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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건

 
   가기 싫은 곳 얘기가 나왔으니, 내친 김에 검찰청 이야기도 마저 해보자. 이미 말했듯이 경찰이니 검찰이니 이런 데는 정말 가고싶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회사 일 때문에 한동안 셀 수없이 여러 번 검찰에 드나든 적이 있다. 신문에도 큰 기사로 보도되었던 사건이 내가 근무하던 회사, 내가 담당하던 부서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었다.
 
   1989년 나는 한 전자회사의 재경담당 상무이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그 때 일어났다. 그 날은 아무 징후도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자금과장이 내게 대수롭지 않은 보고를 했다. 출납담당 사원이 아무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평소 성실하고 깔끔한 업무처리로 신임이 두터웠던 여사원이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도 받지않고 오전이 지나가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고였다. 무슨 사고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오후가 되자 비상 열쇠로 금고를 열고 자금과장이 확인을 시작했다. 현금 잔액, 유가증권, 심지어는 수입증지까지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했다. 책상 서랍, 금고, 파일 박스 모두 깨끗이 정돈된 채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시골에 있는 집에도 연락을 취했으나 아무 연락도 없다고 했다.
 
   그 다음날 아침 역시 아무 연락도 없이 그 출납 직원은 회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취 집으로 동료 사원을 보내 봤지만 방문이 밖에서 잠겨있는 걸로 보아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는 보고였다.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다음 날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경찰을 통하여 혹 신원불명의 사건 사고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그 날 오후 거래은행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회사에서 발행되어 교환 결제된 어음 한 장에 은행거래 인감과 다른 도장이 찍혀있으니 인감을 보내달라는 전화였다. 약속어음 번호, 발행일자, 금액 등을 확인한 결과, 어음 발행 기록이 없었고 부표를 찾아보니 그것은 폐기어음 이어야 마땅했다. 사채시장에서 할인된 듯이 보이는 이 어음은 3천만원이 넘는 큰 금액이었다.
 
   사고가 아니라 계획된 사건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평소 그의 근무태도로 보아 계획된 사건으로 믿어지지 않았지만 눈 앞에 나타난 약속어음 한 장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알아본 결과  3일전 대만으로 출국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확실한 사건이었다. 그 다음 한달간은 나는 회사원이 아니라 수사요원으로 활동할 수 밖에 없었다.
 
   사건 내용을 요약하여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나 정확한 피해액수를 알 길이 없었다. 그 어음 한 장만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어음 부표에서 여러 장의 폐기어음이 발견되었지만 거기 적힌 “폐기”란 두 글자는 어떤 정보도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그 부표에 붙어 있어야만 할 폐기된 어음 실물이 거기 없다는 사실이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밝혀진 내용만 정리하여 사내에 보고하고 검찰에 고발하였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고발 접수와 동시에 해당사원이 출국했다는 이유로 기소중지 처분을 하였다. 입국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조치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입국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 사원과 교제했다던 남자에 대한 신원을 파악하여 알아보니 같은 비행기로 출국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두 사람의 주민등록 사항을 비롯한 여권, 출입국, 국제전화 통화내역 등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백방으로 연락하는 한편, 출국한 뒤의 행선지를 찾기 위하여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였다. 내가 직접 아는 사람은 물론 그들이 아는 사람들까지 모두 연락하여 도움을 청하고 본격적으로 정보를 캐갔다.
 
   담당 검사와 형사는 수사에는 손도 안 대고 도대체 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길래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추궁했고, 회장실에서도 내부 공모자가 없이 어떻게 일개 출납사원이 이런 일을 일으킬 수 있느냐고 이것 저것을 따져 물어왔다. 나는 이런 질문에 답할 여유가 없었다. 회장을 뵙고 답답하시겠지만 참아달라, 지금은 사건 해결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때지 발생경위를 따지는 일은 도움이 안 된다, 내부 협조자는 없으니 나를 부르지 말고 계획대로 수습하도록 지원해달라, 이렇게 간청하였다.
 
