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감하는 종착역에 이르게되면 느끼는 감회가 각자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공통되는게 있다면
무언가 매듭지어야할것을 정리해야한다는 쫒기는듯한 강박감,초조감 그리고 서두르려는 마음및 아쉬움등이교차하는것일게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창들과의 매월 산행을 돌아다보면 회상하는것자체가 즐거운 그것 자체였다고 할수 있겠다.
1월28일 72차 백운산등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1월의 등산이 이런것이겠구나하는 것을 우리 초보등산친구들에게 새롭게 경험케해준 등산이었다. 바람이 불면서 앞에 먼저걸어간 친구의 발자국이 지워지고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새로운 경험을 오십넘어 처음해보니 고맙게만 느껴진다. 내려오는 백운계곡의 나무가지마다 쌓여있는 아름다운 눈의 모습도 일품이었다.또한 등산후의 맥주와함께 뜯은 이동갈비의 맛도 서울근처의 포천이동갈비와는 다른면이 있었다.
2월25일 73차 축령산등반
벌써 이곳에서 시산제를 지낸지가 몇번째인가? 번번이 우무일이가 축문을 도맡아 읽었고 우리모두는 돼지입에 한두장씩의 배추잎을 물리고 새해의 즐거운 산행과 건강을 빌면서 절을 했다.
다른해와 다른것이 있었다면 유난히 많이내린 눈덕분에 정상에서 하산할때에는 아예 궁둥이로 미끄럼을 타면서 동심으로 돌아갔었다는겄이다.
3월25일 74차 도봉산등반
유감스럽게도 본인이 참석을 못해 무얼쓸지를 모르는것이 미안하다.
4월22일 75차 모악산등반
김제 만경평야의 젖줄의 근원이 되는 산이란다. 백제유민들의 망국의 한을 내세에서나마 풀어준다는 미륵의 꿈이 담겨있어 현세의 고통을 그나마 풀어줄수있는 마음의 위안이되는 그야말로 어머니와 같은 산에 오르니 김제는 물론 전주시도 바로 눈아래에 펼쳐진다.
잠시 둘른 금산사의 웅장함에서 오히려 삼한통일위업의 꿈을 접어야했던 견훤의 쓸쓸했던 말년을 떠올리면서 예나 지금이나 수신제가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5월27일 76차 고대산등반
오래간만에 기차로 왕복을하는 즐거움을 갖었던 등산. 그러나 만나기로햇던 도봉산역플래트홈에 30초가 늦어 떠나가는기차와 친구들의 모습을 처다보기만 하여야 했던 박정애의 망연자실한 얼굴모습도 인상적이었던 등산이었다.
좌로는 연천평야가, 우로는 철원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저쪽북쪽으로는 갈수없는 평강산하가 우리가슴을 묘하게하였던 고대산정상에서의 감회였다.
6월 감악산등산부터의 산행은 이미 기록을 해두었으니 회상은 생략을하고 오늘의 남한산성산행이나 정리해보자.
1년만에 둔촌동 보성고등학교 문앞에서 10시에 만나기로하였다.
꺽정이회장은 이번에도 그저께에 산행사전답사는 물론 식당의 메뉴및 노래방시설비까지 점검을 하고 배차까지 완료해놓는 열성을 보여주었다. 10시에 뻐스안을 들여다보니 옹기종기모여 잡담들을 나누고 있었다. 주환중,박효범,김윤종,강기종,위광우,이재상,정숙자,진영애,방유정,이성희,이상훈,민일홍,정태영,정기봉,김상건,김영길,송인식,김수관이가 얼른 눈에 띄였고 오래간만에 임승빈이가 나와서 좌정하고 있었다.
임승빈이는 1월에 나오고 이번에 나오니 일단 시작과 끝은 분명히하는 사나이이다.
잠깐 사이를두고 전대식이가 나타난다, 내기억으로는 동창회모임이거나 어떤모임이거나간에 처음 보는것같다. 어쨋던 큰결심을하고 나왔으니 환영할만하다.
곧이어 김진국,황정환,이석영,박정애,이영식,조병희,우무일,이명원.이종건,박영섭,박정애,정영경이가 나타나니 본인까지 32명의 대부대가 된다.
10시15분 출발하여 30분에 하남시에 위치하고있는 선법사에 도착.
자그마한 절이다. 한겨울의 을시녕스러움이 초라한 산사의 모습을 더욱 을시녕스럽게 한다.
12월하순의 날씨로는 바람도 않부는 따듯한 날씨인데에도 불구하고말이다.
