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波息笛 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가시밭 길 - 민족의 아픔
모세의 기적(Mose's miracle)처럼 바닷물이 갈라져 바다에 길이 생긴다는 진도에 있다는 신비의 바다를 보러 갔었다. 그런데, 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본래 목적이었던 신비의 바닷길보다 더 감동을 받은 것은 그 곳 출신의 수필가가 정성껏 설명 붙여 안내해준 진도, 땅 끝 마을 해남, 강진, 벌교, 정읍 등 역사기행이었다. 고려 때 원의 침략에 끝까지 투쟁한 삼별초의 흔적과, 임진왜란 때 왜구와 싸워 이긴 이순신 장군의 승전이며 동학, 항일 독립운동, 여수 순천사건, 6.25 당시 지리산의 빨찌산 등 우리민족의 시대적 아픔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본인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전라도 땅과는 전혀 인연이 없이 살아오다가 태백산맥, 토지 등의 소설을 읽고 감동하여 지리산에는 여러 차례 가 본적이 있었다
.
그런데 이번 역사 기행에서 아픈 우리 역사를 상기시키는 과거로의 여행에 아픔을 더한 것은 우리 일행들 중 나이 든 몇 분의 상반되는 이야기들이다.
평안도 출신 65세 남자는 중학생 시절 공산당들이 목사였던 아버지를 개 끌듯 끌고 가 총살하는 장면을 잊을 수 없고, 북한 공산당을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나이의 전라도 출신의 남자의 사연은 다르다. 밤이면 빨찌산이 내려오고 낮이면 경찰과 토벌군이 찾아 와 괴롭히는 동네에서 어느 날 그의 아버지를 공산당이라며 마을 주민들이 달려들어 아버지를 죽였단다. 온전한 신체 부분을 찾을 수 없어 나무토막 하나 넣어 무덤을 만들어 놓고 그 마을을 떠나 후 22년간은 한번도 고향을 찾아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북에서 피난 와 지난 학기 은퇴한 한 교수의 아버지도 공산당에게 잡혀 총살 장소로 가던 중 동네 어른이 작은 소동을 피워 시선을 돌리게 한 후 자기가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씌워 구덩이에 밀어 넣어 죽음을 면해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민주화 투쟁으로 여러번 옥살이를 한 30대는 아버지가 빨갱이에게 협력했다는 것 때문에, 잡혀가기만 하면 본인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심한 고문을 해서 죽은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한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중 휴게소 텔레비젼으로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을 보았다. 진도에서만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 것이 아니라 50년만에 가족을 만나러 금강산 가는 이들에게는 그 길이 바로 모세의 기적의 바닷길일 것이다. 이제 다 늙어서 혼자 걸어가지 못 하고 휠체어에 앉아 도움을 받아 상봉장소로 들어가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그들이 너무나도 오래 기다렸다는 게 죄송했다. 이제 가족을 만난 사람들의 인사가 "이렇게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라는데도 아직도 한편에서는 "주적론'이니 "상호주의론"을 펴면서 남북문제에 제동을 걸어 이산 가족 상봉을 지체시킨다니 말이 안된다.
"꽃다운 나이에 결혼해 50년 넘게 헤어져 지냈건만 두 노인의 사랑은 애틋했다" 라고 시작한 " 수절 할머니 52년만의 바가지"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는 애틋하기보다 가슴을 찌르는 것 통증을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 74세 할머니의 75세 나이로 1944년 결혼해 신랑 나이 22세 각시 나이 23세에 아기도 나아보지 못하고 헤어져 이제 52년만에 만나보니 신랑은 재혼하여 애들도 5남매란다. 그 할머니는 "불쌍한 시어머니를 두고 어떻게 다른 집에 가느냐"는 것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바보스운 여인이다. 안 돌아올지도 모를 한 남자를 기다리며 그 남자가 두고 간 다른 여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그 긴 세월을 살아왔다니. 그 삶을 그 할머니는 " 가시밭길도 그런 가시밭길은 없어라우, 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길을 훠이훠이 걸어 왔는디"라고 표현했다.
" 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가시밭길"을 휘이훠이 걸어 간 이 할머니의 청춘과 위에 적은 네분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남과 북이 50년간 걸어 온 아픔일 것이다..
삼별초가 원에 대항하던 돌 성벽을 구경하는데 그 성벽 높은 곳 돌 사이로 보이던
늘어진 노오란 들 꽃 한송이가 이 할머니의 삶 같다.
어찌 어디 그 작은 씨앗 하나 놓을 곳 못 찾아
그 높은 성벽 돌과 돌 사이에서
꽃 한송이를 피웠단 말인가.
먼 고향 땅 처자식 그리는 원나라 병사의 외로움의 눈물
제 땅 제 처자식 하나 지키지 못해
비분에 떠는 고려청년의 통탄의 눈물
같은 마을 친구 적이라 죽이고 죽였던
한반도 젊은이들 원한의 눈물방울
모두 모여 이 꽃 한 송이 성벽에 피웠는가.