   한가지씩 정보가 확인되어 갔다. 우선 서울을 떠난 둘이 대만을 거쳐 방콕으로 들어 갔다가 싱가폴을 들러 홍콩으로 떠난 것까지 추적되었다. 공범으로 보이는 남자는 그 직원 고향친구의 남편으로 오랫동안 가까이 사귀어 왔으며, 조사된 국제전화 통화 기록 가운데 도주 직전 마닐라의 특정번호에 집중 통화한 사실이 두드러졌다. 뿐만 아니라 마닐라에 세 번이나 다녀 온 사실도 밝혀졌다. 그러나 그 이상 정보 추적은 진전되지 않았다. 영사관을 통한 홍콩출입국사무소 접촉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행선지가 오리무중이었고, 의심이 가는 마닐라 입국 여부도 뜻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 사이 한 장씩 두 장씩 은행을 통하여 교환 회부되는 부정 어음이 16장, 금액으로는 6억 7천만원에 이르렀다. 은행에서 착오로 결제한 첫번째 어음을 제외한 나머지는 물론 부도 처리되었다. 그 직원 추적에만 골몰하던 나는 갑갑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그 때까지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종착지를 마닐라로 추정하고 인터폴에 협조를 구했다. 그 때는 이미 사건이 신문지상에 크게 보도되어 협조를 받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마닐라 출장을 품의하였으나 사장은 반쪽이 되어있는 내 몰골을 쳐다보며 만류하였다. 괜한 고생 하지말고 좀 기다려보자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회사 경비만 더 없앨 짓을 왜 하려고 하느냐는 말까지 하였다.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나의 고집으로 겨우 승인을 받아 드디어 마닐라로 출발하게 되었다. 간부 사원 하나를 대동하고 떠나는 출장에 내가 가진 정보는 전화번호, 두 사람의 사진, 그리고 필립핀 인터폴 수신으로 된 한국 인터폴의 수사 협조 요청 공문이 전부였다. 직원이 사라진 날로부터 열흘 만이었다.
 
   마닐라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고 즉시 인터폴과 출입국사무소를 찾아 협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한국 검찰에서도 한낱 대수롭지않은 사건으로 치부된 사건에 필립핀 관리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앞도 뒤도 모르는 내가 나서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우선 마닐라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고있던 동창의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 동창은 정말 자기 일처럼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나를 돌보아주었다.
 
   그 동창을 통하여 현지 군, 경찰, 심지어 대통령 경호실까지 주요인사를 두루 알고있는 태권도 사범을 소개 받았다. 그는 바쁜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그 사범은 전화번호 가입자가 살 만할 동네 한국음식점을 모두 수소문 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근처에 몇 번 왔다 갔거나 머물고 있다면 한국음식점에는 분명 들렀을 터이고 그러면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첫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사범이 식당 주인을 찾았다. 둘은 서로 잘 알고있는 사이로 보였다. 서울에서 준비해 간 사진을 보여주자 그 식당주인은 “어? 이 사람 한의사 아냐? 어제도 여기 왔다 갔는데.”하는 것이 아닌가. 어디 사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근처 이 아무개 아주머니 댁에서 머물다가 시내로 이사 갔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 전화번호를 확인하자 바로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번호였다. 한줄기 빛을 찾은 것 같았다.
 
   사범은 그 아주머니와 면식이 있다고 했다. 사범은 즉시 전화를 돌릴 기세였다. 그러나 나는 멈칫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주머니는 어떤 방법으로든 이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아무 대책 없이 전화를 건다는 것은 거꾸로 정보만 흘려 오히려 그들의 도피를 돕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격이 급한 그 태권도 사범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지 않겠느냐며 전화를 걸었다.
 
   “요즈음 한의사 한 사람이 서울에서 들어 왔어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사는지 알아요?”하는 물음에 왜 그러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았다. “아, 그 친구가 유부남이라는 데 처녀를 꼬셔서 예까지 도망 나오는 바람에 그 오빠가 한번 만나서 얘기라도 들어보겠다고 찾아왔어요. 그 오빠와 내가 잘 아는 사이인데 만나게는 해줘야 할 게 아녀요?”하고 둘러댔다. 주소를 확인한 사범은 “이 여사, 그냥 모른 척하고 있어요. 이 여사한테 들었다고 얘기 안 할 테니까요. 알았죠?” 다짐까지 받고 전화를 끊었다.
 
   너무도 쉽게 일이 풀렸다. 도착한 다음 날 그들이 묵고있는 콘도미니엄(우리나라의 아파트먼트와 같음)과 호수까지 알아냈다. 사범의 소개를 받아 인터폴 책임자를 만나 그들을 잡아내는 일에 대해 상의했다. 확인 결과 그들의 여권은 장기 체류 비자를 받기 위하여 법무부에 보관 중이었다. 그는 출입국관리와 공동으로 한국 인터폴 협조 공문에 근거하여 강제 출국에 협조하기로 약조하고 계획을 짰다. D 데이와 시간을 결정하고 회사가 출장경비를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서울까지 호송할 인력 지원을 승인 받는 한편 서울행 항공편을 예약하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마닐라에 도착한지 엿새 째 되는 날 새벽 우리는 계획대로 그들의 콘도미니엄을 급습하여 자고있던 두 사람을 출입국관리국으로 연행했다. 그 사원은 내 얼굴을 보자 하얗게 질려 말도 못하고 계속 울고 있었으나, 그 남자는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계속 소리쳤다. 필립핀 관리들은 왜 저렇게 소란을 떠느냐, 뭐라고 하느냐고 내게 물어왔지만 나는 모르겠다고 한마디로 잘랐다. 견디다 못한 관리들이 그를 출입국관리국에 있는 유치장에 감금했다. 한숨 돌린 나는 회사로 전화 걸어 상황을 보고하고 공항에 그들을 연행할 경찰을 대기시키라고 당부하고 집에서 걱정할 아내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잡았다고, 그래서 오늘 들어간다고.
 