좌로는 멀짜감치 검단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옛날 위례성터위에 그린벨트때문인지 축사 혹은 물류창고같은것을 잔뜩지어놓았다. 선거앞두고 벨트를 해제하면 무언가를 막들 짛겠지....
그너머에는 우리가 애용하던 산성서문으로 가는 능선이 길게 누어있다.
11시45분 부리나케 독수리가 앉아있는 모습의 바위가 있는 수리봉에 도착하니 어느새 임승빈, 강기종, 민일홍이가 땀을 씻다가 냉큼 방을 비워준다.
김윤종이와 그의 아들 귀동이,송인식,박정애도 얼른 차 한잔씩하고 그들 뒤를 따른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젊은 애들과 만난다. 보기에 너무도 좋아 보인다.
맨몸으로 등산하는것도 힘들어 하는 판인데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다니...
그런데 정영경이도 그 MTB를 한다는거다. 지난 3월부터. 와! 갑자기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워 보인다.
깔딱고개를 지나 벌봉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지난다.
간단하게들 주점부리들을 하고 허물어진 산성옆을 내려온다.
이곳 산성은 본성의 외성으로서 숙종때에 축성한것이다.
병자호란을 겪고나서 남한산성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것을 막기위한 외성인것이다.
누구말마따나 소잃고 고친 외양간같은 성이다.
말이나왔으니 말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쌍하고 원통스러운 역사가 서려있는곳이 이곳 남한산성이다.
대세를 읽지못하고 쓸데없는 명분에 집착한나머지 실리를 방기한 우리옛 엘리트가 낳은 참혹스러운 역사의 장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살을 에는것같은 허허벌판 삼전도에서의 치욕은 일부지도계층의 자업자득이라고 치자. 인구의 절반이 왜놈들의 총칼에, 굶주림에,창궐하는 전염병에 죽고난지 37년만에 이땅의 우리 불쌍한 선조들은 이번엔 또 북쪽 만주벌판으로 끌려간다.
젊은 남녀들은 노예로 팔리고 그렇지못한 일부는 겨우겨우 마련한 고향자식들의 황금과 교환된다.
그리던 고향에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었던것은 화냥년(還鄕女)라는 기가차는 이상한 레테르다.
에이! 쓸데없는 구질스러운 상념일랑 걷어 치우고 얼른 내려가자.
후따닥 내려오니 1시10분이 채 될까말까다. 성문사다. 절은 엉성해도 부처님은 아주 크게 잘 건립해 놓았다. 내려오는 후미조들을 기다리려니 땀이식으면서 추위를 느끼게된다.
참갈비집에 도착하니 2시 가까이된다.
이향숙이가 평상복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임승빈이는 밥도 못먹고 귀국하는 따님영접차 먼저 떠나고.
갈비구위와 냉면 그리고 된장국끼지 먹고 나니 돈 만원씩내고 너무 호사하는것 아닌가하는 마음이다.
분위기메이커상이 있다면 당연히 이재상에게다. 입심도 좋다. 오늘은 김영길이도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것같다. 남자에게는 눈을 즐겁게하는 여자가, 여자에게는 귀를 즐겁게하는 남자가 제일이라고 박정애가 갈파를 하는데 그럼 오늘의 킹과 퀸은 누구??
식사후 그동안 너무 너무 수고가 많았던 주환중회장의 폭탄사임발언에 한때 긴장이 고조.
강기종. 이상훈, 정태영,황정환,이승희등 5명을 기존 운영위원회에 보강을 하면서 꺽정이회장의 재추대승락을 받게되었다. 그동안 300% 아니 500%의 수고로 많은시간과 노력을 하는걸 우리 친구모두는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퍼센티지를 조금 낮추어도 좋으니 상당기간 회장사임 얘기하지마시고 친구들도 농담삼아라도 회장님 심기 불편한 얘긴 삼갑시다.
지난 1년간 이성희,강기종, 김수관,송인식,조병희가 한번도 빠지지않고 개근을 하였다.
우등상보다도 값진게 개근상 아닌가?
축하하고 부상으로 고아텍스 파카가 부상으로 수여된다.
10번이상 참석자로는 이석영, 김상건, 김윤종, 신해순,심항섭,이상훈등 6명이며
9번이상 출석자가 민일홍,박효범, 김용호,정기봉, 정태영등 5명이다.
이들중 김상건, 김용호,만일홍, 정기봉에게도 등산화가 부상으로 주어진다.
이렇게 식사와 간단한 회의를 마치니 3시30분.
옆방의 노래방으로 이동하는걸 보면서 .......
P.S. 노래방에는 김용호가 나타났단다.
