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여름부터 올린 '심심풀이 땅콩' 시리즈를 오늘로서 마치며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고 성원해준 동문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마음이 한갓져야 글을 쓰는 건 아니로되, 나라나 경제 돌아가는 꼴이 뜻같지 않고 또 회사에 적을 두고 사는 사람으로서 회사 일에 온 힘을 기울여 전념한다해도 어려운 이 때 한가롭게 글이나 쓰고있는 자신이 사치스럽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뿐 만아니라, 우물안 개구리같은 삶을 살아온 나같은 사람에게 다른 이와 나눌만한 글감도 넉넉하지 못하여 여기서 그만 멈추기로 한 것임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 언젠가 때가 되어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면 또 여기에 올리기로 약속하면서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내 글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올려서 미쳐 생각하지 못한 구석을 돌아보게해준 동문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다가오는 새 해 동문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과 평화와 사랑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한살씩 나이를 더해갈수록 더욱 중요해 지는 게 건강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기기 쉬운 고집과 아집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질 수 있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야 되겠다는 다짐도 갖어봅니다. 해가 갈수록 욕심과 욕망을 한가지씩 접어 가기 위해서, 그리고 존경받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지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암이란 이름의 불청객
모든 큰 일이 그렇듯 이 엄청난 일도 아주 대수롭지않게 시작되었다. 올 이른 여름 회사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종합건강진단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거의 해마다 거르지 않고 건강진단을 받아 왔지만 아내가 진단을 받은 지는 여러 해가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가자고 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거나 말짱한 사람이 왜 진단을 받느냐고 뻗대는 게 싫어 얘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가볍게 말을 꺼냈다. 얘기가 길어지면 혼자 가리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예상 밖으로 순순히 그러겠다는 대답이 나왔다.
예약된 날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일상으로 돌아왔다가 결과를 듣기로 한 날 다시 병원에 갔다. 컴퓨터로 분석된 자료를 놓고 젊은 의사는 별 이상이 없다는 말과 함께 운동 열심히 하세요, 체중 줄이세요, 술 좀 줄이세요, 등 버릇처럼 되풀이되는 얘기로 진단이 끝나 갔다. 아내도 기능상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아내는 의사에게 목에 딱딱한 게 만져지는 데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지나가는 얘기처럼 물었다. 의사는 아내의 목을 여러 번 만져보더니 정밀진단을 받는 게 좋겠다고 가정의학과로 전화를 걸어 진료를 예약하였다. 갑상선에 이상 세포가 있는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아내의 목을 만져보았더니 손톱만한 덩어리가 잡혔다. 제법 딱딱하게 굳어서 마치 이물질이 들어있는 듯 했다. 아프지도 않고 아무 이상도 없어 발견한지는 오래되었는데 얘기를 안 했다는 거였다. 사실 본인도 어느날 갑자기 발견해서 이게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른다고 하였다. 가정의학과에 내려가 이른바 니들 테스트(주사기로 환부에 있는 세포를 추출해서 분석하는 시험)를 받기 위해 국소 마취를 하고 목에 주사기를 꼽았다. 그렇지 않아도 겁이 많은 아내는 목에 주사기 꼽는 것만으로도 이미 사색이 다 되었다. 일주일이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다 했다. 갑상선 기능에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겠냐고 아내를 안심시켰다.
다시 병원에 가 보니 니들 테스트 결과가 애매하여 직접 세포를 떼어내서 조직 검사를 해야겠다는 얘기였다. 그 때까지는 뭐 별일이 있을까 하고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메스로 조직을 추출해서 검사를 한다는 얘기에 기분도 언짢고 걱정도 되었다. 원자력 병원에 있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의사가 생각났다. 그 분이 갑상선 전문의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당장 데려오라는 거였다. 그래서 그 길로 원자력 병원으로 향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상해서 아는 의사를 만나 얘기를 들으니까 훨씬 마음이 놓였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길 밖에 없는데 종합병원의 젊은 의사들의 얘기는 어떤 때는 긴가민가한 경우가 있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우선 마음이 편해져서 좋았다. 건강진단을 했던 D대학 부속병원에서 떼어간 원외 진단 소견서를 살펴보고 니들 테스트를 다시 한번 해 보자고 했다. 몇 가지 방사선 촬영과 더불어 처치를 하고 며칠 뒤 결과를 보러 갔다. 검사 결과 이상 세포가 발견되었으나 악성과 양성 종양의 가운데쯤으로 분석되어 진단이 쉽지 않다는 거였다.
