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후에 빠른 사회 변화 속에서 우리는 소년 시절을 보냈고, 그 당시 막 쏟아져 들어오는 미국 문물을 배우며 우린 성장했다. 청장년기에는 제2의 물결이라는 산업사회의 한가운데에 빠져 정신 없는 세월을 보낸 듯하다. 어느덧 세월은 흐르고 우리 이제 나이 들어 어른이 되니 세상은 또 다시 물결을 달리해서 지식 정보화 사회로 치닫고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노인을 공경하라고 배웠고, 나 보다 나이 더 먹은 사람을 윗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동네 어른은 물론이고 길에서 지나는 어르신을 만나도 자신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생각하며 고개 숙여 대했다. 그 시절은 유교적인 윤리가 지배하던 시대였고, 우리는 어른들의 연륜과 경륜을 존중하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젊은이들 의식 속에는 경륜이란 단어는 자전거 레저일 뿐이며 퇴색되어 잊혀진 옛 말이 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십대나 삼십대 사장이나 기업가를 생각하기 어려웠지 않는가. 지난 세월 쌓은 경륜은 의미가 없어지고 나이 많은 사람은 곧 무능한 사람, 쓸모 적은 사람으로 인식되어가는 이 사회는 앞으로 어쩌면 어른들은 필요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싶다.
이제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그 사람은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고 얼마만큼 노력하여 자신에 인생을 닦아온 사람인가로 평가하는 부분은 약해지고, 그 사람의 순간적인 이미지를 보고 평가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한 때문인가. 성형수술로 얼굴을 고치면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믿는 세상이다. 엄마들이 딸들을 데리고 압구정동 성형외과에 줄을 서고, 남녀노소가 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미지 변신으로 평가의 우위를 차지하려는 노력이 아니겠는가.
57, 8년 사는 동안 세월 따라 시대는 자꾸 변하는데 이에 대처할 지식은 박약하고 눈은 어두워지고 사고의 유연성은 떨어지니 이를 어쩌나. 생각을 말아야지 괜한 생각에 걱정도 팔자다. 앞으로 남은 여생에 의복가지 마련해서 깨끗이 입고, 이빨이나 잘 고쳐서 음식이나 잘 씹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도 해보지만, 또 순간 내 살던 습관으로 욕심껏 엉뚱한 생각, 쓸데없는 얘기하고 한 이틀씩 후회하기도 하는 것이 지금 나의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