노래방과 그 이후의 소식도 꼬리를 달아주었으면......
무언가 매듭지어야할것을 정리해야한다는 쫒기는듯한 강박감,초조감 그리고 서두르려는 마음및 아쉬움등이교차하는것일게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창들과의 매월 산행을 돌아다보면 회상하는것자체가 즐거운 그것 자체였다고 할수 있겠다.
1월28일 72차 백운산등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1월의 등산이 이런것이겠구나하는 것을 우리 초보등산친구들에게 새롭게 경험케해준 등산이었다. 바람이 불면서 앞에 먼저걸어간 친구의 발자국이 지워지고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새로운 경험을 오십넘어 처음해보니 고맙게만 느껴진다. 내려오는 백운계곡의 나무가지마다 쌓여있는 아름다운 눈의 모습도 일품이었다.또한 등산후의 맥주와함께 뜯은 이동갈비의 맛도 서울근처의 포천이동갈비와는 다른면이 있었다.
2월25일 73차 축령산등반
벌써 이곳에서 시산제를 지낸지가 몇번째인가? 번번이 우무일이가 축문을 도맡아 읽었고 우리모두는 돼지입에 한두장씩의 배추잎을 물리고 새해의 즐거운 산행과 건강을 빌면서 절을 했다.
다른해와 다른것이 있었다면 유난히 많이내린 눈덕분에 정상에서 하산할때에는 아예 궁둥이로 미끄럼을 타면서 동심으로 돌아갔었다는겄이다.
3월25일 74차 도봉산등반
유감스럽게도 본인이 참석을 못해 무얼쓸지를 모르는것이 미안하다.
4월22일 75차 모악산등반
김제 만경평야의 젖줄의 근원이 되는 산이란다. 백제유민들의 망국의 한을 내세에서나마 풀어준다는 미륵의 꿈이 담겨있어 현세의 고통을 그나마 풀어줄수있는 마음의 위안이되는 그야말로 어머니와 같은 산에 오르니 김제는 물론 전주시도 바로 눈아래에 펼쳐진다.
잠시 둘른 금산사의 웅장함에서 오히려 삼한통일위업의 꿈을 접어야했던 견훤의 쓸쓸했던 말년을 떠올리면서 예나 지금이나 수신제가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5월27일 76차 고대산등반
오래간만에 기차로 왕복을하는 즐거움을 갖었던 등산. 그러나 만나기로햇던 도봉산역플래트홈에 30초가 늦어 떠나가는기차와 친구들의 모습을 처다보기만 하여야 했던 박정애의 망연자실한 얼굴모습도 인상적이었던 등산이었다.
좌로는 연천평야가, 우로는 철원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저쪽북쪽으로는 갈수없는 평강산하가 우리가슴을 묘하게하였던 고대산정상에서의 감회였다.
6월 감악산등산부터의 산행은 이미 기록을 해두었으니 회상은 생략을하고 오늘의 남한산성산행이나 정리해보자.
1년만에 둔촌동 보성고등학교 문앞에서 10시에 만나기로하였다.
꺽정이회장은 이번에도 그저께에 산행사전답사는 물론 식당의 메뉴및 노래방시설비까지 점검을 하고 배차까지 완료해놓는 열성을 보여주었다. 10시에 뻐스안을 들여다보니 옹기종기모여 잡담들을 나누고 있었다. 주환중,박효범,김윤종,강기종,위광우,이재상,정숙자,진영애,방유정,이성희,이상훈,민일홍,정태영,정기봉,김상건,김영길,송인식,김수관이가 얼른 눈에 띄였고 오래간만에 임승빈이가 나와서 좌정하고 있었다.
임승빈이는 1월에 나오고 이번에 나오니 일단 시작과 끝은 분명히하는 사나이이다.
잠깐 사이를두고 전대식이가 나타난다, 내기억으로는 동창회모임이거나 어떤모임이거나간에 처음 보는것같다. 어쨋던 큰결심을하고 나왔으니 환영할만하다.
곧이어 김진국,황정환,이석영,박정애,이영식,조병희,우무일,이명원.이종건,박영섭,박정애,정영경이가 나타나니 본인까지 32명의 대부대가 된다.
10시15분 출발하여 30분에 하남시에 위치하고있는 선법사에 도착.
자그마한 절이다. 한겨울의 을시녕스러움이 초라한 산사의 모습을 더욱 을시녕스럽게 한다.
12월하순의 날씨로는 바람도 않부는 따듯한 날씨인데에도 불구하고말이다.