이런 경우는 일단 절개해서 직접 조직을 검사하여 악성이면 갑상선을 절제하고 양성이면 환부만 잘라내는 게 일반적이라는 D대학 병원과 똑 같은 소견을 내 놓았다. 긴급 조직검사의 정확도는 90% 내외이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안이 없다고 했다.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술 날짜를 잡고 담당할 의사를 소개 받아 정밀진단과 함께 몇 가지 촬영과 검사를 추가로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수술 날짜가 다가왔다. 그 때까지도 나는 아내가 나쁜 병에 걸렸으리라고는 생각하지않았다.
내 여름휴가에 맞춰 수술 날짜를 8월 2일로 잡고 수술 하루 전 병원에 입원하였다. 아무런 통증도 증상도 없이 멀쩡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서인지 도무지 실감이 나지않았다. 목에 생겼다는 그 딱딱한 부분만 도려내면 금새라도 퇴원하게 될 사람처럼 보였다. 입원한 날 저녁 성당 친구들이 부부 동반으로 병원에 몰려와 밖에 나가 웃고 떠들며 식사까지 함께했다. 마치 어디 놀러 나온 사람들 같았다. 병실에 돌아와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링거 수액을 꼽고 침상에 눕자 비로소 환자처럼 보이긴 하였으나 그 때까지도 큰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않았다.
밤 11시쯤 간호사 실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함께 불렀다. 당직의사로부터 수술에 관련된 주의사항을 들었다. 수술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불길한 결과를 모두 열거하였다. 가능성이 낮지만 출혈이 많아 죽을 수도 있다, 수술 도중 성대를 건드려 목소리가 변하거나 아주 말을 못하게 될 경우도 있다, 악성 종양이 임파나 다른 곳에 이미 전이되어 있어 수술로 치유가 불가능할 수 있다, 수술이 잘 되어도 재발 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재수술이나 방사선 치료가 필요하다는 등 용어도 생소한 여러 가지 얘기를 늘어 놓은 다음, 그걸 모두 이해했다는 확인 날인을 하라는 거였다. 기분이 몹시 언짢았으나 수술을 받으려면 다른 선택이 없었다.
불편한 잠자리에 잠을 설치고 날이 밝았다. 수술실로 안내하기 위한 보조원이 아침 8시 10분 전 이동 침대를 밀고 병실로 들어왔다. 이동 침상으로 옮겨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 입구에 이르자 “여기부터는 보호자 출입이 안됩니다”라고 무표정하게 말하며 침대를 밀고 들어가 버렸다. 아무 일 없이 잘 끝날 터이니 편하게 생각하라고 당부라도 하려고 생각했는데 그 얘기할 시간도 없이 아내는 수술실 안으로 사라지고 나만 동그마니 혼자 남았다.
