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손님은 단순하게는 마마손님부터,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포함한다.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오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 손님이고 6.25때 남북한 모두가
민주주의나 맑스주의나 그들 모두가 저희 태가 묻힌 땅을 피로 물들이고
꿈에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서, 그 떠도는 혼들, 그
많은 검은 유령들의 상처와 모욕의 기억들, 기이한 번제와 광기의 기억들로
부터 놓여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당신과 나는 떠도는 유령이고,
"손님"이라고 .
이 소설에서는 특이하게도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지도 않고,
화자는 어느 누군가의 관점이나 일인칭으로 고정되지 않고
등장 인물 각자의 시점에 따라 서로를 교차하여 그렸다.
여기서는 황해도 짖지노귀굿 열두 마당을 기본으로 하여
굿판에서처럼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등장하고 그들의 회상과 이야기도
제각각이다.
작가의 본뜻은 아직도 한반도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들을 이 한판 굿으로 화해와 상생의 새세기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사실상 무서운 "손님마마님"은 아직도
미국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작가는 내비치고 있다.
꼭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포함한다.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오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 손님이고 6.25때 남북한 모두가
민주주의나 맑스주의나 그들 모두가 저희 태가 묻힌 땅을 피로 물들이고
꿈에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서, 그 떠도는 혼들, 그
많은 검은 유령들의 상처와 모욕의 기억들, 기이한 번제와 광기의 기억들로
부터 놓여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당신과 나는 떠도는 유령이고,
"손님"이라고 .
이 소설에서는 특이하게도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지도 않고,
화자는 어느 누군가의 관점이나 일인칭으로 고정되지 않고
등장 인물 각자의 시점에 따라 서로를 교차하여 그렸다.
여기서는 황해도 짖지노귀굿 열두 마당을 기본으로 하여
굿판에서처럼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등장하고 그들의 회상과 이야기도
제각각이다.
작가의 본뜻은 아직도 한반도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들을 이 한판 굿으로 화해와 상생의 새세기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사실상 무서운 "손님마마님"은 아직도
미국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작가는 내비치고 있다.
꼭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