좌로는 멀짜감치 검단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옛날 위례성터위에 그린벨트때문인지 축사 혹은 물류창고같은것을 잔뜩지어놓았다. 선거앞두고 벨트를 해제하면 무언가를 막들 짛겠지....
그너머에는 우리가 애용하던 산성서문으로 가는 능선이 길게 누어있다.
11시45분 부리나케 독수리가 앉아있는 모습의 바위가 있는 수리봉에 도착하니 어느새 임승빈, 강기종, 민일홍이가 땀을 씻다가 냉큼 방을 비워준다.
김윤종이와 그의 아들 귀동이,송인식,박정애도 얼른 차 한잔씩하고 그들 뒤를 따른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젊은 애들과 만난다. 보기에 너무도 좋아 보인다.
맨몸으로 등산하는것도 힘들어 하는 판인데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다니...
그런데 정영경이도 그 MTB를 한다는거다. 지난 3월부터. 와! 갑자기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워 보인다.
깔딱고개를 지나 벌봉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지난다.
간단하게들 주점부리들을 하고 허물어진 산성옆을 내려온다.
이곳 산성은 본성의 외성으로서 숙종때에 축성한것이다.
병자호란을 겪고나서 남한산성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것을 막기위한 외성인것이다.
누구말마따나 소잃고 고친 외양간같은 성이다.
말이나왔으니 말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쌍하고 원통스러운 역사가 서려있는곳이 이곳 남한산성이다.
대세를 읽지못하고 쓸데없는 명분에 집착한나머지 실리를 방기한 우리옛 엘리트가 낳은 참혹스러운 역사의 장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살을 에는것같은 허허벌판 삼전도에서의 치욕은 일부지도계층의 자업자득이라고 치자. 인구의 절반이 왜놈들의 총칼에, 굶주림에,창궐하는 전염병에 죽고난지 37년만에 이땅의 우리 불쌍한 선조들은 이번엔 또 북쪽 만주벌판으로 끌려간다.
젊은 남녀들은 노예로 팔리고 그렇지못한 일부는 겨우겨우 마련한 고향자식들의 황금과 교환된다.
그리던 고향에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었던것은 화냥년(還鄕女)라는 기가차는 이상한 레테르다.
에이! 쓸데없는 구질스러운 상념일랑 걷어 치우고 얼른 내려가자.
후따닥 내려오니 1시10분이 채 될까말까다. 성문사다. 절은 엉성해도 부처님은 아주 크게 잘 건립해 놓았다. 내려오는 후미조들을 기다리려니 땀이식으면서 추위를 느끼게된다.
참갈비집에 도착하니 2시 가까이된다.
이향숙이가 평상복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임승빈이는 밥도 못먹고 귀국하는 따님영접차 먼저 떠나고.
갈비구위와 냉면 그리고 된장국끼지 먹고 나니 돈 만원씩내고 너무 호사하는것 아닌가하는 마음이다.
분위기메이커상이 있다면 당연히 이재상에게다. 입심도 좋다. 오늘은 김영길이도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것같다. 남자에게는 눈을 즐겁게하는 여자가, 여자에게는 귀를 즐겁게하는 남자가 제일이라고 박정애가 갈파를 하는데 그럼 오늘의 킹과 퀸은 누구??
식사후 그동안 너무 너무 수고가 많았던 주환중회장의 폭탄사임발언에 한때 긴장이 고조.
강기종. 이상훈, 정태영,황정환,이승희등 5명을 기존 운영위원회에 보강을 하면서 꺽정이회장의 재추대승락을 받게되었다. 그동안 300% 아니 500%의 수고로 많은시간과 노력을 하는걸 우리 친구모두는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퍼센티지를 조금 낮추어도 좋으니 상당기간 회장사임 얘기하지마시고 친구들도 농담삼아라도 회장님 심기 불편한 얘긴 삼갑시다.
지난 1년간 이성희,강기종, 김수관,송인식,조병희가 한번도 빠지지않고 개근을 하였다.
우등상보다도 값진게 개근상 아닌가?
축하하고 부상으로 고아텍스 파카가 부상으로 수여된다.
10번이상 참석자로는 이석영, 김상건, 김윤종, 신해순,심항섭,이상훈등 6명이며
9번이상 출석자가 민일홍,박효범, 김용호,정기봉, 정태영등 5명이다.
이들중 김상건, 김용호,만일홍, 정기봉에게도 등산화가 부상으로 주어진다.
이렇게 식사와 간단한 회의를 마치니 3시30분.
옆방의 노래방으로 이동하는걸 보면서 .......
P.S. 노래방에는 김용호가 나타났단다.
노래방과 그 이후의 소식도 꼬리를 달아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