집도의사에게서 예후가 좋으면 두시간 내에 수술이 끝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 시계만 들여다보며 아무 일 없기를 기도했다. 아이들과 친척, 그리고 친지들도 차례로 도착해서 수술실 밖에서 함께 기다렸다. 수술 환자들은 아내말고도 꽤 많았다. 환자를 들여보내고 계속하여 눈물을 흘리며 우는 사람도 있었다. 위독한 암으로 진단 받고 치유 가망성이 낮은 수술을 위해 어머니를 들여보낸 딸 같았다. 나처럼 아내를 들여보내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초점 없이 허공만 응시하는 중년 남자도 보였다. 모두들 심각한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도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10시가 지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속의 불안은 점점 커져 갔다. 한 사람씩 수술 환자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또 보호자가 수술실로 불려 들어가기도 했다. 초록색 수술복을 입고 수술실 문을 열고 보호자를 부르는 의사들을 볼 때마다 무슨 불길한 징조가 있는 건 아닐까 내 가슴까지 철렁 내려앉았다. 예정된 시간의 두 배가 넘는 12시가 되도록 아내에 대하여는 아무 소식도 나오지 않았다. 수술실 문 앞을 서성거리며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애를 썼다. 시간은 잔인하게 느리기만 하였다. 절개해 보니 암세포라도 발견된 걸까? 수술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다른 곳에 무슨 이상이라도 찾아낸 걸까? 한 없이 달려가는 불길한 생각을 다스리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12시 40분, 아내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나를 찾았다. 절개해서 조직검사를 해보니 암이었다, 갑상선 반만을 절제할까 생각하다가 사진에 나타난 다른 쪽 이상이 마음에 걸려 전체를 잘라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암이 발생한지는 꽤 시간이 경과한 걸로 보인다, 자세한 것은 정식 검사결과가 나와봐야 알겠다, 수술은 비교적 잘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 지금 봉합을 하고 있으니 30분쯤 있으면 나올 것이다, 이런 얘기를 전해 주었다. 그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겐 구세주의 말씀처럼 들렸다.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암이란 선고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불청객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한마디 물어본 말이 한단계씩 수위를 높여가더니 갑자기 최악의 상황으로 판명된 것이었다.
주위에 암으로 투병중인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건만 평소 그런 일은 나와는 무관한 일처럼 생각해왔다. 그러나 일순 그 일이 내 일로 다가왔다. 착잡한 마음으로 서성거리고 있는데 마취에서 회복되기 시작한 아내가 실려 나왔다. 온전한 모습으로 들어간 사람이 암 환자가 되어 정신도 못 차리고 고통을 호소하며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였다. 무엇보다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점점 심해지는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아내를 바라보기가 안타까웠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주는 일 밖에 어떻게 달리 도와줄 길도 없었다.
날짜가 지남에 따라 회복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식사도 죽에서 밥으로 바뀌고 상처도 잘 아물어 갔다. 하루가 다르게 기운도 차렸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퇴원을 맞았다. 한 보따리 약을 받고 퇴원 후 주의사항과 함께 한 달 지나고 다시 진찰을 해야 한다는 말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경과가 좋다는 얘기에 고무되어 이젠 약을 먹으며 가끔 검사만 받으면 정상으로 회복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진단에서 방사선 동위원소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또 한차례 입원하였다. 이번에는 격리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곁에 있지도 못하였다.
방사선 동위원소 치료를 받은 지도 두 달이 넘었다. 지금부터 한 달 뒤엔 다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제발 다시 입원하여 치료 받을 필요가 없도록 결과가 좋기를 기도한다. 의사들 얘기로는 갑상선 암은 다른 암과 비교하면 암 축에 들지도 않을 정도로 가볍다고 한다. 그러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는 동안 아내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또한 갑상선 암도 재발되어 몇 차례 재 수술을 받은 주위 환자들을 보면 그 병을 앓는 당사자에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연히 시작된 얘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돌변하여 병원 드나드느라고 올 여름은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한편 이렇게 발견이 되었기 망정이지 아프지 않다고 무심히 시간을 더 보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찔하다. 자기 몸과 건강을 살피고 이상이 있으면 빨리 알아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건강을 지키기 위해 평소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자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말이다.
평소 아내가 아프다는 얘기를 하면 나는 당신 죽으면 사흘 만에 다시 장가들 테니 억울하면 아프지 말라는 얘기를 농담 삼아 해왔다. 그런데 막상 아내에게 큰 병이 발견되자 그 농담을 후회하였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내의 표정이 그리 좋은 빛은 아니었지만 아프지 말라는 뜻으로 짐짓 해 온 말인데 정말 병이 중하여 예기치 않던 일이라도 생겼더라면 얼마나 통탄할 일이었을까,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시는 이 농담을 입에 올리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궂은 일 좋은 일 같이 겪으며 평생을 함께 살아 온 아내, 죽을 때도 서로 한 두 달 차이로 나란히 하느님 나라에 들 수 있으면 좋겠다. ( 2001. 11. 27.)
- 우리 모두 늘 건강하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