참고: 만파식적은 신라 신문왕 때 있었다고 하는 신기한 피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데
동해섬에 있는 신기한 대나무로 만들었고 이것을 불면 나라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고 함,
모세의 기적(Mose's miracle)처럼 바닷물이 갈라져 바다에 길이 생긴다는 진도에 있다는 신비의 바다를 보러 갔었다. 그런데, 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본래 목적이었던 신비의 바닷길보다 더 감동을 받은 것은 그 곳 출신의 수필가가 정성껏 설명 붙여 안내해준 진도, 땅 끝 마을 해남, 강진, 벌교, 정읍 등 역사기행이었다. 고려 때 원의 침략에 끝까지 투쟁한 삼별초의 흔적과, 임진왜란 때 왜구와 싸워 이긴 이순신 장군의 승전이며 동학, 항일 독립운동, 여수 순천사건, 6.25 당시 지리산의 빨찌산 등 우리민족의 시대적 아픔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본인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전라도 땅과는 전혀 인연이 없이 살아오다가 태백산맥, 토지 등의 소설을 읽고 감동하여 지리산에는 여러 차례 가 본적이 있었다
.
그런데 이번 역사 기행에서 아픈 우리 역사를 상기시키는 과거로의 여행에 아픔을 더한 것은 우리 일행들 중 나이 든 몇 분의 상반되는 이야기들이다.
평안도 출신 65세 남자는 중학생 시절 공산당들이 목사였던 아버지를 개 끌듯 끌고 가 총살하는 장면을 잊을 수 없고, 북한 공산당을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나이의 전라도 출신의 남자의 사연은 다르다. 밤이면 빨찌산이 내려오고 낮이면 경찰과 토벌군이 찾아 와 괴롭히는 동네에서 어느 날 그의 아버지를 공산당이라며 마을 주민들이 달려들어 아버지를 죽였단다. 온전한 신체 부분을 찾을 수 없어 나무토막 하나 넣어 무덤을 만들어 놓고 그 마을을 떠나 후 22년간은 한번도 고향을 찾아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북에서 피난 와 지난 학기 은퇴한 한 교수의 아버지도 공산당에게 잡혀 총살 장소로 가던 중 동네 어른이 작은 소동을 피워 시선을 돌리게 한 후 자기가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씌워 구덩이에 밀어 넣어 죽음을 면해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민주화 투쟁으로 여러번 옥살이를 한 30대는 아버지가 빨갱이에게 협력했다는 것 때문에, 잡혀가기만 하면 본인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심한 고문을 해서 죽은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한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중 휴게소 텔레비젼으로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을 보았다. 진도에서만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 것이 아니라 50년만에 가족을 만나러 금강산 가는 이들에게는 그 길이 바로 모세의 기적의 바닷길일 것이다. 이제 다 늙어서 혼자 걸어가지 못 하고 휠체어에 앉아 도움을 받아 상봉장소로 들어가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그들이 너무나도 오래 기다렸다는 게 죄송했다. 이제 가족을 만난 사람들의 인사가 "이렇게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라는데도 아직도 한편에서는 "주적론'이니 "상호주의론"을 펴면서 남북문제에 제동을 걸어 이산 가족 상봉을 지체시킨다니 말이 안된다.
"꽃다운 나이에 결혼해 50년 넘게 헤어져 지냈건만 두 노인의 사랑은 애틋했다" 라고 시작한 " 수절 할머니 52년만의 바가지"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는 애틋하기보다 가슴을 찌르는 것 통증을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 74세 할머니의 75세 나이로 1944년 결혼해 신랑 나이 22세 각시 나이 23세에 아기도 나아보지 못하고 헤어져 이제 52년만에 만나보니 신랑은 재혼하여 애들도 5남매란다. 그 할머니는 "불쌍한 시어머니를 두고 어떻게 다른 집에 가느냐"는 것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바보스운 여인이다. 안 돌아올지도 모를 한 남자를 기다리며 그 남자가 두고 간 다른 여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그 긴 세월을 살아왔다니. 그 삶을 그 할머니는 " 가시밭길도 그런 가시밭길은 없어라우, 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길을 훠이훠이 걸어 왔는디"라고 표현했다.
" 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가시밭길"을 휘이훠이 걸어 간 이 할머니의 청춘과 위에 적은 네분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남과 북이 50년간 걸어 온 아픔일 것이다..
삼별초가 원에 대항하던 돌 성벽을 구경하는데 그 성벽 높은 곳 돌 사이로 보이던
늘어진 노오란 들 꽃 한송이가 이 할머니의 삶 같다.
어찌 어디 그 작은 씨앗 하나 놓을 곳 못 찾아
그 높은 성벽 돌과 돌 사이에서
꽃 한송이를 피웠단 말인가.
먼 고향 땅 처자식 그리는 원나라 병사의 외로움의 눈물
제 땅 제 처자식 하나 지키지 못해
비분에 떠는 고려청년의 통탄의 눈물
같은 마을 친구 적이라 죽이고 죽였던
한반도 젊은이들 원한의 눈물방울
모두 모여 이 꽃 한 송이 성벽에 피웠는가.
참고: 만파식적은 신라 신문왕 때 있었다고 하는 신기한 피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데
동해섬에 있는 신기한 대나무로 만들었고 이것을 불면 나라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