   착잡한 마음으로 공항으로 떠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나를 현지관리가 급히 찾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따라 갔더니 기자 회견이 있다는 것이었다. 회견 장소에 들어가니 TV 카메라까지 동원한 20여명의 기자가 출입국관리국장과 회견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제출국 대상자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느냐?, 횡령한 금액이 얼마냐?, 이곳으로 도망 온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등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아무 말도 답변하고 싶지않았지만 그 곳을 빨리 떠나려는 일념에 간단히 답변하고 그 자리를 빠져 나와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인터폴과 출입국관리 각 한 명씩 두 명에 의해 두 사람은 호송되어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였으나 항공기 탑승 전에 다시 한바탕 난동이 일어났다. 기자들의 플래쉬에 수갑찬 손을 들어 삿대질을 해가며 욕설을 퍼붓고 고함을 지르다가 강제로 비행기에 올랐다.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나를 도와준 필립핀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이런 모습들이 “Dirty Fingers(더러운 손)”라는 제목으로 사진까지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고 TV에도 방영되었다 한다. 그 때가 마침 출입국관리국장이 바뀌어 범죄를 저지르고 필립핀으로 피신하는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직후였고 그 사건이 여기 해당하는 첫번째 강제 출국이었으며 그래서 매스컴까지 동원되었다는 사실도 뒤에 들어서 알았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피의자들을 경찰에 넘김으로써 내가 할 일은 다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검찰로 압송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후 수사가 진행되었다. 나는 매일같이 경찰과 검찰을 오가며 진술된 내용과 회수 대책을 협의하였다. 서울에 사 놓은 아파트 한 채, 필립핀 은행에 예금해 놓았다고 진술한 금액, 마닐라 콘도미니엄 임차료 선불, 다이아몬드 등 패물 구입비, 모두를 진술한대로 믿는다 해도 금액이 턱없이 모자랐다. 어음 할인 이자, 해외 여행에서 써 버린 돈으로는 너무 금액이 컸다. 계속된 추궁에 그 남자 자신도 친구에게 환전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이 진술되었다.
 
   그러나 그 친구에 대한 수사는 또 벽에 부딪혔다. 각종 중요 사건 처리 때문에 이런 경제사건 수사는 계속 뒤로 밀리고 있었다. 또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여러 날의 노력 끝에 그 친구를 한강변 수상 음식점에서 연행하여 수감하도록 하였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잃어버린 돈의 상당액을 회수할 수 있었다. 어음을 할인해준 사채업자들과 합의를 거쳐 할인금액의 일부를 되돌려주고 어음을 회수하여 사건을 마무리 하였다. 은행에서 잘못 결재해준 금액도 회사에서 일부를 부담하였다. 이것으로 내 수사요원 활동은 막을 내렸다.
 
   이 사건 때문에 들인 경비와 동원된 사원들의 시간을 생각할 때 결코 적지않은 손해가 있었지만, 결국 이 사건과 연관된 사람을 짧은 기간 내에 모두 잡아들여 기소하게 하여 후련하다는 말을 들었다. 중수부에서 일할 사람이 회사에 다녀 아깝다는 담당 검사의 평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후련함과 더불어 큰 허탈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모든 조직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믿음이 없이 시스템을 통한 감시 감독 통제만으로 이런 사건을 방지해야 한다면 막막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회사 생활 속에서 내가 경험한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건이었다. 그러나 내가 담당하는 부서에서 실제로 발생했고 그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충격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담담히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는 정말 암담한 가운데 억제할 수 없는 오기가 치솟아 올라 견디기 어려운 상태였다. 사건 해결을 위한 움직임은 내 이성적 판단에 따라 진행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가지 일에 온 정신과 마음과 몸을 집중하면 하늘도 도움을 주는구나 하는 정도가 이 사건을 겪으며 막연하게 느낀 점이다.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절대적인 힘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이렇듯 짜맞춘 듯 진행될 수가 있었을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천주교회에 나가 지금도 다니고있다. 그러나 주일 미사를 거르지 않는 정도이지 내 신앙이 그리 돈독하다 할 수는 없다. 특히 현세의 문제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해결되도록 하느님께 비는 기도는 마땅한 신앙이 아니라는 오만에 쌓여있었다. 그런데 마닐라에서 두 사람을 잡은 다음 서울 집으로 전화를 건 그 순간이, 아내와 여러 이웃들이 우리집에 모여 간절한 마음으로 9일 기도를 마친 바로 그 순간이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이것을 우연한 시간의 일치라고 일축할 수 없었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이 사건은 결국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오만을 깨뜨리라는 하느님의 뜻이 담겼던 듯 싶다. 그렇지만 그 뒤로도 툭하면 고개를 쳐드는 내 마음 속의 오만을 아직도 나는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 2001.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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