한게 점심때 먹으라고 김밥만 한줄씩 뚝뚝 주는게 아니고 산수유쥬스에 오이며 당근에 지리산약수 한병씩 봉다리에 넣어준다. 다음에 가게되면 다시한번 꼭 둘러야지.
8시 정확히 온천랜드를 떠나 다시 남원으로. 축산기술연구소 남원지소 옆의 넓다란 주차장에 뻐스가 도착한 시각이 얼추 8시반. 곧바로 산행이다. 7,8분 걸었을까? 오른쪽으로는 雲智寺팻말이 보이고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린다. 오늘이 마침 석탄일이지. 요새는 방생한다고 엉뚱한 남생이들을 잡아다가 한강에 놓아주는 억지방생은 없어졌겠지? 우리는 왼쪽 좁은 길로 꺾어져 들어간다.
한사람이 겨우 걸을만한 좁은 길이 약간은 가파르게 이어진다. 등산회에 오래간만에 나온 강인자가 저앞에서 씩씩하게 올라간다. 몰래 등산공부 많이 하는가보다. 한 40분정도 올라갔을까?
앞이 확 트인다. 자동차도 2대는 지나다닐수 있는 넓은 길이다. 길 양쪽이 모두 철쭉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꽃은 가끔씩 흔적만 보인다. 지난 주 목요일 꺽정이회장 사전답사시에는 만발하였다는데
어제까지 온 비때문에 모두 저버렸단다. 아쉽지만 어쩌겠나. 비온후의 청량함을 대신 즐기며 피어있을 철쭉을 상상하며 걸으면 되지. 이래서 다음에 또 올 구실을 만드는거지.
10여분 더 올라가니 왼쪽 으로 바래봉이다.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뒤집어 놓은듯 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높이가 1165 미터이지만 우리가 올라오기 시작한 축산연구소가 이미 700 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실제로 우리가 걸은건 청계산 오른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부터 오른쪽으로 팔랑치 철쭉능선이란다. 팔랑치란 이름은 8명의 화랑이 지키던 곳이란데서 유래되었다는데 이름이 한자어이면서도 순수한 우리말같아 정겹다.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놓치기 아까운 영상물을 카메라에 담는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맛있는 땅콩을 제공하는 카메라맨 한병근이를 같이 오자고 할걸 하는 생각이 난다.
나무계단으로 연결된다. 주변이 모두 철쭉군락지이다. 꽃이 활짝 피었을땐 장관이었겠구나. 대신에 남쪽으로 눈을 돌려 동서로 길게 펼쳐저있는 지리산능선을 본다. 동쪽의 천왕봉부터 오른쪽의 노고단까지. 언젠가 한번은 종주를 해야 하는데...
11시밖에 않되었지만 배도 출출하고 시간도 여유가 있어 넓다란 잔디밭에 둥그렇게 앉아 이른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신해순, 정만호, 민일홍의 술 삼총사는 소주도 맛있게 마시고, 여학생들은 진짜 여학생으로 돌아가 노래자랑을 하고.
12시가 채않되어 하산길. 그야말로 심마니들이나 걷는 길인듯 싶다. 가파른 내리막길이라 나무도 잡고 철조망도 여러번 넘어야하고 조심해서 내려와야하는 길이지만 인적이없는 전인미답의 깨끗한 길이다. 작년에 꺽정이회장이 개발해놓은 길이란다. 지저귀는 새소리도 귀엽다. 4박자로 우는 "쪽박바꿔새" 소리가 유난하다. 옛날 지지리도 가난했던시절 시어머니한테 구박받고 쪼끄만 쪽박으로만 밥을 지어야 했던 며느리가 죽어서 환생한 새라는 게 꺽정이설명인데, 맞은 얘기겠지?
심마니 김상건과 민일홍, 정만호는 더덕을 캔다. 크지는 않지만 향기가 서울에서 보는 더덕과는 비교가 않된다. 짓찌어 술에 넣는다. 천연 더덕술이 된다. 등산해서 좋고 거기다 천연 무공해 더덕술까지 즐기니 보는사람이 다 흐뭇해진다.
1시간정도 내려왔을까? 팔랑마을이다. 10여채가 채 않되는 작은 마을이다. 집앞까지 차도 들어오고 물론 전기도 들어온다. 그러나 이곳은 꿀을 만들어 파는게 주업으로 보인다. 꿀치는 상자가 많이 눈에 띈다. 그야말로 진짜로 믿을 꿀이라면 두어병 사가고 싶은데, 꺽정이회장 말씀, 절대로 사지말란다. 한사람한테 잃은 신용의 무서움을 이사람들한테 알으켜 줄 방도는 없을까?
평상에서들 앉아 막걸리로 목들을 추긴다. 안주는 고사리 나물과 개발딱지나물. 햐! 개발딱지나물이라. 이름도 희한하다. 쌉싸름 매콤한게 괜챦은 맛이다. 종지에 아무렇게나 내어놓인 걸 보니 왠지 안되어 보인다. 예쁜 유리병에 담아 판다면 몇병쯤 살수도 있을 터인데....
꿀과 개발딱지나물을 보면서 일본의 一村一品생각이 난다. 예쁜여자아이 아무렇게나 내돌리는것같은 애처러움이다.
넓은 길을 따라 내려오니 2시반경 산내면내령리 계곡모텔입구에 이른다.
뻐스가 기다리고 있어야하는데 3시가 가까워도 오지 않고 핸드폰도 연락이 않되고. 한쪽에선 막걸리를 즐기고 있지만 꺽정이회장과 이상훈이가 애를 태운다. 김옥건이가 갖이고 온 차가있어 겨우 저쪽에서 뻐스를 발견하여 데리고 온다.
차에 오르자 모두들 조용히 취침. 4시에 덕유산 휴게소라고 깨운다. 잠깐 부친 낯잠이 꿀맛이다.
피로도 확 풀린기분. 나누어주는 부라보 콘 하나씩 먹고 다시출발하면서 재주꾼 이재상의 사회로 남.여 대항 동요부르기시합. 동요란 동요는 다 튀어나온다. 노준용이는 좋은 기억력을 발휘하여 청팀을 리드하고 박정애는 꽉 맥힌 목소리로도 홍팀을 리드한다. 심한 감기로 김양자의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래일은 래일이고 오늘은 오늘이라는듯이 원기왕성하게 리드한 덕분에 홍팀을 승리로 이끈다.
경기도에 들어선다. 톨게이트에 도착하는 시간맟추기를 김풍자가 제안한다. 그때시각이 6시 25분쯤.
7시 15분부터 8시15분까지 다양한 답이나온다. 7시 20분대가 가장 많다. 정답자에게는 김진국회장의 큰상이 있단다. 너무 밀리지않고 쭉쭉 달리는 바람에 조금은 밀렸으면 하는 눈치들이다.
정확히 6시 55분에 톨게이트에 도착하고 수서역엔 7시 15분에 도착한다. 아무도 맟추지 못했지만 시원하게 달려온 것에 만족한다. 꺽정이회장이 저녁을 낸단다. 최근 여학생들의 출석율이 양호하여 기분이 좋단다. 모두들 우루루 근처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를 한다.
30여시간의 1박2일 지리산 여행이 이렇게 즐겁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